▶ [한인사회 낮과 밤]
▶ [르포] 불치병 환자들의 병원 ‘콜로-골드워터 메모리얼’
맨하탄 이스트 강변으로 둘러 쌓인 루즈벨트아일랜드. 이 섬에는 COLER-GOLDWATER MEMORIAL HOSPITAL이 있다. 이 병원은 불치병 환자들의 재활을 돕고 있다. 하지만 완치되어 퇴원하는 환자는 거의 없다.
이 곳에서 재활치료를 받고 있는 환자 대부분은 단지 고통을 이겨내며 남은 여생을 보내고 있을 뿐이다. ‘죽음’으로 ‘퇴원’을 대신하는 것으로 알려진 이 곳에서 재활치료를 받고 있는 한인 환자들을 찾아 봤다.<편집자주>
맨하탄과 퀸즈 사이 루즈벨트아일랜드. 이 섬에는 일반병원에서 치료할 수 없는 불치병 환자들의 재활치료를 도와주는 병원이 있다. 콜러-골드워터 메모리얼 병원이다.
이 병원은 섬의 남북 양쪽 끝으로 북쪽에 콜러 캠퍼스, 남단에 골드워터 캠퍼스가 자리하고 있다. 양 병동의 환자 수는 각각 1,000명 씩 대략 2,000명 정도. 이중 한인 노인 환자는 양 동을 합쳐 20여 명이 병상생활을 하고 있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1월30일 오전 10시. 섬 남단에 위치한 골드워터 병원을 찾았다. 한인 자원봉사자의 도움으로 찾은 병원 입구에서 청원경찰의 간단한 가방검사를 받았다. 그리고 한인 환자를 만나기 전에 병동을 먼저 둘러봤다.
다른 병동과 뭔가 다른 분위기를 느꼈기 때문이다. 처음 눈에 비친 모습은 걸어다니는 환자들이 하나도 없었던 것. 환자들은 휠체어를 타고 다니거나 하반신이 절단돼 병원 침대를 이동수단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다른 병원과 달리 1층에 응급실도 없었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이 병원에는 수술실도 없다고 한다. 단지, 재활을 위한 물리치료실 뿐, 수술이 필요한 환자는 맨하탄 벨뷰병원으로 후송된다고.
또한 1층에는 식당, 도서실, 예배실, 당구장, 미니 당구대가 마련된 휴게실, 컴퓨터실, 심지어 맥도널드도 있었다. 환자들을 위해 마련된 외부생활과 비슷한 생활공간의 배려라는 생각과 함께 불치병이란 단어가 순간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현재 골드워터 병원에 입원하고 있는 한인 노인환자는 9명. 북쪽에 위치한 콜러 병동에는 10명 등 총 20명 정도. 이들 환자들은 반신불수, 중풍, 치매, 기억상실증 등의 불치병을 앓고 있다.
90년 초 이 병원에 입원한 한인환자는 3명. 그후 가장 많을 때는 12명까지 있었으며, 약 10년 동안 4명의 한인환자가 사망했다.
현재 골드워터 병동에 입원한 한인은 9명. 그 가운데 92년 입원 오는 4월로 10년이 되는 O씨(62)씨. 그는 1992년 4월 22일 오랜 지병인 뇌 신경계통 질환의 불치병으로 이 병원을 찾게됐다. 한인 환자 중 최고참 격. 그는 전동휠체어를 타고 다니면서도 10여 년 동안 줄곧 환자들의 손과 발 역할을 해왔다.
특히, 뇌수술과 척추수술 등으로 말투가 조금 어눌했지만 기억력은 매우 뛰어났다. 그 동안 병원을 오간 한인 환자들의 모든 신상을 정확히 꿰차고 있었다. 입원과 사망날짜뿐만 아니라 사고 경위까지도. 마당발로 한인뿐만 아니라 모든 환자들에게 도움을 많이 주었던 그. 요즘에는 환자들을 찾아가기보다는 컴퓨터실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인터넷과 E-메일에 흠뻑 빠졌기 때문. 거의 빠지지 않고 하던 환자 찾아 도와주기를 쉬고 있는 이유에 대해 그는 "신경이 날카로운 한인환자로부터 ‘여긴, 왜 왔어요. 내가 죽었는지 확인하러 왔어요’라는 소리를 들은 뒤부터"라고 살짝 귀뜸 한다. 부인이 자주 면회와 외로움은 덜하다는 그는 병상생활 동안에 시민권도 취득했다.
그리고 O씨와 함께 취재 인터뷰에 응한 A씨(61). 그는 한국에 가족을 두고 지난 87년 홀로 뉴욕으로 이민 왔다. 목수 일을 하다 지난 2000년 8월 공사장에서 문을 앉고 뒤로 떨어져 목이 부러지는 부상으로 입원했다.
하반신 불수로 그후 2년 동안 재활치료를 하며 아직 휠체어 몸을 의지하고 있다. 90년 영주권을 취득 가족초청을 하려했지만 가족들이 이에 응하지 않았다는 A씨는 "한국에 있는 가족들이 면회 오는 것은 이미 포기한 지 오래됐다."며 "현재 가장 힘든 것은 거동이 불편해 기저귀를 차고 소, 대변을 해결해야 할 때"라며 얼굴을 찌푸린다.
96년 콜택시를 타고 절에 갔다 오다가 사고를 당해 뇌수술로 3개월 동안 식물인간 생활을 하다 기적적으로 깨어난 B 할머니(87)도 중풍의 불치병으로 이 병동에서 생활하고 있다. 병원에서 영주권을 취득했으며 가족은 한국에 있어 면회 오는 사람은 없다.
지난해 공사장의 낙상사고로 목과 허리를 다쳐 입원한 C씨(64)는 전신마비 상태. 그는 말도 잘 못하고 음식도 잘 먹지 못하지만 거의 매일 병원을 찾아 정성을 다하는 딸과 며느리의 간호 아래 병동생활을 하고 있다.
94년 8월에 입원해 7년 이상 병원 생활을 하고 있는 D 할머니(77)는 치매. 입원초기 치매로 인해 무작정 부산 해운대를 가고 싶다며 나서던 그는 현재 거의 식물인간과 같은 생활을 하고 있다.
뉴욕에 가족이 있지만 면회는 전혀 오지 않는다고. 중풍으로 94년 입원한 E씨는 휠체어를 타고 다니며 간혹 지팡이로 걷기도 한다. 말이 어눌하기 때문에 말하는 것을 꺼리는 그의 가족은 아내인 할머니뿐. 90세가 넘은 G씨(92)는 지난 96년 9월 치매로 입원했다. 그는 치매현상 때문에 다른 병동으로 가거나 넘어져 얼굴과 다리를 다치기 일쑤라고.
94년 4월 맨하탄 인도를 걸어가다가 교통사고를 당해 뇌수술을 받고 3개월 동안 식물인간 생활을 했던 H할머니(63). 그는 식물인간에서 깨어났으나 기억을 상실 유아기로 퇴보하는 증상으로 병원생활을 하다가 주위 놀림에 못 견뎌 퇴원했다가 2000년 11월 계단에서 거꾸로 떨어져 사지마비 상태에서 재 입원했다.
다행히 물리치료 후 원상태를 회복했으나 거동을 못해 현재 욕창으로 고생하고 있다. 매일 동생의 간호를 받고 있으나 심리적으로 힘든 상태라고.
이처럼, 한인 환자들은 2-3명을 제외하고 가족의 면회 없이 쓸쓸하고 외로운 노후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이 병원에서 병상생활을 하다 사망한 한인 가운데는 이화여대 음대 학장을 역임한 K모 할머니(사망당시 103세)가 있었다.
1896년 출생인 그는 평생 독신으로 살다가 95년11월 20일 병원에 입원한 뒤, 3년 뒤인 98년 12월 사망했다. 교통사고를 당해 전신마비로 입원했다가 98년에 숨진 R씨는 입원 당시 가족이 전혀 면회를 오지 않았는데. 장례식 때만 손자, 손녀 등 많은 가족들이 참석, 한인 환자들의 입에 오랫동안 오르내렸다고.
이 병원의 터줏대감(?)으로 약 10년 전부터 병상생활을 하고 있는 O씨는 "이 병원은 일반병원에서 치료가 거의 불가능한 불치병 환자들만 찾아오는 재활병원"이라며 "환자 가족들 대부분은 면회를 전혀 오지 않는다"고 말한다. 또 다른 한인환자 A씨는 이 병원에 들어오는 환자가 완치 후 집으로 돌아가는 경우는 거의 없고 주로 이곳에서 임종을 맞게 된다고 전한다.
가족이 없는 한인 환자, 가족이 있어도 면회를 오지 않아 남은 여생을 재활병원에서 외롭게 보내는 한인환자들. 이들은 많은 환자들 때문에 간호사들의 손길이 잘 미치지 않아, 도움을 받기도 무척 힘든 실정.
몇 년째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는 한 한인 봉사자는 "가족의 면회가 없는 환자들은 버려진 불구노인들이 모인 양로원 생활과 마찬가지"라며 "그들은 죽는 것만이 퇴원’이라고 전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3-4명에 달하는 한인 간호사와 7명 정도의 한인 약사들이 한인 노인 환자들에게 도움이 되고 있는 것. 또한 정기적인 한인 교회의 위로 예배 및 한국음식 제공 그리고 한인 봉사자들이 찾아오는 것.
하지만 인터뷰에 응한 한인 환자들이 속내를 들어내지는 않았지만 이들의 생활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자원봉사 활동은 아직도 한참 미흡하다는 느낌을 받아야 했다.
"외박도 되지만 가정에 가고 싶지는 않아요. 이 곳에서는 혼자서도 맘대로 다닐 수 있지만, 밖에 나가면 화장실을 사용할 수도 없고 휠체어로 다니기가 너무 불편하잖아요"
골드워터병원은 형무소가 아니라 재활병원인 만큼 환자들의 외박도 가능하다. 하지만 가정이 있는 한인 환자들도 병원 밖으로 나서는 것을 꺼리거나 두려워하고 있다.
이들은 이미 외부의 주변환경이 자신들을 받아들일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음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남은 여생을 주정부가 보조하는 병원에서 보내야 한다는 현실을 이미 받아들였기 때문.
매주 수요일 시각장애인인 죠셉의 예배시간 가이드를 하기 위해 전동휠체어에 그렇게 보기 싫던 거울을 백미러로 달고 다니는 최씨. ‘죽을 때까지 가정에서 가족들과 한 식탁에 둘러앉아 식사하는 일은 없을 것 같다’는 그는 ‘하지만 병원에서는 스스로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다’며 병원복도를 힘차게 달리는 모습으로 헤어짐의 인사를 대신했다. <연창흠 편집국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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