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T 대학기숙사에서 방화후 자살한 엘리자베스 신양의 부모가 대학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일은 부모들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뉴저지의 신조현씨 부부는 지난 28일 2년전 발생한 딸의 죽음에 대해 대학측이 책임이 있다며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소송을 계기로 USA투데이나 AP등 미주류 언론들도 크게 다룬 관련기사를 보면 신양은 이 세상에 머물었던 19년동안 신씨 부부에게 더 할나위 없는 자랑의 대상이었던 것같다. 어려서부터 총기가 뛰어나서 글을 가르치면 어느새 책을 줄줄 읽고, 음악을 가르치면 음악에 재능을 보이고, 학교에 들어가고 부터는 1등을 빼앗기는 법이 없는 특출한 아이들이 있는데 신양도 필경 그런 아이였을 것이다.
그런 딸이 어느날 갑자기 목숨을 끊어버렸을 때 부모가 감당해야할 고통이 얼마나 큰지는 신씨 부부가 2년이 지난 지금 새삼스럽게 학교측에 책임을 묻는 데서 미루어 짐작할 수가 있다. 신양이 수차례 자해행위를 했고, 자살하겠다는 말을 되풀이한 사실을 학교의료진이 알고 있었으면서도 합당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것이 신씨 부부의 법적투쟁 근거이다. 학생이 위험한 상태라고 판단되면 학교측이 알아서 보호를 하거나 아니면 최소한 부모에게 알렸어야 했다는 주장이다. MIT 의료진은 18세 이상 환자에 대해 진료내용을 비밀로 지킬 의무가 있다는 사실을 내세우고 있다.
명문대학 한인 여학생의 자살사건이 다시 뉴스로 떠오르자 주위의 부모들은 저마다 가슴 철렁해 하는 눈치이다. 자녀가 멀리 타지역 대학에 가있는 부모들은 괜스레 전화를 해서 안부를 묻고, 공부를 등한히 하는 중고교생 자녀로 속을 끓이던 부모들은 일시적이나마 ‘공부 닦달’을 자제하는 분위기이다. “성적이야 어떻든 (아이가) 건강하면 감사한 거지”하고 마음을 비우는 자세인데, 그런 마음가짐에 대해 남가주 세리토스의 한 아버지는 할말이 많다.
“다시 아이를 키운다면 좋은 성적보다는 강한 정신과 육체에 초점을 맞추겠다”는 그는 3년전 하버드대학 재학중 자살한 조창현군의 아버지이다. 인근 지역 한인부모들이 1등 모델로 삼던 조군은 ‘늘 말없이 방에서 책을 읽고, 공부만 하던’ 모범생이었다. “처음 운전할 때, 맏이는 말썽을 많이 피워 속을 썩었는데, 둘째는 티켓 한번 안 떼고 접촉사고 한번 안내던 아이였습니다. 대학도 조기입학으로 들어가고…”
생물학자가 되기 위해 실험실에서 깊이 연구에 몰두하기를 즐기던 아이, 그래서 ‘너무나 자기생활에 만족’하던 것으로 보이던 아이였다. 그런 아들이 왜 자살했는지는 조씨에게 ‘아직도 미스터리’이다.
정신과 의사들은 자살의 원인으로 심리적, 사회적, 신체적 요인을 든다. 대학생의 경우, 학업이나 이성관계등으로 심리적 스트레스가 극심할 때, 부모를 떠나 낯선 환경에서 생활하면서 적응에 심한 어려움을 겪을 때, 내재되어 있던 우울증·조울증등 정신질환 기질이 어떤 이유로 터져나올 때 자살 위험이 있다고 한다. 중요한 것은 그 어떤 것이 이유가 되든 단 한 사람이라도 마음놓고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는 상대가 있으면 자살율은 크게 감소된다는 사실이다.
부모들이 빠지기 쉬운 함정은 모범생·우등생 자녀에 대해서는 너무 쉽게 안심을 하는 것이다. 제 할 일 빈틈없이 해내고 걱정 한번 안 끼치는 아이의 마음속에 나락에 버금가는 크고 깊은 어두움이 있으리라고 상상하기는 사실 어렵다. 반듯한 겉모습을 벗겨내고 속마음을 엿볼 수있는 유일한 통로는 대화인데 신양도, 조군도 부모와 편안하게 어려움을 털어놓는 관계는 아니었던 것같다.
그래서 “후회가 많다”는 조군의 아버지는 ‘아이들이 충분히 자기의사를 발표할 분위기를 만들어 줄 것’‘자식이 품안에 있을 때 많이 사랑하고, 아껴주고, 즐길 것’을 인생후배들에게 충고한다. 그 자신은 스스로 민주적 아버지라고 생각했지만 어려운 일을 겪으며 냉정히 생각해 보니 별수없이 엄하고 권위적인 전통적 한국 아버지였다고 그는 말했다.
“나이 60에 이제 철이 드는 가 봅니다”라며 쓸쓸하게 웃는 그는 이런 말을 덧붙였다. “만약 아들이 되돌아온다면 어깨동무하고 산으로 들로 돌아다니며 같이 놀고 싶습니다. 공부 같은 건 다 집어치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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