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공영방송 PBS는 필름 제작자 켄 번즈가 제작한 네 시간짜리 ‘마크 트웨인 다큐멘터리 특집’ 2부작을 방영했다. 이 프로그램은 미국최고의 작가 마크 트웨인과 그의 대표작들이 탄생한 미주리주 한니발을 중심으로 그 시대를 재조명해 보려는 의도로 기획되었다. 번즈는 이 프로그램을 통해, 한니발을 아직도 과거와 현재, 픽션과 현실 사이에서 씨름하는 곳으로 묘사했다.
미주리주 미시시피강 언저리에 자리잡은 한니발은 ‘미국의 고향’이라는 정감어린 별명을 갖고 있는 타운이다. 마크 트웨인은 한니발을 거점으로 미시시피 강변에서 펼쳐지는 19세기의 동심과 모험의 세계를 탁월한 필치로 묘사, 미국최고의 작가로 추앙받기에 이르렀다.
한니발의 마크 트웨인 생가 사적지 간판에는 ‘헉 핀이 태어났고, 톰 소여와 절친한 우정을 쌓았던 집이 있던 자리’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헉 핀은 마크 트웨인의 대표적인 장편, ‘허클베리 핀의 모험’에 등장하는 주인공 이름이다.
마크 트웨인이 작품활동을 하던 시절, 한니발은 노예제도와 인종차별의 사회적 테두리 안에 있었다. 한니발은 아메리카 대륙의 동부와 서부, 그리고 남부와 북부의 접경지에 위치한 미국의 교차로로서, 그 당시 횡행하던 인종문제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지정학적 특성을 갖고 있었다.
이제 마크 트웨인이 한니발에서 미국인들의 혼이 살아 숨쉬는 작품들을 집필한지 한 세기가 넘는 세월이 흘렀지만, 아직도 한니발에서는 인종문제가 예민한 이슈가 되고 있다. 비판론자들은 이같은 현상이 예전부터 밀집과 낚시대 외에는 외부세계를 배타하는 미시시피강 주변 특유의 보수성향에 기인한다고 주장한다.
PBS가 켄 번즈의 다큐멘터리를 방영한 이후, 이곳을 찾는 수많은 방문객들은 아직도 인종문제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한니발의 모순을 직접 경험하게 될 것이다. 방문객들은 특히 한니발이 전통적으로 개최하는 연례행사 ‘톰 소여의 날’ 동안, 과거와 현재의 뿌리깊은 갈등을 목도하게 될 것이다.
7월 4일 독립기념일 날 개최되는 ‘톰 소여의 날’은 톰 소여와 관련된 각종 콘테스트들이 열리는 중서부의 대표적 문화축제다. 이 행사기간에는 평소인구가 1만 8,000명에 불과한 한니발 지역에 10만여명의 관광객들이 모여 북쇄통을 이룬다.
한니발을 찾는 방문객들은 마크 트웨인이 그린 19세기 미시시피강의 정감어린 자연과 낭만에 대한 기대를 미리 접는 편이 좋다. 요즘 미시시피강은 수많은 댐과 홍수예방벽으로 인해 강의 전망이 군데군데 차단되어 있고, 트웨인의 작품에 등장하는 톰 소여와 허클베리 핀의 비밀동굴도 주차장으로 가려져 있다. 또, 한니발 타운 역시 미국내 다른 소도시들과 마찬가지로 각종 프랜챠이즈 가게가 즐비하여 19세기의 낭만적 분위기와는 거리가 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인트루이스에서 두 시간을 드라이브하여 한니발을 찾는 사람들은 마크 트웨인의 도시만이 갖고 있는 특유의 분위기를 만끽할수 있다. 방문객들은 마크 트웨인 식당에서 ‘마크 트웨인 치킨’ 요리를 먹고, 푸든헤즈 숍에서 그 시절의 정취가 담긴 각종 공예품들을 감상할 수 있다. 또, 마크 트웨인의 소년기 생가와 톰 소여의 펜스 길 건너편에 위치한 마크 트웨인 선물가게에는 트웨인의 작품들에 대한 향수를 자극하는 각종 소품들이 가득히 진열되어 있다.
그러나, 톰 소여의 날 한니발을 찾는 방문객들은 또한 마크 트웨인의 작품과 관련된 그 시대의 그늘을 보게 될 것이다. 주립 사적지로 지정된 마크 트웨인의 출생지에서 보여주는 슬라이드쇼 내용 가운데는 "마크 트웨인의 작품들은 많은 인종적 논란을 야기했고, 아직도 일부학교들은 그의 작품을 금지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세인트루이스 기반의 전미흑인관광 네트워크의 안젤라 다실바는 이같은 현실을 풀어나가기 위해 분투중이다. 그녀는 마크 트웨인의 도시 한니발에서 흑인들의 역사와 전망을 되살리는 주정부 지원 토론패널을 이끌고 있다. 다실바는 "많은 흑인들은 마크 트웨인을 ‘허클베리 핀의 모험’에서 니그로라는 흑인비하 발언을 238회나 사용한 인종차별주의자 쯤으로 인식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드실바는 케이블 채널 C-SPAN이 방영한 마크 트웨인 관련 프로그램을 통해, 그가 후기에 접어들수록 흑인노예들에 대해 동정적 입장을 견지했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버지니아의 콜로니얼 윌리엄스버그와 마운트 버논 같은 다른 역사적 관광지처럼, 한니발도 관광코스에 흑인들의 역사을 통합해 줄 것을 주장한다.
이런 아쉬움을 가진 사람은 안젤라 다실바가 처음이 아니었다. 1997년, ‘마크 트웨인과 미국문화 단상’이라는 책을 쓴 작가 셸리 피셔는 "마크 트웨인의 한니발은 미국의 소우주 그 자체다. 거기에는 미국의 약속과 잠재력, 미국인들의 죄와 수치가 고스란히 담겨있다"고 갈파한 바 있다.
또, 조만간 출간될 ‘짐을 찾아서: 노예들과 샘 클레멘스의 한니발’의 저자 테렐 뎀시도 "노예제도와 남북전쟁을 이해하기에 가장 좋은 장소가 한니발이다. 지금 우리는 한니발에서 실재와는 다른 가공의 역사를 구성해 놓고 있다"며 그 부당성을 주장한다.
한니발의 마크 트웨인 기념사업은 일찌기 1912년, 당시 트웨인의 소년시절 생가의 소유주이던 지역의 한 자선사업가가 그 집을 시정부에 기증하면서 시작됐다. 이후 트웨인의 생가는 ‘마크 트웨인 생가박물관’으로 발전하면서 트웨인의 한니발 거주시기를 조명하는데 초점을 맞췄다.
그후, 박물관 기념사업은 마크 트웨인의 전체 인생역정과 그가 인생 후반기에 살았던 다른 지역들로 관심영역을 넓혀갔다. 그렇지만, 여전히 트웨인의 작품속에 수없이 등장하는 노예흑인들의 생활상은 관심영역에서 철저히 배제되었다. 이에 대해, 오늘날 한니발의 마크 트웨인 관광사업을 주관하는 담당자들 조차도 한니발의 역사가 재서술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PBS 필름작가 켄 번즈는 자신의 다큐멘터리 방영을 계기로 마크 트웨인과 그의 작품세계에 대한 재평가 작업이 일어나기를 희망한다. 그는 또, 마크 트웨인의 작품의 기조가 사실 인종문제 같은 심오한 내용보다는 예리한 위트에 있다는 일반적 평가를 상기시키며, 오랫동안 트웨인의 작품이 인종문제로 비판받아 온 현실에 아쉬움을 표시한다.
켄 번즈는 1990년 버지니아의 내전 유적지들을 소재로 남북전쟁을 다룬 미니시리즈를 제작하여 큰 반향을 불러 일으킨 바 있다. 당시 PBS 방송이 나간 이후, 버지니아의 내전 유적지들은 일약 전국적 관광명소로 부상했다. 이번에도 한니발 다큐멘터리가 방영된 이후, 이 지역에 전례없는 마크 트웨인 관광특수가 일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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