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장서 자란 어린 시절 회고록, 동생과 공동 집필
미국 최초의 여성 대법관인 샌드라 데이 오코너(71)가 자신이 어린 시절을 보낸 고향 목장의 이야기를 담은 책을 펴냈다.
터울이 많이 지는 남동생 앨런 데이(62)와 함께 쓴 ‘레이지 B: 미국 남서부의 목장에서 자라나기’(랜덤 하우스, 24.95달러)가 최근 출간된 것. ‘레이지 B’란 샌드라의 친정 집 목장 이름으로, 건조지대에 위치한 250평방마일 규모의 이 목장은 애리조나와 뉴멕시코에 걸쳐 있다.
이곳에서 샌드라는 자신의 말떼들을 타면서 자라났다. 그녀의 벽돌집엔 일곱살이 되기까지는 전화도 전기도 수도도 없었다. 화장실은 집 밖에 떨어져 있었고, 베란다에선 카우보이들이 잠을 잤다. 113년간 데이 가문의 소유이던 이 목장은 결국 파산을 해서 다섯 개로 나뉘어 팔렸다. 마지막으로 팔린 것은 샌드라의 어머니가 사망한 후인 1989년이었다. 이 회고록은 샌드라가 사랑한, 그리고 더 이상 자신의 삶의 일부분이 아니라는 것을 믿을 수가 없는 이곳에 대한 추억을 보존하고 찬미하기 위한 노력이기도 하다.
그녀는 "마치 마음과 영혼의 일부가 사라져버린 것처럼 느껴진다"고 말했다. "내가 어디 있든지 간에, 그것이 스탠포드 대학이건 남편의 군복무에 따라갔던 독일이건 간에 나는 언제나 목장과 부모님이 그곳에 있다는 걸 알고 있었지요. 언제든지 가서 얼마든지 오래 묵을 수 있는 곳, 우리 아이들과 손자들이 언제나 환영받는 곳이라는 걸요"
아버지 해리는 엘파소에서 온 에이다 윌키를 만날 때까지 이 지방을 싫어했다고 한다. 자녀들은 어머니 에이다가 ‘보그’와 ‘뉴요커’를 정기 구독하고, 전 생애에 걸쳐 숙녀답고 패셔너블한 태도를 유지했다고 기억한다. 일에 지치고 햇볕에 그을린 목장주의 부인과는 거리가 멀었다는 것이다.
앨런은 샌드라가 처음부터 ‘엄청나게 똑똑했다’고 말한다. 그녀는 할머니와 살면서 엘파소의 사립 초등학교에 다녔고, 16세에 스탠포드 대학에 진학할 때까지는 공립고교에 다녔다. 스탠포드 법대에서 그녀는 장차 남편이 될 도시 소년 존 오코너와 미래의 대법원장 윌리엄 렌퀴스트를 만나게 된다. 샌드라는 보수파와 진보파가 각각 4명씩 호각을 이루고 있는 렌퀴스트의 법정에서 대단히 중요한 위치에 있다.
앨런은 이 책이 그의 누나가 종종 받곤 하는 질문-’검소한 시골 농촌 출신이 어떻게 해서 미국 최초의 여성 대법관이 될 수 있었는가?’하는-에 대한 답변을 시도한 것이기도 하다고 말했지만 질문 중에는 샌드라가 대답하고 싶어하지 않는 것들도 있다. 이를테면 법률가로서의 철학에 관한 것들이다. 레이지 B는 사유지와 두 개의 주로부터 임대한 국유지로 이루어져 있는데, 국토관리국이 이 목장을 관리하는 방식이 연방정부의 역할에 대한 그녀의 입장에 영향을 미쳤는지 여부에 관한 질문이 그것이다. 이에 대해 그녀는 살짝 화난 듯한 태도로 이렇게 응답했다. "잘 모르겠네요. 우리는 누구나 성장과정에 스스로도 잘 모르는 영향을 받지요"
1988년에 유방암 진단을 받았으나 지금은 건강하다는 그녀는 은퇴에 대해서도 "묻지 말아주세요. 언젠가 하겠죠.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러나 손자들이 어린 시절 목장을 찾는 추억을 갖지 못한데 대해 물으면 말이 많아진다. 자신의 남매와 그 자녀들이 누렸던 삶의 방식을 체험할 기회를 갖지 못하게 된 것이 아쉽다고 했다.
일하는 엄마로서 목장은 세 아들에게 더할 나위 없는 여름나기 장소였다. 그녀는 나바호 인디언들은 아이들의 버릇들이기는 외삼촌이 해야하는 것으로 믿는다는 점을 인용했다. "방학하자마자 아이들은 목장으로 몰려왔지요"라고 애리조나 대학을 졸업한 뒤 30년간 목장을 경영해왔던 앨런은 말했다.
여동생 앤의 두 아들까지 합해서 모두 다섯 명의 조카들이 찾아오면 우선 머리부터 깎게 했다. 당시는 장발과 마리화나가 유행이던 시대였지만. 샌드라는 아이들이 외가에 가 있는 동안은 걱정이 없었다. 앨런은 아이들에게 힘든 노동과 승마와 즐거운 놀이를 제공하곤 했다. 이웃 농장에서 얼마든지 과일을 따먹어도 좋다고 얘기했음에도 불구하고 조카들과 수박 서리를 하기도 했다.
레이지 B는 경치 좋은 관광농원이 아니었다. 아이들에겐 임무가 주어졌다. 목장은 강수량이나 쇠고기 가격 같은 통제불능의 요소들에 의해 운영상태가 결정되곤 했다. 특히 힘들었던 것은 1934년으로, 정부가 목장주들에게 돈을 지불하고 스스로 소를 도축하도록 했을 때였다. 아버지는 간단한 도구로 위험에 빠진 소를 고쳐내는, 면허 없는 수의사이기도 했다.
보통 사람들이 상식을 가지고 근면과 진취성으로 자신을 돌보는 능력에 대한 찬가인 이 책은 기억력이 나은 앨런이 초고를 맡고 샌드라가 이를 감수하고 정리하는 방식으로 씌어졌다. 샌드라는 앨런의 원고 중 ‘내 누나 샌드라’라는 한 장을 삭제했다. 애리조나 주상원의원을 지내고 지금은 피마 카운티의 수퍼바이저로 있는 앤은 이 책의 집필에 참여하지 않았다. 그녀는 늘 목장을 떠나고 싶어했다고 한다.
어린 시절엔 늘 어른이 되면 목장주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는 샌드라는 "목장주의 아내로도 행복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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