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윤자<실버스프링, MD>
인생의 여정에서 진실한 친구를 만났으면 성공한 사람이라고 한 어느 현인의 말이 생각난다. 진실한 친구를 만난다는 것은 가장 귀중한 사건이다. 노력을 한다고 꼭 얻어지는 것도 아니고 오랜 세월이 흐른다고 만나지는 것도 아닌 듯하다.
진실한 친구는 나의 모든 것을 잘 알고 이해해준다. 기쁠 때 같이 즐거워하고, 슬플 때도 함께 울어준다. 마음에 상처를 입었을 때 위로해주며, 절망할 때 소망의 의지를 심어준다. 친구를 위해 온갖 불이익과 고통도 감수한다. 그리고 궁극엔 친구를 위하여 목숨마저 바치기도 하는 것이다.
삶을 통해 많은 친구들이 곁을 스쳐 지나갔다. 세차게 굴러가는 삶의 수레바퀴 속에서 잊었던 그들을 반백이 넘은 인생의 가을의 계절에 망각의 늪에서 회억으로 한 친구씩 건져 올려본다. 어느 누구보다도 나의 가슴에 진한 슬픔으로 아프게 저며오는 한 친구의 생각이 떠오른다.
대학시절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영영 헤어지는 것이 아쉬워 매해 졸업생들 중 몇 명씩 모여 이룬 동아리에서 회원으로 만난 친구다. 동기생들 여럿이 어울려 영화 감상도 하고 찻집에 앉아 이야기꽃으로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불투명한 미래가 불안하고 암울했던 시절이었다. 담배를 피우며 연기를 내뿜는 사람들을 보며 한 대 피워보면 가슴에 타는 듯한 막연한 불안과 초조가 사그라질 듯하여 "한 대 피워보면 어떨까" 하고 중얼거렸다. 그 소리를 들은 어떤 친구가 얼른 손가락에 한 개피를 끼워주었다. 그러자 그 친구가 몹시 놀라며 "안돼" 라면서 막는 바람에 얼떨결에 손가락에 끼워있던 것을 던져버렸다. 마치 불결한 물건이 나를 더럽힌 듯 흥분하는 그 모습이 떠올라 나는 고국을 떠난 후 가족들에 대한 그리움과 불면의 밤을 잊기위해 들었던 포도주를 병째 쓰레기통에 던져 넣었다.
담배 한 개피를 손가락에 한 오초 동안 잡고 있었다고 소리치던 그 친구가 포도주 한병을 손에 잡고 있는 내 모습을 보았다면 어떠했을까. 나를 인정해 주던 그 친구, 삶의 의욕을 잃어 세상을 포기하고 싶다고 했을 때 용기를 주던 그 친구가 미국에 와서 잠 못 이루어 포도주를 들려던 나의 손을 막아주었다. 시공을 초월하여 들려오는 그 친구의 질책의 음성이 나의 쓰러져 가는 의지를 일으켜 주었다. 진실한 친구의 우정은 절망의 늪에서 헤매는 친구에게 소망의 음성을 들려주는 것이다.
나는 어느날 진실한 친구이신 예수님을 만났다. 그것은 나의 일생의 가장 값진 기쁨을 가져다준 사건이었다. 물론 그 분을 만나기 위해 고통의 터널도 지났고 불같은 연단도 거쳤다. 진실한 친구가 되어주신 그분이 영원한 소망의 음성을 들려주신 것이다. 나의 모든 것을 아시고 이해하시는 것에서 시작하여 나를 위해 목숨을 바쳐주셨다. 나의 친구가 되어 주셔서 실패감의 고통에서 성취감의 희열로 떨게 하셨다.
고등학교 졸업 30주년 행사로 고국을 방문하여 동창명단을 펴보니 그 친구의 이름 옆에 집 주소란과 직장 주소란이 하얀 공간으로 텅비어 있었다. 어느날 다니던 직장도 버리고 어디론가 잠적하여 동창들과 연락이 끊어졌다고 한다. 법관의 꿈도 이루지 못하고 결혼생활의 보금자리도 지키지 못하여 세상을 버린 모양이다. 절망의 절벽 아래서 좌절하고 쓰러져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그를 위하여 소망의 음성을 들려줄 수도 없고 절망의 절벽을 타고 올라올 가는 줄이나마 던져줄 수 없음이 괴로울 뿐이다.
그러나 내가 만난 진실한 친구이신 그분이 나의 친구도 만나 주시지는 않으실는지.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떠난 아브라함의 길을 인도하신 그분이 방황하는 그 친구의 걸음도 인도하시지는 않으실는지. 형제들에 의해 우물 구덩이에 버려진 요셉을 건져주신 그분께서 나락의 구덩이에 던져진 그 친구도 다시 건져 주시지는 않으실는지. 쫓기는 몸으로 광야를 헤매다 이방에서 고적하게 양을 치던 모세에게 나타나셔서 그 이름을 불러 주셨던 그분이 세상을 피하여 낯선 곳에서 소식을 끊고 살고 있는 그 친구의 이름도 불러주시지는 않으실는지. 사자 굴에 던져진 다니엘과 함께 하셔서 맹수의 입을 봉하시어 상처않게 하셨던 그 분이 험한 세파에 던져진 그 친구와도 함께 하셔서 거센 파도의 입을 봉하시어 상처않게 하시지는 않으실는지. 만물을 지으시고 소유하신 만왕의 왕께서 진실한 친구가 되어 주셔서 나의 인생을 성공으로 이끌어주신 그 분이 그 친구의 진실한 친구가 되어 주셔서 눈물을 닦아주시고 기쁨으로 영원히 함께 하시지는 않으실는지!
고국을 떠난 나는 낯선 나라의 생활이 견디기 힘들어 좌절하고 절망하였으며 고국에 두고 온 식구와 친구들이 그리워 가슴의 실핏줄이 터지도록 울기도 하였다. 불면의 밤이 두려워 통나무를 밟고 서서 굴려보기도 하였고 친구의 권유로 포도주를 한잔 먹어보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하여 어렵사리 한 병 얻어 놓았었다. 포도주를 들고 한잔을 따르려고 했을 때 불현듯 그 친구의 절규가 나의 가슴에 파열음을 내며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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