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 개막이 눈앞에 다가온 가운데, 전 세계 스포츠팬들은 이번에도 새로운 올림픽 스타의 탄생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이번 올림픽을 앞두고 가장 큰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선수로는 단연 오스트리아의 허만 마이어가 꼽힌다.
마이어는 국제 스키계에서 같은 오스트리아 출신의 액션스타, 아놀드 슈왈제너거 주연의 영화 ‘터미네이터’를 본 따서 ‘허미네이터’라는 별명으로 통한다. 별명에서 알 수 있듯, 마이어는 단지 스포츠 스타의 차원을 넘어서 불굴의 의지를 소유한 인간 승리의 대명사로 알려져 왔다.
마이어는 1998년 나가노 동계올림픽에서 당한 사고를 계기로 전 세계 스키 팬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기며 허미네이터라는 별명을 얻었다.
당시 마이어는 엄청난 스피드로 활강도중 쓰러지면서 코스 가장자리 펜스와 충돌했다. 보통사람 같으면 신체가 마비되게 십상인 큰 사고였으나, 마이어는 잠시 후 그 자리에서 툭툭 털고 일어섰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마이어가 사고를 당한지 며칠 후에 올림픽 금메달을 따냈다는 점이다. 뿐만 아니라, 그는 다시 며칠 후에 두번째 금메달을 따내는 초인적 면모를 과시했다.
그 당시, 마이어가 충돌 후 일어서는 장면은 나가노 올림픽 최대의 하이라이트가 되었고,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올림픽 캠페인을 할 때마다 그 장면을 불굴의 스포츠 정신의 상징으로 활용했다.
그런데, 이번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마이어는 그 때와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다. 차이가 있다면 이번에는 스키 사고 대신 모터사이클 사고를 당했다는 점이다. 마이어는 1년여 전 오스트리아 고향마을 근처에서 모터사이클을 몰던 중, 앞에서 급정차한 벤츠 승용차와 충돌했다.
사고 순간 마이어의 몸은 허공으로 치솟아 도로 옆 도랑에 처박혔다. 오른쪽 다리뼈가 피부 밖으로 삐어져 나오고 다리가 만신창이로 짓이겨진 중상이었다. 의사들은 그의 다리뼈를 고정하기 위해 철심을 박았고, 허벅지 살을 떼어내어 피부이식 수술을 했다. 이로 인해 마이어의 다리에는 마치 야구공처럼 꿰맨 실 자국이 어지럽게 드러나 있다.
이번에도 보통사람 같으면, 중상을 당하고 동계올림픽에 참가할 엄두를 못 낼 것이다. 그러나 마이어는 벌써 다리를 절지 않고 걷고 있다. 이번 솔트레이크시티 올림픽의 최대 화두는 ‘허미네이터가 돌아올 것인가’이다.
이에 대해 슈왈제네거는 "인간적으로 보면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마이어는 돌아올 것이다"고 확신한다. 슈왈제네거는 1998년 나가노 올림픽 이후 마이어와 막역한 친구 사이가 되었다. 슈왈제네거의 장담이 의심된다면 나가노 올림픽의 사고 장면 비디오를 한번 직접 보기 바란다.
마이어는 나가노 올림픽을 계기로 명실상부 스포츠 세계의 수퍼스타로 자리매김했다. 그때까지 그는 국제 스키계의 유명 인사였으나, 슈왈제네거와 동급의 세계적 수퍼스타로 거듭난 것은 나가노 올림픽 이후의 일이었다.
마이어는 스키선수가 될 운명을 갖고 태어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750년 전통의 고도, 오스트리아 플래챠우에서 스키 강습학교를 운영하던 부모 슬하에서 태어났다. 마이어는 세살 때부터 스키화를 신기 시작했으며, 6세 때부터는 유년부 스키대회를 휩쓸기 시작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유망주들이 10~12세에 발굴되는 오스트리아 스키계에서 마이어는 거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16세 때까지 체중이 100파운드를 조금 넘을 정도로 너무나 깡마른 체질이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그는 스키선수로서 한창 성장해야 할 시기에 최고의 코치들과 최상의 훈련의 혜택을 받지 못했다.
마이어는 나이 20세가 되어서야 겨우 체중 180파운드를 넘어섰다. 그것도 오스트리아 군대에 들어가 6개월 특공훈련을 받은 결과였다. 훈련기간에 마이어는 수도 없이 역기운동을 반복했고, 두 어깨에 유탄 발사기를 매고 알프스의 험준한 산맥을 넘었다. 이 대목에 이르면 마치 한편의 인간 승리 드라마를 보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
군에서 제대한 마이어는 여름에 벽돌공으로 일하고, 겨울에는 일과 시작 전 이른 아침에 스키를 가르쳤다. 또 그 자신이 디자인한 활강코스에서 홀로 스키실력을 연마하며 스키선수로서의 의욕을 불태웠다.
마이어는 스키선수로서 드물게 천부적 재질과 불굴의 의지를 겸비한 선수로 꼽힌다.
오스트리아와 미국스키 대표팀 코치를 역임한 허위그 뎀샤는 칭찬한다.
"대개 천부적 재능을 갖춘 선수는 불굴의 열정과 의지가 부족하고, 열정이 있는 선수는 천부적 재능을 결여한 경우가 많다. 그런 점에서 마이어는 예외적인 선수다"
마이어가 스키계의 주목을 받게 된 것은 순전히 우연의 결과였다.
1996년 1월, 마이어는 고향마을 플래챠우에서 개최된 월드컵 활강대회의 경기운영을 돕는 스키 조교로 참여했다. 대회시작 전, 마이어는 스키코스의 상태를 점검하는 ‘포러너’로서 스키를 타고 내려가라는 주문을 받았다.
그런데 이 때 마이어가 작성한 기록이 실로 가관이었다. 그 당시 올림픽과 월드컵 스키 무대를 통틀어 세계 스키계의 제왕으로 군림하던 알베트로 톰바 선수에 단 1초 뒤진 경이적인 기록이었기 때문이다. 몇 주일 후, 마이어는 오스트리아 대표팀에 차출되었다.
1년 후, 마이어는 처녀 출전한 프랑스 샤모니 월드컵 다운힐 경기 도중 쓰러져 왼쪽 팔 골절상을 입었다. 그런데, 사고를 당한지 불과 몇 주일만에 열린 독일 가미쉬 월드컵 수퍼 활강 대회전에서 마이어는 어깨에 석고를 한 채 출전, 거짓말 같은 우승을 차지했다. 마이어의 참 모습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1998년부터는 아예 전 세계 스키계를 호령하기 시작했다. 언제부턴가 그에게는 ‘스키 괴물’이라는 별명이 따라붙었고, 곧 이어 ‘허미네이터’라는 경이로운 수식어가 더해졌다. 마이어는 모터사이클 부상을 당하기 전까지 4시즌 가운데 3시즌에서 세계 스키 종합선수권자로 군림했다.
마이어가 모터사이클 사고를 당한 후 세계 스키계는 지난 10년간 계속돼 온 악몽이 재연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였다. 엄청난 스피드가 요구되는 세계 정상급 스키대회에서 불의의 사고가 꼬리를 물고 발생했기 때문이다.
1994년에는 오스트리아의 여성 스키선수 율리케 마이어가 독일 월드컵 다운힐 경기 도중 타이밍 포스트에 받혀 사망했다. 또, 릴레하머 동계올림픽 직전에는 한때 마이어의 우상이기도 했던, 전 월드컵 챔피언 루디 닐리히 선수가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이어 1998년 프랑스 스키 월드컵에서는 스위스의 실바노 벨트라메티 선수가 하반신이 마비되는 사고를 당했다.
여하튼 전 세계 스키팬들은 마이어 선수가 이번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에서도 다시 한번 기적 같은 인 승리의 드라마를 연출해 주기를 고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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