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용 <현 한국시민연합회 회장, 전 한민신보 발행인>
우리의 정치 역사는 아주 중요한 내용 하나를 빼 먹은 채 지나가고 있다. 바로 박정희 전대통령에 대한 평가다. 그에 대한 평가는 한번도 공정하게 결론 내려진 적이 없다. 군부 독재시절이 끝나고 YS·DJ정권이 이어지면서 역사적 심판이 있어야 당연한 일이었지만 그렇지 못했다.
박정희씨는 장장 18년간 국가의 입법, 사법, 행정 3권을 틀어쥐고 독재를 누려왔던 장본인이다. 그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나라의 정의 가치를 재정립하고 민주풍토를 기약하기 위한 필수 조건 가운데 하나다. 박정희씨를 그냥 고속도로 건설하고 경제기틀을 마련했다는 공로자로서만 추앙하는 건 역사적 모순이다. 그의 독재횡포도 고발되고 공정한 심판을 받아야 한다.
북한도 김일성에 대한 공정한 사후평가를 해 본 일이 없다. 그 결과 김정일이 거리낌없이 권력을 세습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김일성의 6.25남침과 수백만의 인민학살에 대한 책임을 묻지 않고 독립운동과 경제분배만 과장 찬양했기 때문이다.
박정희씨는 김영삼씨가 대통령이 된 후 심판을 받아야 했다. 그러나 전두환, 노태우 두 사람을 응징하자마자 친인척 비리에 휘말려 박정희씨를 평가할 겨를이 없었다.
가장 박정권을 신랄하게 규탄하고 나섰어야 할 김대중씨는 대통령이 된 후 싹 마음을 돌려 세웠다. 박정희 군부독재 심판이라는 민주정부의 집권초 부터 DJ는 박정희 존경론을 내세웠다.
박정희씨의 주구였던 자들을 대거 등용하고 박정희 기념관 건립에 국고금 6백억원을 지원하기도 했다. DJ는 자신의 약한 정치기반을 보충하기 위해 독재자 를 옹호할 수 밖에 없었다. 따라서 그의 추종세력인 민주화운동 인사들이 박정희씨에 대한 비판을 할 수가 없게 되었다.
이런 분위기에 편승해 독재잔당들과 영향력 있는 수구언론들이 마냥 박정희 우상화에 열을 올렸다. 결국 DJ의 석연치 않은 행동으로 박정희씨만 존경받아야할 인물로 오도되고 그의 장녀가 대권에 도전하는 코미디를 연출하게 된 셈이다. 정의로운 역사를 위해서는 이제라도 박정희씨의 행적에 대한 공평한 점수가 매겨져야 한다.
우리는 ‘인권을 짓밟는 한이 있어도 경제발전만 하면 된다’는 개발독재론자인 박정희씨를 히틀러, 스탈린, 김일성, 가다피 같은 민주주의 말살의 원흉으로 제대로 규명한 적이 없다.
그의 추종자였던 박종규, 차지철, 이후락의 만행을 떠올리지 않아도 그는 아주 잔인했던 인물이다. YS·DJ 민간정부가 들어선 이후 관제 친공 단체로 밝혀지고 있는 인혁당 관련자 9명을 사형선고 받은 바로 다음날 처형한 사람이 박정희다.
자신을 비판한다고 해서 교수, 종교인, 학생, 언론인을 무차별 투옥 고문했고 정치자금을 내놓지 않는다고 대기업 문닫기를 손바닥 뒤집듯 했다.
일본군 장교로 독립군에 대한 총질, 공산당 가입, 5·16 쿠테타 전횡아래 저질러진 갖가지 죄악들을 이루 열거하기가 힘들 정도다. 그런데도 그에 대한 정당한 평가는 아직도 내려지지 않았다. 버스안이나 술집, 다방에서 조차 심지어 학교나 교회 설교에서도 맘 놓고 말을 못하는 공포 분위기 속에 나라를 18년 동안이나 몰아놓고도 그것이 미화되고 있다면 역사적 모순이 아닐 수 없다.
더군다나 아직도 박정희씨에 대한 분노의 눈들이 시퍼렇게 살아있는데 그의 장녀가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서다니 어처구니 없는 일이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법적 결격사유만 없다면 누구나 입후보가 될 수 있다지만 법적 절차를 따지기에 앞서 도덕적 상황을 고려한다면 박근혜 의원이야말로 아버지를 대신해서 억울하게 인권을 억압받고 짓밟힌 민주인사들 앞에 사죄부터 해야 마땅할 것이다.
적어도 대통령이 되려면 국민들이 통일이나 경제발전이나 사회 안정, 교육제도 개혁 등등 중요분야에 기대를 걸어볼 만한 인물이어야 당연한 일이다.
우리가 아는 한 박근혜씨가 갖춘 것이라곤 독재자 홀아버지 밑에서의 통치수업 뿐이다. 박의원이 남모르게 인격을 도야하고 얼마나 국가 경영에 관해 연구를 했는지 모르지만 어느 것도 객관적으로 인정할 수 없는 입장일 수밖에 없다.
아무래도 박근혜 의원의 대통령 출마 의욕은 독재자였던였던 자기 아버지의 후광을 업거나 그의 이념을 재주장해 보겠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의 아버지가 피살된 지 20여년이 지났고 세상 또한 어떤 인권탄압도 용납하지 않는 상황으로 변했다. 그런데도 그의 장녀가 대통령 욕심을 내다니 이 무슨 뚱딴지같은 행각인가. 지역감정을 선동해서 뭘 어떻게 해보려는 박정희씨의 잔존세력을 규합해 정치지분을 유지하려는 시도이든 그 어떤 경우라도 박근혜씨의 대통령 출마표명은 국가적으로 해로울 뿐이라는 세평을 면치 못할 것이다.
어느 면으로 보더라도 자기 아버지의 독재 통치에 대한 족적이 제대로 평가되지 않은 상황에서 대통령이 돼보겠다고 분주해진 박근혜씨의 태도는 역사를 거슬리는 일이요 민주주의에 대한 모독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
박정희씨의 장녀 박근혜씨는 세상사를 깊이 생각하며 자중자애 하는 게 좋을 것 같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