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언제 집에서 밥을 같이 먹었지?” 류승완(29)ㆍ류승범(22) 형제는 요즘 얼굴을 자주 못 본다. 감독인 형은 3월 1일에 개봉할‘피도 눈물도 없이’ 촬영을 마치고 요즘 후반 작업 중이라 한숨 돌렸지만, 이 영화에 출연한 배우 겸 탤런트인 동생은 30시간씩 잠을 못자는 것은비일비재다. 그들이 처음 대중에게 알려진 2000년 6월 이후 딱 1년 반. ‘아웃사이더’ 같던 형제는 우리 대중문화의 핵심으로 깊숙이들어왔다.
두 사람,제 갈 길을 가다
“연기자가 될지 자신할 수 없다”던 류승범은 이제 국내 정상급의 개런티를 받는 모델이자 유망한 TV 탤런트가 되었다. 고교생들은 그의 ‘껄렁함’에, 대학생들은 ‘어딘지 순진해보이는’ 매력에, 나이 든 이들은 ‘응석받이 막내처럼 귀여운’ 모습에 끌린다. “그만 조절하지”, “간만에 책 좀 보려고 하는데 그만 갈았으면 하는 소망이 있네” 라는 CF의 멘트(둘 다 그의 애드립)는 유행어가됐다.
B급 영화에 독특한 재능을 보였던류승완 감독은 이제 제작비 20억 원이 훌쩍 넘는 전도연ㆍ이혜영 주연의 여성액션 영화 ‘피도 눈물도 없이’의 개봉을 기다리고 있다. 그는 프랑스일간지 리베라시옹의 한국 영화 특집 기사에서 ‘저항의 오페라 같은 작품’이라고 평가됐던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인터넷 영화의 돌풍을 일으킨 ‘다찌마와 리’ 단 두 편으로 촉망 받는 상업 영화 감독이 됐다.
영화와추억에 대한 난상토론
승범 = 나는 다른 감독들과 연기를하다 보면 형이 그리워질 때가 있다. 나 스스로 발견하지 못한 에너지를 발견해 줄 때가 있었다. 배우는 자기 생각을 충분히 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설득당하기 전까지는 굽히지 않는 성격 때문에 어느 때는 감독들과 의견 충돌이 있다.
승완 = 사실 ‘죽거나…’ 때는 나는 여전히 배우에 대한 동경이 있었다.(어릴 적 돌아가신 그들의 부모도 ‘온양 귀공자’로 불리던 승범을 배우가 될아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런데 승범이가 배우로 완전히 자리를 잡으니 나의 욕망도 바뀌는 것 같다. 다른 연기자들을볼 때와는 다르다. 내 일부가 살아서 움직인다는 생각이 든다.
승범 = SBS 드라마 ‘화려한 시절’의 철진은 어느 동네에나 있을 법한 골칫덩어리다. 그러나 ‘못난 소나무가 산을 지키듯’ 철진은 어머니와 할머니 곁에 오래 남아있을 만한아들이어서 사랑을 받는 캐릭터이다. 대중의 반응은 고맙다. 얼마 전 “돈이 없어 용돈을 모아서 샀다”며 300원짜리 초콜릿 한 박스를 보낸 강원도 학생을 생각하면 너무 고맙다. 선물을 받아 본 적이 별로 없다. 그러나 나는 지금 가장 불안하다. 느닷없이 ‘몰표’를 몰아주는 이 분위기를 즐기기엔 여유가 없다. 어린 친구들의 환호는 더 부담스럽고.
승완 = 그건 아마 승범이가 스타가아닌 ‘배우’가 되고 싶다는 생각 때문일 거다.나는 ‘다찌마와 리’ 이후 혈육으로서가 아니라 배우 류승범을 느끼게됐다. ‘와이키키 브라더스’ 때도 아슬아슬했는데 잘 넘겼다. 방송이라는 매체의한계가 승범이의 진면목을 다 보여주지는 못하지만, 이처럼 자유로운 캐릭터를 보여준 것은 TV 연기의 지평을 넓힌 것이라고 생각한다 (승범이 ‘가장 닮고 싶은 선배’로 꼽은 조재현도 승범을 두고 같은 말을 했다.)
승범 = 선물 받은 책 중에 ‘스타니슬라브스키 연기론’이 있어 한 번 읽어 보았다. 하도많은 사람들이 얘기하길래. 결론만 말하면, 내 체질은 아니다. 나는 배역에 맞추기보다 나에게 배역을 맞추는 편이다. 그래서 애드립도 가능하다.현장 답사를 충분히 한 후 여백을 남겨둔다. 즉흥 반응할 여지다. ‘배우는 인간들 사이에 있어야 한다”는 형의 얘기가 여전히 가슴에 남아있다. 연기는 어떻게 보면 ‘구라’다. 연기가 아닌 것처럼 보이는 연기, 그게 연기 아닌가.
승완 = 캬! 가끔 승범에 대해 깜짝놀란다. 어려서는 둘이 많이 달랐다. 내가 오히려 귀공자였고, 승범은 가꾸는 것은 많이 해도 생긴 것으로 고민했으면 큰일 날(?) 얼굴인데. 농담이다.승범인 운동을 잘했고, 난 꼴찌에서 항상 두번째였다. 그런데 이런 저런 일로 고민할 때 “형이 좋으면 좋은 거지”라는 승범의 말이 힘이 된다. 아내(강혜정좋은영화사 실장)의 이성적인 충고와는 또 다르다.
승범 = 난 아직 내가 배우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이 직업을 그만 두면 뭘 할까 아직 생각이 떠오르지는 않지만, 아직 나는 모색 중이다. 장거리 마라톤의 한가운데서.
승완 = 감독으로 나의 지향은 한번 비튼 장르 영화다. 선배 박찬욱 감독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도 적잖다. 그러나 그가 B급 영화에 비중을 더 두는 반면, 나의 영화는 장르 코드를 뒤트는 장르 영화다. ‘세븐 챈스’ 제너럴’의 버스터 키튼 감독처럼 슬랩스틱 코미디를 해보고 싶다.
에필로그 “사람이 변하니?”
‘비디오 가게 점원 출신의 감독’(류승완) ‘가출한 고교 중퇴생’(류승범)에게 이건 분명 행운이다. 그래서 사람들은“출세하니 기분 좋으냐” 라고 묻든지 “옛날 어려울 때 얘기를 더 자세히 들려달라”고 주문한다. 만일 이에 응하지 않는다면“변했다”고 한마디 할 게 틀림없다.
“나는 끊임없이 변할 거고, 내일이 오늘과달랐으면 한다. 배우는 변해야 한다. ‘변했다’는 말은 사람에 대한 가치평가가 될 수 없다”는 승범. 그러나 형제는 은근히 겁이난다. 환호가 질타로 바뀌는 것은 순간임을 알기에. “개나 고양이만 봐도 겁이 나는데 다른 것은 더하다”는 그들. 어쩌면 겁은 그들을 타락하지않게 만드는 소금이다. 겁은 나의 힘!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