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은 중간선거의 해다’-. 이렇게 써놓으니까 평범하게 보인다. ‘2002년은 21세기 들어 처음 실시되는 중간선거의 해다’-. 의미가 달라져 보인다. 말 그대로 ‘21세기 첫 중간선거’다. 올 선거는 어떤 정치적 파장을 몰고 올까. 벌써부터 그 풍향계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미국의 선거에는 여러 가지 진기록에, 징크스가 따라 다닌다. 1930년 중간선거, 그러니까 제31대 후버 대통령 시절부터 깨지지 않은 징크스가 있다. 공화당 행정부가 들어서면 거의 예외 없이 불경기가 뒤따르고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은 의석수를 잃는다는 것이다.
또 다른 징크스도 있다. 전쟁이 난지 12개월 내지 20개월이 지나면 미국민은 환멸을 느끼게 되고 그 결과 백악관을 차지한 정당은 중간선거에서 의석수를 잃게 된다는 것이다.
이로 보면 2002년 중간선거의 해는 부시 행정부로서는 ‘3재(三災) 아닌 2재’가 낀 해가 되는 셈이다. 부시 행정부는 공화당 행정부다. 경기가 별로 신통치 않다. 또 11월 중간선거가 실시될 무렵이면 테러전쟁이 발발한지 12개월이 지나는 시점이 돼 하는 말이다.
사실 이런 요인들이 악재가 될 소지가 없는 게 아니다. 그렇지만 부시 행정부로서 가장 최악의 시나리오는 지속적 불황 속에 테러전쟁 전선이 확대되는 경우로 점쳐지고 있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지난해 11번 금리를 내렸다. 전례가 없는 조치다. 그런데도 경제는 더 나빠진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이런 경우를 상정해 펼쳐진다. 즉 테러전쟁은 확전으로 치닫을 수밖에 없다는 전망이다.
국내문제의 돌파구를 해외에서 찾는다는 공식에 대입한 시나리오다. 1932년 대공황 때 당시 전쟁장관 헨리 스팀슨은 일본의 만주침략 사태에 개입하는 복안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대공황에서 탈출하려는 아이디어였다. 지난 98년 클린턴은 소말리아와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미사일 공격명령을 내렸다. 르윈스키 스캔들로 탄핵위기에 몰리자 해외에서 돌파구를 찾으려 했던 시도라는 풀이다.
이는 그러나 극소수 비관론자들의 전망이다. 다수의 전망은 그 반대다. 그러므로 2002년은 ‘1930년 중간선거 이후 이어져온 징크스를 깨는 해’가 될 수도 있다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지고 있다. 부시의 공화당 승리로 결판 날 공산이 크다는 전망이다.
연방의회 예산사무소는 최근 괄목할 통계를 발표했다. 미국 중산층 가정의 연소득이 인플레율을 감안해 1979년 4만1,400달러에서 1997년에는 9%가 증가한 4만5,100달러를 기록했다는 것이다. 같은 기간 톱 1% 계층의 연소득은 42만200달러에서 101만6,000달러를 기록, 140% 증가를 보였다. 다른 말로하면 톱 1% 계층의 소득은 지난 79년 중산층의 10배 수준을 보이다가 97년에는 23배 이상 늘었다는 것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건 뭘까. 소득의 구조적 변화는 정치에 반영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 결과가 정치의 양극화 현상이라는 게 폴 크루그먼 같은 진보파 논객의 지적이다.
이런 구도에서 공화당은 더 우경화 경향을 보이면서 정치적으로 공세의 입장이다. 민주당은 수세다. 거기다가 선거자금이다, 로비다 한마디로 돈이 정치적 토론을 좌지우지하는 미국의 정치 경향이다. 이를 감안할 때 양극화 정치구도는 공화당에 유리하다는 분석이다. 이게 징크스를 깰 첫 번째 요인이라는 것.
"가장 섹시한 남성은 도널드 럼스펠드다." 이런 현상과 관련해 로버트 바틀리 같은 보수파 논객은 ‘레드넥 시대’(redneck·무식한 백인을 경멸적으로 부르는 말)의 도래를 점치고 있다.
미국의 정치·사회적 분위기가 사뭇 달라졌다는 의미다. 9.11 테러가 물론 주원인이다. 그러나 ‘전쟁이 나면 대통령을 중심으로 뭉친다’는 전통만으로는 이 현상을 설명할 수는 없다. 부시 지지율이 높게 나타난 민주당 대상 여론조사 결과가 이 현상을 상당 부문 설명해주고 있다.
부시, 럼스펠드, 줄리아니 전 뉴욕시장, 경찰관과 소방관 그리고 델타포스 요원. 이들이 영웅이 된 시대. 이는 한 마디로 미국민의 지도자상이 바뀌었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점이 오랜 징크스를 깰 수 있는 또 다른 요인이라는 이야기다.
보수파의 전망은 한 걸음, 아니 서너 걸음 더 나간다. 중간선거 결과 공화당의 연방상원 다수 위치 재탈환과 함께 새로운 보수주의 시대가 열린다는 전망이다. 말하자면 ‘레이건 시대’에 버금가는 ‘부시 시대’가 펼쳐지면서 미국의 정치판은 다시 짜여진다는 전망이다. 과연 그렇게 될까. 두고 볼일이다.
그나저나 2002년 같은 해 열리는 한국 대선은 어떤 결과를 가져올까. ‘3김 동시 퇴진’에 ‘지역대결 구도 청산’의 결과를 가져온다고? 이 역시 두고 볼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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