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인 전문가들 새해경제좌담
▶ 경제 리드할 테크놀러지 없어...홈 네트워크등 틈새 공략은 가능
안상호-지난 1년간 경제를 생각해 보면, 우선 제목 뽑기가 힘든 한 해였다는 생각입니다. 신문에서 자주 받아쓰는 경제지수가 20개 안팎인데 지수상 어제는 괜찮았는데 오늘은 나쁘고, 같은 날 경제 인덱스가 3개 나오면 2개는 나쁘고, 하나는 좋고, 하는 식이었습니다. 보도에 일관성이 있을 수 없고, 독자들로서는‘믿을 수 없는 경제뉴스’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지속되면서 시나브로 나빠진 게 지난해 경제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입니다.
이종열-민간 컨수머쪽은 문제가 없었죠. 기업투자, 그중 3분의 2가 하이텍인데, 그게 줄어든게 불경기의 주요 원인이었습니다. 변수가 너무 많기 때문에 올 전망을 내놓기는 어렵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번 불경기가 지난 70·80·90년대 초반에 비하면 제일 걱정할 필요가 없는 불경기라는 겁니다. 무엇보다 인플레가 없어요. 회복정책을 쓰려고 해도 인플레가 있으면 옵션이 제한되지만 이번에는 정부로서는 카드가 많아요.
경제의 3분의2는 민간부분인데 그게 괜찮아요. 경기가 내려갈 때는 주택과 자동차 판매가 확 주는데 이자율 때문이긴 하나 그것도 괜찮지 않습니까. 문제는 기업투자로 투자수익율이 장기 이자율에 리스크 프레미엄(risk premium)을 더한 숫자(hurdle rate) 보다 높아야 하는데 지금은 투자위험이 너무 높아 투자가 이뤄지지 않고 있어요.
스티브 김-테크놀러지 쪽은 인터넷 거품이 꺼지면서 지난해 최악을 경험했다고 봐야죠. 과잉투자로 인한 over capacity가 문제였습니다. 예컨대 경기가 한창일 때 6개월 후에야 재공급이 가능한 부품이 모자라 어려움을 겪었던 하이텍 쪽에서는 여러 곳에 주문을 내 과잉상태가 됐지만 경기하락으로 큰 어려움을 겪다가 지난 12달새 재고를 소진했다고 봐야죠.
특히 경쟁이 극심한 텔컴쪽은 인컴은 없고, 주가는 떨어지면서 경비지출을 낮추고, 주문은 잇달아 취소했지만 아직도 어려워서 언제 회복될지 모르는 상태지요.
민수봉-미 큰 은행들의 순익이 지난해 대부분 20% 정도 줄어든 것과는 대조적으로 한인은행들은 일부 경비지출이 많았던 곳을 빼면 순익이 더 늘었어요. 다운타운 경기는 나빴지만 부동산이 융자의 70% 정도를 차지하는 우리 은행들의 다운타운 의존도는 낮았어요.
스티브 김-한국서 들어오는 돈이 그만큼 많다는 이야기 아닙니까. 은행 성장이 한인사회 성장을 그대로 반영하지는 않는다는 생각입니다.
민수봉-한국 변수가 크지요. 한국에서 오는 투자는 오픈된 상태입니다. 특히 10만달러 이상 투자비자(E2)를 통해 들어오는 자금이 상당 규모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이 돈으로 비즈니스를 구입하려 할 때 다시 은행대출을 일으키지요. 유입과정이 합법인지는 모르지만 한국서 들어오는 돈은 커뮤니티로 봐서는 가득율 100%라고 봐야 합니다. 예금 증가율이 곧 커뮤니티 성장률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지적에는 동감합니다.
이종열-지난 주말에는 가족들과 한인타운의 한 식당에 갔었는데 번호표를 받고 25분을 기다렸습니다. 갈비 1인분에 20달러가까이 되는 식당인데 이런 현상을 보면 타운이 과연 불경기인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민수봉-타운과 한인경제의 특수성을 엿볼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리틀토쿄만 해도 기념품, 화장품가게를 운영하는 한인이 많아요. 적정 투자이윤이 보장 안되면 철수하는 사람들과는 달리 우리는 가족끼리 비즈니스 해서 호구지책이 해결되고, 자식들 교육을 시킬 수 있으면 계속 비즈니스를 하는 거지요.
안상호-올 경제전망에 대해서는 교과서처럼 나와 있는 말이 있습니다. ‘2·4분기 이후에는 회복된다. 회복형태는 V자형이 아니고 U자형’이란 게 곧 그것입니다. 미디어는 물론 잭 카이저나 제임스 도티 같은 남가주의 알아주는 경기전망학자들의 견해가 동일합니다. 올해도 하이텍쪽에서 어떤 역할을 하지 않겠느냐는 전망도 있습니다. 물론 같은 종목이 두 번 잇달아 힘쓴 적이 없다는 역사적 사실을 근거로 한 반론도 있습니다만-.
스티브 김-미국 자체는 엄청난 파워 하우스죠. 이자율은 미국와서 처음 보는 최저치인데다 오일 프라이스 낮고, 주택경기 좋지, 실업율은 다소 높은 것 같으나 그것도 숫자로만 볼 수 없는게 돈있는 사람들이 몇 십배 더 쓰니까요.
민수봉-실업율 6%대는 아직 선진국에 비하면 낮지요. 독일이나 프랑스 같은 곳은 9%도 곧잘 가지 않습니까.
이종열-우리가 경제원론 공부할 때는 실업율 6%는 적정선이라고 배웠어요. 요즘은 실업율이 올라도 실업 때문에 생기는 비극은 잘 들려오지 않아요. 우선 대부분 맞벌이여서 투 페이첵이 실직의 완충역을 하고 있고, 특히 실직이 많은 화이트컬러 계층은 워낙 유동성이 높아 5년에 한 번 직장이 바뀌지 않으면 이상하다고 하는 풍토이기 때문에 모빌리티에 대한 준비가 갖춰져 있다고 봐야지요. 게다가 요즘 젊은층은 실직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요. 우리 세대는 새 직장을 구한 다음에 그만두는데 요즘은 그만 두고난 다음 직장을 찾더군요. 실업율이 높아져도 소비가 줄지 않는 이유도 여기 있는 것 같아요.
스티브 김-하이텍은 PE 비율이 아직 엄청 높아요. 주식의 시장가치가 세일즈 총액의 10배, 20배, 시스코 같은 곳은 아직 100배나 되요. 수입도 없고, 순익도 없는데도 그런 곳이 많아요.
지금은 경제를 주도할 테크놀러지가 없어요. 역사적으로 유례가 없었던 90년 후반 상황은 재현되기 힘들기 때문에 그 때를 생각하면 안되요. 90년 후반 경제를 주도하던 테크놀러지중 하나인 인터넷은 수 천개 회사를 만들었고, 막 보급되기 시작한 무선전화는 엄청난 경제효과를 가져왔어요. PC는 각 가정에 학생 수만큼 들어갔고, 그때 회사를 운영하던 저도 6개월에 한 번은 컴퓨터를 바꿔 줬어요. 그런데 90년대 후반 풍미했던 그 신기술들이 이제는 그만한 마켓을 창출할 수 없고, 이들 대체할 만한 신기술도 없어요. 물론 하이텍이 죽었다는 것은 아니고, 아직 틈새시장은 남아 있지만 한 해 40~50%씩 성장하기도 했던 90년대 후반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이종열-개선은 있겠지만 혁명은 없다는 이야기겠지요.
안상호-하이텍 때문에 망한 것은 이미 재작년 상황 아닙니까.
스티브 김-작년에 더 잃었어요, 5,000씩 하던 나스닥이 조금씩 떨어지다 3,000, 2,000 하니까 지금이야말로 기회라며 계속 투자하다가 마침내 손 턴 사람이 적지 않아요. 그때 손해본 사람 중에는 100달러 하던 주식이 지금 5달러 하니까 언젠가는 또 올라가겠지 하는 마음으로 기술주만 바라보는데 그 때 상황은 다시 되풀이될 수 없어요. 주식투자는 정말 보수적이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 경험입니다.
이종열-텍에 투자하는 사람들은 라스베가스에서 5달러짜리 비디오 포커를 하다가 돈을 잃은 사람이 다시 돌아와 1달러나 25센트짜리 포커를 찾지 않는 것과 같은 심리로 봐야지요. 돈을 따봐야 손해니까 한번 하이텍에 맛을 들이면 사실 회복할 때도 선택이 어려워 그렇지 스타만 하나 찾을 수 있다면 그 길밖에 없기 때문에 결국 하이텍으로 가는 것이지요.
결국 올해 경제는‘회복은 된다, 그러나 신통한 회복은 되지 못하리라’는 것으로 정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참석자
스티브 김 <알카텔 벤처스 대표>
민수봉 <윌셔은행 행장>
이종열 <뉴욕 페이스대 석좌교수>
◇사회
안상호 경제부장
◇기록·정리
김수현 기자
<이승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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