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획취재-경마장의 한인들
▶ 비즈니스 날리고 가정파탄
경마도박에 중독돼 재산을 탕진하고 가정파탄에 이르는 한인들이 많다. 할리웃팍이나 샌타아니타, 로스 알라미토스 등 LA일원의 경마장에는 평일 낮에도 도박을 위해 몰려드는 한인 경마꾼들로 붐빈다. 경마장을 찾는 한인들 중에는 일부 스포츠로서 경마를 즐기거나 가족들과 나들이 삼아 나선 경우도 있지만 ‘대 박’을 터뜨려 한 몫 잡아보겠다는 사람들도 상당수에 달한다. 경마장을 찾는 한인들의 두 모습을 밀착 취재했다.
풀러튼에 사는 한인 김모(38)씨는 스스로를 ‘경마꾼’이라 부른다. 우연히 인근 경마장에 구경 삼아 갔던 게 계기가 돼 경마장을 출입하기 시작한 게 올해로 벌써 7년. 처음에는 스트레스 해소 차원에서 한 두 번 시도했다 돈을 거는 재미에 빠져 사업도 팽개쳤고 요즘엔 경마장 모습이 아른거려 안절부절못하는 중독자 신세가 됐다. 그동안 가족들 몰래 매주 적게는 200∼300달러에서 많게는 1,000달러 이상까지 경마에 돈을 걸어오면서 몇 차례 따긴 했지만 잃은 돈이 더 많았다.
이러한 한인 ‘꾼’들 중에는 십여년 동안 피땀 흘려 운영해온 마켓을 몇 달만에 날리고 이혼까지 당한 경우도 심심찮게 발견된다. 경마장 주위의 한인들 사이에서는 사업을 하던 누구누구가 경마에 빠져 수십만달러를 날리고 쪽박을 차게 됐다는 이야기가 솔솔 들려온다.
경마는 베팅을 하는 속성 때문에 도박성과 중독성이 매우 강하다. 특히 한탕주의에 익숙한 한인들은 승리마를 점치는 데 필요한 지식과 경험도 제대로 갖추지 않은 채 덤벼드는 경우가 허다하다. 가장 승리가 유력하고 많은 돈이 걸리는 말(페이버릿·Favorite)이라도 이길 확률이 35%선에 불과하기 때문에 초보 경마 팬일 경우 전문지에 수록된 경주마 기록, 주행, 습성 등 여러 자료를 참고해 스스로 경주 전개과정을 추리하는 훈련을 해야 한다고 경마 전문가들이 조언할 정도이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조모(47·LA)씨의 경험담은 경마의 중독성을 잘 말해주고 있다. 경마에 빠져들면서도 일요일만은 경마장을 찾지 않았다는 조씨는 "예배중에도 경마장 생각만 떠올라 도저히 앉아있을 수가 없더라"고 털어놓았다. 결국 교회도 포기한 채 일요일에도 경마장으로 달려가곤 했던 조씨는 요즘 상담기관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경마 중독자 등을 돕는 한인 중독증회복선교센터의 이해왕 선교사는 "경마에 빠진 한인들은 카지노 도박이나 마약, 알콜 등 다른 중독증세를 가진 한인들에 비해 수적으로 적지만 상담치료를 받는 중에도 경마장이 눈에 아른거린다고 털어놓는 등 심한 증상을 보이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샌퍼낸도밸리에 사는 한인 이모(36)씨에게 있어 경마는 저렴한 경비의 레저 스포츠다. 말달리는 것만 봐도 스트레스가 확 풀리고 경마장의 관중들과 더불어 함성을 질러대면 속이 다 시원해진다고 한다. 함께 일하는 백모(32)씨가 "어제 경마장에서 딴 돈으로 조카 자전거를 사줬다"며 싱글벙글하는 모습을 보고 재미 삼아 경마장에 동행했다 이젠 한 달에 2회 정도 경마장을 찾아 경주 당 1~2달러 정도의 베팅으로 한나절을 즐겁게 보낸다는 게 이씨의 말. 남모(27·여)씨는 남자친구를 따라 샌타애니타 경마장에 갔다가 한인 조명권씨 소유의 말 ‘레이디로어’(Ladylore)를 발견하고 ‘레이디로어’ 팬이 됐다.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경마장을 찾은 한인 이모(53)씨는 "돈을 딸 수 있는 확률은 20%지만 하루종일 좁은 실내공간에만 틀어박혀 있다가 자연을 달리는 말을 접하면 에너지 충전이 돼 힘이 솟는다"고 말했다.
한편 보통 30분 간격으로 경주가 열리는 샌타아니타 경마장은 평일과 휴일 할 것 없이 수 천명의 경마 팬들로 꽉 들어찬다. 티켓부스에는 평일에도 빈 부스가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서 마권을 구입하고 있고 대형스크린이 설치된 로비는 지나간 시합을 바탕으로 우승마를 점치려는 경마꾼들로 늘 부산한 분위기다.
<김중석 기자> edkim@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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