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쪽 다리를 절단한채 풋볼선수로서 재기한 닐 페리의 인간승리 드라마가 화제를 끌고 있다. 주인공 페리는 실질적으로 도저히 불가능한 상황을 극복한 산호세 주립대학 풋볼 스페셜팀 선수.
페리는 지난 2000년, 풋볼경기 도중 치명적인 부상을 당한 이래 무려 열 아홉 번의 수술을 받았다. 처음에는 오른쪽 다리 무릎 아래 절단 수술로 시작하여, 잦은 감염 합병증으로 인한 후속수술이 계속되었다. 게다가, 풋볼선수로 재기하기 위해 실험적 수술을 추가로 받았다. 이 과정에서 페리는 "두 다리를 모두 잃지 않는 한, 반드시 필드로 복귀하겠다"고 줄기차게 말했다.
만일 페리가 다음 시즌 필드에 정식 복귀한다면, 그는 브라이언 힐 이후 다리에 의족을 달고 대학풋볼리그 선수로 뛰는 최초의 선수가 될 것이다. 힐은 1974-76 시즌, 의족을 달고 텍사스 공과대학팀에서 선수생활을 했다.
페리의 풋볼필드 복귀는 담당의료진들도 극구 만류했을만큼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의족전문가 처크 스토커트도 페리에게 굳이 운동을 원한다면 장애자 올림픽 쪽을 선택하라고 권유했엇다. 스토커트는 페리를 위해 특수소재를 사용한 7,000달러짜리 의족을 새로 디자인했다.
페리의 불굴 의지는 결국 주변의 시선마저 바꿔놓기에 이르렀다.
샌호세 대학의 피츠 힐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페리가 팀에 복귀할 것으로 의심치 않는다. 인간은 정신의 지배를 받는 동물이다. 페리의 불굴의 정신은 불가능을 극복하고 있다"
현재 미국에는 의족을 한 사람이 거의 300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 많은 사람 중에서 의족을 달고 격렬한 운동인 풋볼을 하겠다고 나서는 사람은 페리 밖에 없을 것이다. 페리는 2000년 10월 23일, 다리를 절단한지 며칠만에 다시 풋볼을 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페리가 그같은 결심을 굳히기까지는 가족들간의 남다른 유대가 큰 힘이 되었다. 이런 면에서 페리의 가족이 보여준 용기는 가족들이 똘똘뭉쳐 시련을 극복하고 새 삶을 개척한다는 한편의 디즈니영화를 연상시킨다. 그리고, 페리가 앞으로 풋볼필드에 복귀하는 날은 2000년 10월 14일 이래 그의 가족들이 겪어온 드라마의 절정이 될 것이다.
사고가 나던 날, 페리의 전 가족들은 경기장에서 페리의 경기장면을 지켜보고 있다. 그중 페리의 큰형 조시 페리는 같은 대학 풋볼팀의 라인베커로서 함께 경기를 하던 중이었다. 운명의 그 날, 샌호세 대학팀은 방문팀인 엘파소 대학과 홈경기를 벌이고 있었다. 그런데 3쿼터 경기가 진행중일 무렵, 한순간 선수들이 뒤엉키면서 동료선수가 페리의 다리 위로 굴러떨어졌다.
그 순간 페리는 다리뼈가 피부 밖으로 돌출해 나오는 큰 부상을 당했다.
처음 사고현장으로 달려간 형 조시는 차마 그 장면을 보지 못하고 비명을 지르며 한쪽으로 비켜섰다. 다음으로 해군 간호사 출신인 아버지가 필드로 뛰어들었다. 호흡기 교정사인 어머니는 관중석에 얼어붙은채, 아들이 전신마비가 될 것으로 생각했다. 사고직후 페리가 한동안 꼼짝도 하지 않고 누워있었기 때문이다.
그날 이후 몇 달간은 가족들에게 악몽과도 같은 나날이었다.
처음에 페리가 두번의 다리 골절상 수술을 끝냈을 때만 해도 일이 순조로울 듯 보였다. 하지만, 세균감염 합병증이 뒤따르면서 페리의 체온이 불덩이처럼 높아졌다. 의사들은 하는 수 없이 사고 발생 11일만에 페리의 오른쪽 무릎 11센티미터 아래를 절단할 수 밖에 없었다.
페리가 다시 풋볼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은 아무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페리의 다리절단 수술을 집도한 의사도 "페리가 풋볼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했다"고 술회한다. 따라서, 나중에 페리의 풋볼 복귀소식을 듣고 가장 놀란 사람도 이 의사였다.
페리가 대반전을 이룬 것은 다리절단 수술을 받은지 며칠 후의 일이었다.
미전역에서 페리를 성원하는 편지들이 속속 배달되고 있었다. 페리는 아버지와 함께 TV 풋볼중계를 보다가 "내가 다시 걸을 수 있다면, 다시 달릴 수도 있겠죠"라고 물었다. 그는 아버지의 동의를 얻은 후 "다시 달릴 수 있다면, 풋볼경기도 할 수 있는 것 아녜요"라고 되물었다.
아버지는 한참 생각한 후 "기본적으로 그렇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러기까지는 엄청난 고통이 뒤따를 것이고, 많은 좌절을 감수해야 할 것이다"고 조언했다. 그 순간, 페리의 머리 속에서는 섬광처럼 재기의 의지가 번쩍였다.
아버지의 말대로 풋볼선수로서의 재활훈련은 엄청난 고통을 수반했다.
페리는 고통을 이기기 위해 모르핀을 사용했는데, 나중에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모르핀 중독자가 된 적도 있다.
다음으로 그를 괴롭힌 것은 두려움이었다. 특히, 다리의 붓기가 다 사라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의족을 끼울 때까지 페리는 엄청난 실의와 두려움에 시달렸다. 다시 정상인이 되어 여자를 만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도 있었다. 이 과정에서 페리는 체중이 50 파운드나 빠졌다.
하지만, 그는 이 모든 과정을 극복하고 사고를 당한지 몇 개월만에 스파르탄스 팀에 다시 합류할 수 있었다.
신장 6피트 체중 176파운드의 페리는 그 사이에 믿을 수 없을 만큼 건강한 몸을 단련하여 훈련장에 나타남으로써 주위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심지어, 달리기 훈련에서 일부 동료선수들을 앞지르는 믿을 수 없는 광경을 연출하기도 했다.
이같은 기적이 일어나기까지는 우주과학시대의 첨단기술도 한 몫을 했다.
첨단소재를 사용한 의족장치가 큰 도움이 됐기 때문이다. 페리는 처음에 필드에서 워밍업 운동을 시작했고, 체육관에서 다른 재활선수들과 몸가꾸기 운동을 함께 했다. 마지막 단계는 필드에 나가 달리기 운동을 하는 것이었다.
페리의 재활과정을 지켜본 샌호세 대학 컨디션코치 킴 소드는 "직접 눈으로 보지 않으면 믿을 수 없다. 한쪽 다리를 절단한지 몇 달만에 저렇게 달린다는 것은 경이다"고 감탄했다.
페리는 지난 해 4월, 골프장에 나가 36홀을 돌기도 했다. 세균감염 때문에 죽을 것 같은 위기를 이겨낸 직후의 일이었다. 페리는 붓기가 갈아 앉을 때까지 기다리는 인내심을 연마해야 했다.
모든 과정을 통해 가장 힘들었던 것은 새로운 자신감과 의지를 회복하는 문제였다.
그때마다 페리는 "나는 다리를 절단하기 이전과 조금도 다름이 없는 사람이다"라고 속으로 되뇌었다. 특히, 사람들 앞에서 의족을 내보이며 옷을 갈아 입을 때마다 스스로를 격려하곤 했다.
요즘 페리는 농구, 골프, 스키, 볼링, 웨이크보드, 심지어 고우카트 경주까지 즐긴다. 또한 인간승리의 상징으로서 많은 학교들로부터 초청받는 유명강사가 되었고, 일부 병원들도 신체절단 환자들을 위한 상담방문 요청을 해 온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아름다운 여자친구까지 새로 생겼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