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찮아 보이는 것이 생각지도 못한 큰 손실을 끼칠 때가 있다. 항공업계에서는 기러기나 갈매기같은 새들이 그런 존재이다. 34만파운드의 보잉 747기 옆에서 1파운드의 갈매기는 눈에도 띄지 않는 미물. 그러나 이런 작은 새들과 비행기의 충돌로 인한 재정적 손실이 미국에서 연간 4억달러가 넘는다. 비행기 이착륙시 옆에서 날던 갈매기나 기러기 류가 엔진으로 빨려 들어가면 수리비가 최소한 100만달러가 들기 때문이다.
우리 일상생활에서도 한껏 부풀었던 기대가 생각지도 못한 사소한 일로 망쳐지는 때가 있다. LA의 차재영씨에게는 지난 1일이 그런 날이었다. 새해 첫날 그는 상쾌한 기분으로 2002년을 맞으려고 팜 스프링스 인근 샌 하신토 마운틴을 찾았다.
한국의 대관령 같은 꼬불꼬불한 산길을 올라 도달한 산정은 별세계였다. 그러나 그 싱그러운 기분은 산속의 약수터에 도착하면서 엉망이 되어 버렸다.
“10명 정도가 물통을 들고 차례를 기다리고 있더군요. 모두 타민족인데 근처 호숫가에서 캠핑하는 사람들 같았습니다. 그런데 줄이 도무지 움직이지를 않아요. 맨 앞을 보니 물통들이 좍 늘어서 있고 어느 한인가족이 물을 받고 있었습니다”
줄지어선 5갤론짜리 물통들을 세어보니 26개. 그 앞에 황당한 표정으로 서있는 타민족 사람들. 보다 못한 차씨는 물을 받고 있던 50대 한인남성에게 제안을 했다. “물 한통 받을 때마다 뒤의 사람들도 한통씩 받아 가게 하면 좋지 않겠느냐”고. 그러나 그 제안은 여지없이 묵살되어 버렸다고 한다.
3-4주전 연말 파티가 한창일 때 나이 지긋한 독자 한분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LA 한인타운 인근의 한 종합병원 연말파티에 참석했다가 ‘낯 뜨거운 장면’을 목격했다는 내용이었다.
“250명 정도 참석자의 대부분이 의사들이고 90% 이상이 타인종이었습니다. 파티 분위기가 쾌적하게 무르익어 가고 있는데 갑자기 왁자지껄하더니 우당탕 소리가 나는 겁니다. 놀라서 쳐다보니 웬 남자들이 머리카락을 움켜잡고 싸우는 거예요. 그러면서 고성이 터져나오는데 그 말이 한국말이었습니다”
옆에 있던 타인종 친구가 “저 사람들 코리안 아니야!”하는 말에 “아니, 아메리칸이야!”라고 응수하긴 했지만 “속으로 통곡을 했다”고 그분은 말했다.
“이들이 이러하기 때문에 미국인들이 우리 민족을 미개인으로 본다”는 말은 100년전 샌프란시스코 대로변에서 상투 잡고 싸우는 한국사람들을 보고 도산이 내린 결론이었다. 이후 도산은 집안팍을 청소하고, 복장을 깨끗이 하며, 남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나직나직하게 이야기하고, 이웃사람들이 싫어하는 냄새나 행동은 삼가도록 계몽하는 일로 민족운동을 시작했다.
“서로 이웃을 위하는 것이 문명인의 도리”라고 도산은 가르쳤다. ‘남을 배려하는 마음’- 도산은 바로 매너교육을 한 것이었다.
매너란 이 세상이 나 혼자 사는 곳이 아니라 남들과 더불어 사는 곳이라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그래서 남들과 마주치면 미소를 짓고, 인사를 하며, 다른 사람이 잘 들어가도록 문을 잡아 주며 돕는 일들을 한다.
그러면 이런 예의범절은 단순히 문명사회의 액세서리일까. 어쩌면 인류가 만물의 영장으로 힘을 키운 주 무기였을 지도 모른다는 연구보고가 있다.
에모리대학 영장류 연구센터가 한 영리한 원숭이 종족을 관찰한 바에 따르면 이들 원숭이는 남을 배려하는 것이 몸에 밴 ‘매너 선생님들’이다.
키작은 원숭이가 높은 나뭇가지의 과일을 따려고 하면 으레 키큰 원숭이가 대신 따주고, 도움을 받은 원숭이는 상대방이 요구하지 않아도 과일을 나눠주는 것이 생활화되었다고 한다.
몸도 작고 힘도 약한 인간이 자연계를 지배하게 된 것은 이렇게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되어준 덕분이 아니었을까 하고 영장류 연구학자들은 해석했다.
“한국사람 한명이 미국인에게 불쾌한 생각을 주면 그로 인해 전미국인이 우리 민족 전체를 불쾌하게 생각한다”는 도산의 가르침은 지금도 유효하다. 약수터를 독점하고, 공개석상에서 육탄전을 벌이는 일은 어쩌다 일어나는 해프닝이다. 하지만 “저 사람 코리안아냐!”하는 사소한 말이 한인사회의 비상을 막는 걸림돌이 될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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