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에세이
▶ 이 정인(특집 1부 부장대우)
최근 자주 접하는 한 목사의 홈페이지가 있다. 대예배설교서부터 강해설교, 신앙칼럼, 사랑의 칼럼, 묵상노트, 영어노트등의 사이트도 돌아보지만 누구나 의견을 남기는 자유말씀 게시판은 더욱 꼼꼼이 읽는다. 홈페이지 주인인 개척교회 목사와 비슷한 고만고만한 소시민들이 아름다운 동영상과 시를 띄우고 주변의 감동적인 스토리를 나눈다. 일상사로 찌들린 마음의 때를 청소하는데 제격이라 싶어 즐겨 찾는다.
며칠전 김지훈이라는 20세 청년이 ‘상담 좀 해주세요’라는 글을 올렸다. 요약하면 ‘고교때 부모님께 반항하고 학교를 자퇴한 뒤 검정고시로 졸업장은 땄다. 가세도 기울어 조그만 전세방에 5명이 살고 있다. 신문배달 하다가 지금은 회집에서 일한다. 친구들은 유학도 가고 부모님이 주는 용돈으로 쉽게 산다. 돈을 벌지 않으면 안되는데 몸과 마음이 다 지쳤다. 이제야 공부도 하고 싶은데 도무지 길이 안 보인다. 제발 욕이라도 해달라’였다.
그러자 순식간에 엄청난 리플이 붙었다. 목사의 ‘나도 19살 때 검정고시로 고교졸업장을 땄다’.는 고백에서부터 ‘어린 나이에 무작정 상경한 후 처절한 생존투쟁을 했다’는 뉴욕의 신학대학 교수의 격려등이 전세계에서 줄을 이었다. 아들에게 주려고 간직했던 뱁콕(Maltbie D. Babcock)의 시 ‘젊은이에게’가 올랐고 ‘그가 너를 지키신다. 당신은 결코 혼자가 아닙니다. 희망 한 그릇. 누군가 널 위해 기도하네. 굽이 돌아가는 길 ‘등의 글로 기복 많은 인생행로에 선 20세 청년을 힘내라고 응원했다.
한번도 본 적 없는 청년을 피붙이처럼 진심으로 위로하고 기도해주는 마음들을 보면서 가슴이 뜨거워지고 눈물이 났다. 이기심 때문에 자신과 가족을 살피기만도 버거워하는 요즘 세상에서 보기 드문 모습이어서 였을 것이다.
다음날 지훈이 ‘눈물이 날 정도로 감격했다’며 ‘우울했던 마음이 활짝 펴지고 이제부터 열심히 살겠다는 힘을 얻었다. 일단 어렸을 적 나갔던 교회부터 다시 가야겠다. 열심히 살아갈테니 지켜 봐 달라’는 내용을 올렸다. 저절로 안도의 한숨과 박수가 나왔다.
어떤 종교에서건 기도는 기적까지 창출하는 위력을 가지고 있다. 그런 맥락에서 최근에 각 한인교회에서 불길처럼 번지는 새벽기도 열기는 교회가 교회답게, 교인이 교인답게, 목사가 목자답게 보이게 하는 반가운 신호다.
새벽기도는 소리 높여 외치기보다는 묵상이나 깊은 침묵의 기도를 통해 진리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는 시간이다. 그동안 쏟아놓기만 해서 얕아진 영성을 다시 깊게 만들고 상처투성이 내면을 치유하느라 많은 이들이 새벽 제단을 쌓고 있다고 한다.
신학생들 앞에서 어느 목사가 한 얘기가 잊혀지지 않는다. 불교에는 이판사판이란 말이 있다. 이치를 판단한다는 뜻의 이판승은 성철스님 같이 평생 기도에 몰두한 선사들을 뜻하고 일한다는 뜻의 사판승은 조계종 총무원장서부터 모든 행정승려들이다. 가톨릭에도 수도사들을 일컫는 이판과 교황이나 추기경을 비롯한 행정신부들인 사판이 있다.
불교계에서 사판승들이 아무리 흙탕물을 튀겨도 깨어있는 이판승들이 있는 한 불교는 흔들리지 않는다고 했다. 또 아무리 가톨릭이 부패해도 역시 수도원에서 깊은 영성을 닦는 이판들이 있는 한 가톨릭은 계속 존재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판의 특징을 침묵의 기도를 드리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그러나 종교개혁으로 이판은 사라졌고 이제 개신교에는 묵상의 기도, 침묵의 기도가 사라졌다고 지적했다. 개신교회는 자신의 욕망의 소리를 크게 소리쳐 외치는 것만을 기도로 여기지만 사실은 영성이나 성숙의 깊이는 입으로 말하는 시간이 아니라 입을 다물고 침묵의 기도를 하는 시간과 비례한다고 그는 강조했다.
일상에서 눈에 띄는 것은 어쩔 수 없이 사판들이다. 목회자나 장로등 평신도들도 돈이나 권력, 명예가 관련된 행정업무 속에서 혼란의 올무에 걸려든다. 교계 단체나 기관의 회장 선출을 둘러싼 치졸한 싸움도 사판끼리 벌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다수의 목사나 교인들은 입을 다물고 침묵의 기도를 드리는 이판대열에 있다고 보고 싶다. 그래서 더 많은 지훈이들이 그 기도에 힘입어 갈 길을 찾게 되길 바란다.
jungilee@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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