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삶의 길목에서...]
▶ 이기영 (본보 주필)
동서 냉전시대의 스파이전을 다룬 007영화 시리즈는 우리 세대에 대흥행을 기록한 오락영화 시리즈의 하나이다.
이안 플레밍 원작을 각색한 이 영화는 전설적인 공작원 007의 역을 맡은 숀 코넬리, 로저 무어 등의 명연기와 환상적인 스파이 무기, 기상천외의 스파이 공작으로 한때 007 붐을 일으켰다. 그리하여 수많은 007류의 영화가 등장하는가 하면 비디오, DVD, 게임, 장난감, 만화, 포스터, 서적 등 007 관련산업이 봇물을 이루었다.
007은 영국의 스파이이다. 영국은 그만큼 정보활동에 전통이 있다. 국방부와 공군 등 별도의 정보부서가 있지만, 그 중에서도 유명한 것은 SIS, 즉 비밀정보국이다. 비밀정보국은 해외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1909년 출범한 비밀활동국의 외국부가 1922년 분리 독립한 것이다.
20세기 초만 해도 세계 대국이었던 영국은 세계 어느 나라 보다도 해외정보의 수집능력이 앞서 있었다. 그러나 2차대전 후 동서 냉전시대의 정보전은 단연 CIA와 KGB 의 대결이었다. 소련의 KGB의 역사도 매우 길다.
소련공산혁명 후 내외국인을 감시 통제하기 위해 체카라는 비밀경찰기구가 생겼는데 이 기구가 계속 확대 발전해 오다 1954년 KGB(국가보안위원회)로 개칭되면서 당서기국과 직접 연결되는 거대한 실권 조직이 되었다.
KGB는 첩보 수집과 방첩 뿐만 아니라 고위 간부와 주요시설의 경호, 군내 보안감시 통제등 국가안보 전반을 장악했으나 1981년 연방의 해체와 더불어 그 위상이 추락, 1995년 연방안전국으로 개편됐다.
한편 미국 CIA(중앙정보국)은 2차대전 당시 정책결정과 군사작전 정보를 수집한 OSS(Office of Stategic Services)의 후신이다. 진주만 기습사건 이전부터 정보기구를 추진해 온 루즈벨트대통령은 1942년 OSS를 설치하여 과거에 FBI가 수행하던 해외정보 수집 업무를 전담시켰다.
2차대전이 끝난 후 OSS는 철폐되었고 그 후 트루만대통령 때인 1946년 국가정보원 설립에 이어 1947년 국가안전법에 의해 국가안보회의가 설치되고 산하에 CIA가 발족했다. CIA는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반공정책 아래서 앨런 델레스 국장이 취임하면서 세력이 확대되어 세계적 정보기관이 됐다.
CIA는 1953년 이란총리를 축출하고 1954년 과테말라의 좌익정부를 전복시키는 등 막강한 세력을 과시했으나 60년대 후반부터 의회와 언론의 공격을 받아 1974년 정보자유법의 개정 이후 활동이 위축되면서 정보 수집과 해외공작이 부진했다.
정보기관의 활약이 가장 눈부신 나라는 이스라엘이다. 1951년 벤구리온 수상이 창설한 이스라엘의 모사드는 전세계의 아랍국과 아랍단체를 상대로 정보 수집, 테러 대응, 공작활동을 하고 있다.
모사드의 활약중 가장 기억될만한 것은 1960년 아이히만의 체포이다. 아이히만은 2차대전 중 유럽의 유대인을 체포, 강제 이주시킨 총지휘자로 독일이 항복하자 아르헨티나로 도주, 가명으로 숨어 살았는데 모사드가 이를 추적, 체포하여 이스라엘로 압송했다.
그는 이스라엘 법정에서 유대인 학살죄로 사형판결을 받고 1962년 교수형에 처해졌다.
9.11테러 후 테러와의 전쟁에서 미국이 추적하는 타켓은 빈 라덴과 오마르인데 이 두 사람이 모두 오리무중이다. 아직 아프간에 있다는 말도 있고 이미 다른 나라로 탈출했다는 말도 있다.
그리고 파키스탄, 이란, 체첸, 소말리아로 갔다는 등 어느 것 하나 확실한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테러와의 전쟁은 막판에 장님이 코끼리를 만지는 격이 되었다.
그 많은 군인이 동원되고 폭탄을 투하하면서 떠들썩한 전쟁을 했지만 목표물을 상실한 것이다. 축구시합으로 말하자면 하루종일 상대방의 골 문턱에서 놀았지만 골은 하나도 넣지 못한 것이나 다름없는 전과인 것이다.
이제 날이 갈수록 빈 라덴과 오마르의 행방을 찾는 것이 어려워지고 있어 이들을 쫓던 미국은 허탈에 빠진 감이 없지 않다. 아프간을 탈출하여 다른 곳에 잠적했다면 이들을 찾는 것은 해변의 모래밭에서 바늘을 찾는 것처럼 어렵게 될 것이다. 그렇지만 이 두 사람은 찾아내야만 한다.
이들을 잡지 못하면 테러와의 전쟁이 종결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007의 제임스 본드가 실력을 발휘해야 한다.
냉전시대의 종식과 함께 미국의 정보기능이 취약해져서 미국은 앉은 채 테러를 당했다. 테러와의 전쟁은 전면전이 아니라 정보전이다.
정보기관의 위력을 다시 살려 이스라엘의 모사드가 아이히만을 잡듯이 빈 라덴과 오마르를 잡는 CIA의 007작전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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