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소국 오스트리아는 알파인 스키에 관한 한 국제 스키계의 작은 거인으로 군림한다. 최근 수년간 국제 스키계를 주름잡아 온 나라가 미국도 다른 나라도 아닌 오스트리아였기 때문이다.
반면, 미국 남자스키는 1994년 타미 모우 선수가 동계올림픽 금메달을 딴 것을 마지막으로 메달 근처에도 못 가고 있다. 그런데 오는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에서 미국 남자스키의 메달 가뭄을 해소해 줄 선수가 있다면, 그는 29세의 에릭 슐로피일 것이다.
슐로피는 최근 끝난 월드컵 시즌 회전활강 및 자이언트 회전활강 최종 랭킹 3위를 차지함으로써, 미국선수로서는 18년내 가장 좋은 성적을 기록했다. 이로써, 슐로피는 2월에 개최되는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 미국대표팀 선수자격도 확보했다.
슐로피의 스키인생은 한편의 드라마를 연상시킬 만큼 굴곡으로 점철되었다.
NBC는 파크 시티에서 벌어지는 회전활강 50초 경기 중계 직전, 슐로피의 스키인생을 다룬 30분짜리 다큐멘터리를 방영할 계획이다.
생후 18개월부터 스키장을 찾은 슐로피는 약관 19세에 이미 미국 스키 챔피언이 되었다.
그는 천부적인 스키 재능 외에도 젊은 선수들에게서 보기 어려운 노련한 경기 운영과 탁월한 테크닉을 겸비한 선수였다.
하지만, 슐로피는 나이 20세 때 일본에서 열린 월드챔피언 대회에서 어처구니없는 사고를 당하고 만다.
이 사고에서 슐로피는 척추골절 및 폐 손상이라는 중상을 당했다. 그 후 슐로피는 부상 후유증에서 점차 벗어나면서, 1994년에는 나가노 동계올림픽 대표팀에 선발되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이때부터 그는 스키 천재의 면모를 과시하지 못하고 답보상태를 면치 못했다.
부진의 원인이 무엇이었든 간에, 이 무렵 슐로피는 그의 스키 인생에서 극적인 대전환을 시도했다.
미국 대표팀에서 자진 탈퇴한 후, 월드프로 스키투어에 합류한 것이다. 일반 대중들에게는 생소하지만 스키계에도 엄연히 프로투어가 존재한다. 단지, 프로투어라는 것이 X게임 수준의 영세성을 벗어나지 못하는 단계이기는 하지만.
사치스런 미국 국가대표팀 선수생활을 하다가 프로투어에 적응하기가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국가대표팀에 있을 때는 최고의 코치와 테크니션 및 보조요원들이 선수들의 모든 필요를 충족시켜 준다. 그러나 프로투어는 스포츠 채널의 X게임처럼 단거리 코스에서 선수들이 머리를 박치기하는 레이스를 펼쳐야 한다.
투어가 영세하다 보니 선수들의 수입도 형편없다.
아무리 잘해 봤자 겨우 생활비나 건질 정도다. 슐로피가 프로투어 3시즌 동안 손에 쥔 돈이 고작 10만달러도 안 되었다. 그러나 소득이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슐로피는 1995년 시즌 프로투어 ‘올해의 신인선수’로 선정되었고 여세를 몰아 프로투어 미국 최고의 선수로 떠올랐다.
이 과정에서 슐로피는 자신의 스키 실력에 대한 자신감 회복이라는 가장 큰 소득을 얻었다. 자신감을 회복한 슐로피는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을 다음 목표로 설정했다. 이에 대해 미국 대표팀 코치들은 회의적이었지만, 슐로피가 일정시일 안에 세계랭킹 100위권에 진입한다면 고려해 볼 수 있다는 유보적 입장을 보였다.
이때부터 슐로피는 돈도 스폰서도 없이 홀홀 단신 목표를 향해 매진했다.
친구들한테 빌린 돈 2만5,000달러로 미니밴을 구입, 북미에서 개최되는 스키대회들을 모조리 찾아 다녔다. 하루속히 랭킹을 올려서 대표팀 코치들의 눈에 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때로는 친구 집이나 친구의 친구 집 신세를 지기도 했고 하룻밤 19달러짜리 모텔에서 잔 적도 많았다.
처음 한 동안에는 성적이 신통치 않았다.
그러나 결국 시즌종료 시점까지 대회전활강에서 63위, 회전활강에서 97위까지 랭킹을 끌어올리는데 성공했다. 그에게 다시 국가대표팀 자격이 주어진 순간이었다. 그리하여 슐로피는 또 다시 세계 최상급 코치들과 장비를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대표팀에 합류한지 얼마 안되어 그의 랭킹은 세계 10위권으로 비상했다.
유능한 코치들의 지도는 물론, 다른 일에 신경을 쓰지 않고 스키에만 전념할 수 있게 된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비결이었다. 대표팀에서 다른 우수선수들과 경쟁을 하는 것도 실력 발휘의 촉매제가 되었다.
슐로피는 뉴햄프셔 출신, 24세의 보드 밀러 선수와의 레이스 경쟁을 즐겼다.
두 선수는 지난 겨울 오스트리아 인스부룩에서 한 집을 사용했고, 이번 솔트레이크 동계올림픽에서도 나란히 시상대에 서기를 염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밀러가 부상에서 자유로워야 한다는 단서가 붙어있다. 밀러는 전부, 아니면 전무 식의 매우 공격적인 레이스 기법을 구사하는 선수다. 이에 비해 슐로피는 더 계산적이고 방법론적 레이스를 펼치는 선수다.
이번 올림픽에서 슐로피가 넘어야 할 최대의 적수는 오스트리아의 하만 마이어 선수가 될 전망이다. ‘허미네이터’라는 별명으로 통하는 마이어는 나가노 동계올림픽 2관왕에 빛나는 남자스키계의 강자다. 특히, 그의 냉정하고 위협적인 스키레이스는 국제 스키계에서 정평이 나 있다.
그러나 마이어는 지난 8월 다리뼈가 골절되는 모터사이클 부상을 당한 바 있어, 이번에 얼마나 제실력을 발휘할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마이어의 악명 높은 과감한 레이스 스타일을 잘 아는 국제 스키계는 여전히 그를 금메달 후보 1순위에 올려놓는다.
그러나 슐로피는 이에 전혀 개의치 않는다는 눈치다.
"허만이 무서운 것이 아니라, 스키 자체가 매우 어려운 스포츠다. 허만 같은 상대가 없다면 레이스가 오히려 더 힘들 것이다. 이번에는 나를 믿어도 좋다"
슐로피는 강한 자신감을 피력한다.
한달여 앞으로 다가온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에서 슐로피 선수의 활약상을 지켜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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