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일 의원 하면 대뜸 대통령의 아들부터 떠올린다. 체형도 그렇고 얼굴도 아버지인 김대중 대통령을 빼 닮았다. 말솜씨는 아버지만 못해도 판단력과 지략은 부전자전이라는 평을 듣고 있다.
김홍일 의원이 원내에 진출한 것은 1996년 15대 때부터다. 지역구는 전남 목포시. DJ를 키운 정치 요람이다. 가신 권노갑이 물려받은 뒤 주군(主君)의 아들에게 양보한 DJ 집안의 권력 세습처격인 셈이다. 이 곳에서 김홍일 의원은 2대째 의원직을 힘들지 않게 따냈다. 하기야 DJ가 말뚝만 박아도 당선된다는 지역이고 보면 그 아들이 출마했으니 물으나 마나한 일이다.
DJ가 대권을 거머쥔 1998년 이후 김홍일 의원의 위상은 더불어 급상승했다. 당직은 맡지 않았지만 그 주변에는 늘 정권 실세들의 발길이 잦았다. 청와대, 검찰, 국가정보원 등 권력 기관의 요직들이 그를 깍듯이 예우했고, 심지어 "조폭의 건달들도 그 주변을 서성댔다"고 해서 물의를 빚었다.
김홍일 의원은 누가 뭐라 해도 DJ 정권의 실세 중 실세임을 부인할 수 없다. 대통령이 아끼는 큰아들이니 힘이 있을 수밖에 없지 않느냐고 치부할 법도 하다. 그러나 국가 권력이란 상호 견제가 작동해야 전횡을 막을 수 있다. 한데 DJ 정권에선 권력 핵심이 온통 한통속이라는 데 문제가 있다.
가신(家臣)끼리, 동향끼리, 동문끼리 끌어주고 밀어주는 판이니 권력의 견제가 작동할 리가 없었다. 더욱이 ‘무슨 무슨 게이트’가 터질 때마다 김홍일 의원과 가신, 대통령 측근들이 함께 구설수에 올랐다는 사실은 예삿일이 아니다.
이런 와중에 급기야 ‘메가톤급 폭로’가 터졌다. DJ가 대우 그룹의 김우중 회장으로부터 "막대한 돈을 받았다"는 것이다. 폭로자는 한 때 DJ에 의해 국회에 진출한 전 민주당 소속 박정훈 의원의 부인. 폭로 내용은 이렇다.
지난 88년 김우중으로부터 사과상자에 담긴 돈 다발이 박씨(당시는 대우자동차 상무) 집으로 배달됐는데, 그 규모가 7~8평의 방에 가득 찰 정도였다는 것. 상자가 도착했음을 김홍일씨에게 알리자 직접 새벽 1~2시 무렵 찾아갔다는 것. 이 돈말고도 남편 박씨는 김우중으로부터 받은 20억원과 자신의 돈을 합해 DJ에게 전하고 전국구 국회의원이 됐다는 사실 등등 세간을 경악시킬 말들을 그 부인은 한 월간지에 ‘겁 없이’ 쏟아놓았다.
물론 그 폭로가 한 쪽의 "주장"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폭로자의 신분이 실명으로 밝혀졌고, 또 ‘언제-어디서-어떻게’ 라는 ‘6하 원칙’이 일목요연하게 공개됐다는 점에서 신빙성은 높을 수밖에 없어 보인다.
4년 전 정권을 잡은 뒤 "나는 누구로부터도 부정한 돈이나 대가성 있는 돈을 한푼도 받은 적이 없다"고 장담한 DJ. 노태우로부터 20억원을 받았노라고 스스로 밝힌 부분마저 "대가성 있는 돈이 아니라"는 한마디로 면죄부를 받은 DJ. 한데 대우를 들어먹고 수배중인 김우중으로부터도 "엄청난 돈을 받아갔다"는 메가톤급 폭로의 한복판에 선 DJ. 아버지를 위해 그 돈 상자를 찾아갔다는 아들. 이처럼 DJ 부자가 함께 관련된 자금 스캔들 주장을 전해들은 민초들의 가슴은 어떨까. "방을 가득 채운 돈 상자에서 풍겨 나온 돈 냄새 때문에 잠을 잘 수 없을 정도였다"는 그 폭로자의 말이 사실이 아니기를 바랄 뿐이다.
물론 그 폭로가 사실이라 하더라도 정치자금법이 개정되기 전의 일이라 실정법상 ‘무죄’가 될지 모른다. 그렇다고 문제는 끝날까. 국가 지도자의 도덕성은 어찌된단 말인가. 이런 의혹의 눈초리는 급기야 돈 심부름을 한 김홍일 의원에게도 쏠리고 있다. 대통령의 아들이 최근에도 몇몇 의혹 사건에 관련이 있다는 야당 주장은 한낱 정치 공세일 뿐 실체가 없는 것일까 하고 새삼 시중의 소문들을 손꼽아 보게됨은 무리가 아니다.
일연의 불미스런 소문과는 별도로 김홍일 의원 문제는 좀 더 다른 시각에서 접근해 볼 필요가 있다. 우선 대통령 아버지에 국회의원 아들이라는 부자권력 동점(同占)의 문제이다. 아들의 정치적 입지가 아버지의 후광을 입은 것이라면 그 정치직을 고수하는 게 타당하냐는 것은 일단 문제로써 성립될만하다. 김 의원은 내년 초 지병 치료차 LA에 장기 체류할 것으로 알려졌다.
정가에선 이를 두고 큰 정치적 의미를 부여한다. 민주당 대권 경쟁에서 초연한 처신을 위한 결정이란 말도 들린다. 반면 야당 쪽에선 각종 소문들과 무관치 않다고 지레 짐작도 한다. ‘돈 상자 폭로’가 그의 정치적 장래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미지수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이제 김홍일 의원은 자신의 진로에 대한 어떤 결단을 내려야할 중대한 고비를 맞고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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