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연시는 선물의 계절이다. 한인 부모들은 한해동안 너무나 바쁜 생활에 얽매여서 자녀들에게 잘 해주지 못한 죄책감으로 인하여 이 때만은 특별한 선물을 자녀들에게 주고 싶어한다. 그러나 유명한 가족 상담가인 살바도르 미누친은 "부모가 자식에게 줄 수 있는 최상의 선물은 좋은 부부관계"라고 말한다. 한인사회의 이혼율이 해마다 급증하고 있고 부부가 함께 살지만 정서적 이혼상태에서 살고 있는 한인들의 숫자가 적지 않은 이때 그의 말을 한번쯤 깊이 생각해 볼 만하다.
요즘 한국에는 부모들이 이혼을 하고 아이들을 고아원에 맡기는 경우가 급증하고 있다. 이러한 아이들을 가리켜 "이혼고아"라고 한다. 현재 한인사회에는 배우자와 같은 집에서 살고 있으나 정서적 이혼상태에서 지내며 자신들의 삶이 너무나 힘들어서 부모 역할을 거의 못하는 부모를 가진 아이들이 적지 않다. 이러한 아이들은 "정서적인 이혼고아"들이다. 이들의 얼어붙은 마음은 어떤 값비싼 선물로도 따뜻하게 해줄 수가 없다. 이들에게 가장 기쁨을 주는 선물은 엄마 아빠가 다정하게 지내는 모습이다.
나는 가정상담을 하면서 뛰어난 재능을 가진 아이들이 부모의 불행한 결혼생활로 인하여 자기 발전에 써야할 에너지를 다른 곳에 쓰고 있음을 종종 본다. 어떤 아이들은 부모의 상담자 역할을 하기도 하고 어떤 아이들은 부모를 대신하여 동생들의 부모 역할을 하기도 한다. 또 어떤 아이들은 심각한 정서적 혹은 행동상의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 이럴 경우엔 부부관계가 호전되지 않는 한 아이들의 문제는 지속된다.
최근 한인 언론에 염승철군의 재판이 보도되었다. 필자는 이 기사를 보면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보게 된다. 과연 승철군의 가정이 단란한 가정이었다면 그토록 강렬한 분노가 어린 소년의 가슴속에 자리잡을 수 있었을까?
한인사회에서 근절되지 않고 있는 술 문제, 도박 문제, 외도 문제, 시댁식구들과의 갈등 문제, 가부장적 권위주의, 남편이나 아내의 무책임성은 부부갈등의 씨가 된다. 사회학자인 폴 아마토 연구팀에 따르면 부모가 자녀들을 위해서 억지로 사는 경우 그 자녀들은 자라서 부모들의 불행한 결혼생활을 되풀이한다고 한다.
"차라리 이혼을 하고 사는 것이 아이들에게도 낫지 않을까요?"라고 질문을 하는 부모들이 있다. 이혼한 자녀들의 아이들을 25년간 추적 조사한 월러스타인의 보고서에 따르면 이혼자녀들의 문제의 심각성은 그동안 일반적으로 알려진 수준보다도 훨씬 더 심각하다고 한다. 흔히 아이들에게 부모의 이혼은 자신들의 버림받음을 의미하며 이혼한 부모를 가진 아이들은 의미 있는 인간관계를 피하거나 배우자를 잘못 선택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아이들의 올바른 인성 개발은 그들이 자라나고 있는 정서적 환경에 의하여 많이 좌우되며 부모만큼 아이들에게 올바른 정서적 환경을 제공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도로시 놀티는 "만약 아이가 비난 속에서 살면 그 아이는 남을 정죄하는 법, 적개심 속에서 살면 싸우는 법을, 비웃음 속에서 살면 부끄러움을, 질투 속에서 살면 죄책감을 배운다. 반면 인내 속에서 살면 참을성을, 장려 받음 속에서 살면 자신감을, 안정감 속에서 살면 신뢰를, 인정받음 속에서 살면 자신을 좋아함을 배운다"고 말했다.
미국인들 중에는 9월11일의 테러를 계기로 이혼 서류를 취하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테러를 계기로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다시금 생각해 본 결과 그것은 역시 가족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동시에 가족을 한순간에 잃어버리고 절규하는 사람들을 지켜보면서 과연 자신들의 이혼 사유가 상대방을 용서 못하여 가정을 깰 만큼 심각한가를 되새겨 보게 된 것이다. 엄마와 아빠가 서로 용서하고 화해하는 모습은 정서적 이혼고아들의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특효약이다. 값비싼 물질적 선물보다 이것이 최상의 선물임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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