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연말이면 하는 이야기지만 올해처럼 다사다난했던 해도 드문 것 같다. 21세기 벽두부터 미 역사상 최악의 테러로 기록될 9·11 참사가 터졌고 역사상 최장기 호황을 누리던 미국 경기 또한 공식적으로 불황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본보 위원들의 방담을 통해 지난 2001년을 돌아보며 주요 사건의 의미를 조명해 본다.
<위원실>
▲권정희 편집위원- 밀레니엄 축제로 세상이 떠들썩하고, 밀레니엄 버그로 정보통신망이 마비된다고 세계가 긴장하던 것이 얼마 전 같은데 벌써 2001년이 다 저물었습니다. 새 대통령이 고어냐, 조지 W. 부시냐로 미국이 양분되었던 것도 어느새 1년 전 일입니다.
▲옥세철 논설실장- 엄밀한 의미에서 새 밀레니엄과 21세기가 시작되는 해는 2001년입니다. 이런 의미를 지닌 2001년에 최악의 테러참사가 발생했다는 건 상당히 상징적 의미가 있는 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박봉현 편집위원- 21세기 첫 해인 2001년은 기대와 설렘으로 막을 올렸다가 좌절과 분노로 막을 내리나 싶습니다. 큰 획을 그으며 20세기와 차별을 은근히 바랬던 사람들은 테러와 경기침체 등 좋지 않은 쪽으로 방향을 틀어버린 세상일에 실망했습니다. 하지만 새 세기의 액운을 첫해 몽땅 불살라버렸다는 긍정적인 생각을 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민경훈 편집위원- 올해가 미국 입장에서 볼 때 액운의 해였느냐는 한번 토론해 볼만 한 주제인 것 같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최악의 테러가 발생하고 불황이 찾아 왔으니 당연히 그런 것 같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꼭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아프가니스탄 전의 성공적 수행으로 미국의 국제적 위상은 최고로 높습니다. 미국은 경제적으로 뿐만 아니라 군사적으로도 적수가 없음이 입증된 셈입니다. 경기도 침체를 공식 인정하기가 무섭게 벌써 회복세로 접어들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습니다. 맞는다는 보장은 없지만.
▲옥실장-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후 인류는 전쟁에서 해방됐으며 앞으로는 평화와 번영밖에 없다는 착각에 빠졌던 적이 있습니다. 2001년 9월11일은 그 유포리즘의 환상에서 깨어나게 했습니다.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종전의 전쟁과는 양상이 전혀 다른 전쟁에 휘말려들면서 오직 평화와 경제적 번영밖에 없다는 행복증세에서 벗어나게 된 겁니다.
▲박위원- 유럽이나 아프리카처럼 테러를 안고 살아야 하는 것 아닌지 걱정입니다. 잊을만하면 정부에서 테러경고를 발표하고 잠잠하다 싶으면 외국에서 또 다른 테러가 발생합니다. 21세기를 연 첫 해에 사람들에게 ‘테러’가 가장 기억에 남는 단어로 꼽힌 것은 슬픈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권위원- 뭔가 어설프고 미덥지 못한 인상으로 대통령에 취임한 부시는 이제 힘있는 대통령으로 자리를 확고히 했습니다. 물론 9.11 테러의 충격으로 인한 국력 응집의 덕분이지요. 미 국민들이 평소에는 의견이 제각각이어서 모래알 같다가도 미국의 자존심이 관계되는 일이 발생하면 언제 그랬더냐 싶게 하나로 뭉치는 모습은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옥실장- 전쟁이 발생하면 미국민은 대통령을 중심으로 뭉칩니다. 좋은 전통입니다. 그러나 겁나는 측면도 있지요. 애국심은 좋은데 지나칠 때 문제가 될 수도 있습니다. 소수계 핍박이 우려 사항의 하나입니다. 어찌됐든 ‘9.11 사태’는 미국의 국내 모습을 많이 바꾸어 놓았습니다. 미국적 가치관 재발견이 가장 큰 변화 같습니다. 이와 관련해 어린이들의 롤 모델도 배우, 가수 등 연예인에서 군인, 경찰관, 대통령 등으로 바뀌었다는 겁니다. 또 하나 재미있는 사실은 정치와 종교분리의 원칙이 다소 희미해진 사실입니다. 공립학교, 공공장소에서의 기도가 당연한 것이 됐습니다. 옛날 같으면 당장 소송이 들어 왔을 텐데 그런 일이 없어요.
▲민위원- 경제학에 ‘의도하지 않은 결과의 법칙’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세상일은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과 비슷한 얘기인데 이번 테러가 딱 들어맞는 예인 것 같습니다. 미국을 무너뜨리기 위한 테러가 오히려 중동은 물론 전 세계에 걸쳐 미국의 발언권을 강화해줬습니다. 이보다 큰 덕을 본 사람은 부시 대통령입니다. 정통성 시비는 깨끗이 사라지고 90% 이상 절대적인 지지를 받는 유능한 지도자로 떠올랐습니다.
▲옥실장- 21세기의 벽두에 뉴욕과 워싱턴에서 최악의 테러참사가 발생하고 뒤이어 미국이 전쟁에 돌입하게 된 건 21세기의 앞날을 상징하는 사건일 수도 있습니다. 이와 함께 그동안 유행하던 말들도 사라졌습니다. 신 경제가 그 중 하나입니다. 테러가 터지고 증시가 곤두박질하자 바로 나온 말이 ‘공포 경제’입니다. 미국만이 테러로부터 완전히 해방된 곳이라는 환상이 깨지면서 나온 말입니다.
▲박위원- 내리막이던 경제가 테러로 인해 더 빨리 가파르게 추락했습니다. 내년 중으로 경기가 회복될 것이란 전문가들의 전망이 나오고 있어 그나마 다행입니다만, 경기침체로 인해 적지 않은 한인들이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합니다. 실직자들은 하루속히 일자리를 구하고 사업을 하는 사람들에게도 비즈니스가 다시 활기를 되찾았으면 합니다.
▲옥실장-인간의 예측력이라는 게 얼마나 엉터리인가 하는 게 증명된 게 2001년인 것 같습니다. 지난해 선거 때만해도 해외정책은 액세서리성 아젠다에 불과했습니다. 예선에서 본선에 이르는 대선 대장정동안 해외정책은 이슈가 된 적이 거의 없었고 더군다나 테러가 이슈가 된 적도 없었습니다. 가령 2000년 대선 전에 테러가 발생했더라면 앨 고어가 당선됐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입니다. 해외정책에 관해 조지 W 부시는 문외한이었으니까요. 그런데 부시가 대통령이 되고 또 성공적으로 테러전쟁에 대처하고 있으니 대통령이 되는 건 운명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권위원- 이제‘21세기도 미국의 세기가 될 것인가’가 세계의 관심사인데 21세기의 첫해를 마감하는 지금 보면 미국의 신자유주의와 군사적 패권이 세계화 흐름의 핵심을 이루고 있습니다. 진보적 학자들 사이에서는 미국이 너무 견제세력이 없이 막강하다는 사실에 우려의 시각을 보내기도 합니다.
▲민위원-미국이 세계에서 주도적 위치를 차지하게 된 것은 물론 그 경제력과 군사력에 바탕을 둔 것이지만 그 뒤에 자유라는 미국적 이념이 이를 떠받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역사의 종언’을 쓴 후쿠야마의 말대로 정치적으로는 민주주의, 경제적으로는 자본주의를 대체할 이념이 지금 현실적으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 두 체제를 상징하는 나라가 미국입니다. 왕정은 1차 대전과 함께, 독일의 나치즘, 이탈리아의 파시즘, 일본의 군국주의는 2차 대전과 함께 사라졌습니다. 그 후 미국의 적수이던 소련과 그가 내세우던 공산주의는 자체 모순으로 붕괴했습니다. 남은 것은 유럽식 복지주의와 중동식 신정주의인데 유럽식은 고실업과 저성장 등 자체 문제가 있을 뿐 더러 자본주의가 발달해 상당한 부가 축적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시도가 불가능합니다. 신정주의의 취약성은 이번 아프간 전쟁과 이란인들의 친미 시위가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권위원-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 무고한 생명을 죄의식 하나 없이 죽인 이슬람 원리주의 세력은 당연히 응징 받아야 할 존재들입니다. 하지만 그 보복으로 아프간을 공격하고, 이제 이라크나 또 다른 나라들을 공격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인지는 또 별개의 문제입니다. 세계를 21세기를 함께 살아가야 할 인류 공동체로 본다면 더욱 더 그렇지요. 20세기의 성녀, 테레사 수녀는 사랑의 결핍으로 세상이 길을 잃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세상을 정복하기 위해서는 폭탄이나 총이 아니라 사랑과 자비심을 이용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21세기에도 꼭 같은 진리가 적용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옥실장- 21세기의 첫 번째 전쟁인 테러전쟁의 성격을 놓고 많은 논란이 따르고 있습니다. 세계전쟁의 양상을 보이고 있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습니다. 일부에서는 사실상의 3차대전이라는 말도 나오고 있습니다. 과거 20세기의 전쟁이 ‘세속적 전체주의’와 자유주의의 투쟁이라면 21세기의 전쟁인 테러전쟁은 종교적 전체주의와의 싸움이라는 겁니다. 상당히 일리가 있다는 생각입니다. 이데올로기 측면에서 볼 때 맞는 지적 같습니다. 그런데 스케일 면에서는 어떤 모르겠습니다. 아프간에서의 군사개입은 마무리 단계인데 이라크까지 확전이 아직은 단언할 수 없어서 하는 말입니다. 가령 이라크는 물론 아랍권 전체, 또 이슬람권 전체로 전쟁이 확산될 때는 이야기가 달라지겠죠. 그렇게되면 ‘문명의 충돌’이 될 수도 있습니다.
▲권위원- 부시 행정부 출범 초기에는 행정부내 강경파의 일방주의를 두고 얼마나 비판이 많았습니까. 냉랭한 강경일색 분위기로 피해를 본 사람중에는 김대중 대통령도 포함이 되지요. 그런데 9.11 테러가 터지면서 일방주의에 대한 비난이 쑥 들어갔습니다.
▲옥실장- 테러가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국제테러조직을 상대로 한 전쟁인 만큼 국제협조가 필수사항이 됐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미국은 원활한 국제협력관계를 정립, 러시아도 반 테러 전선에 끌어들이면서 전쟁을 성공적으로 치렀습니다. 전쟁 후 아프가니스탄 재건에도 국제협력은 필수적인 만큼 협력관계는 계속 유지되어야 합니다. 이런 면에서 미국의 외교는 180도 스윙을 한 셈입니다.
▲박위원- 냉전 이후 여러 분야에서 힘을 바탕으로 독자노선을 걸어온 미국이 테러사건을 계기로 다자주의적 정책을 펴나간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라 생각됩니다. 힘으로 밀어붙이는 외교는 결국 잠재적 적을 만들고 마는 법이지요. 당장에는 겁나 고개를 숙이지만 안 보이는 데서 욕을 해대고 기회가 오면 관계를 틀어버릴 수 있는 것이지요.
▲옥실장- 우선 미국의 해외정책이 전면 수정을 꾀하게 됐다는 데에서 그렇습니다. 그 전까지 부시행정부 해외정책은 단독주의로 불렸습니다. 국익지상주의에 일관, 국제사회 다수의 목소리에도 아랑곳 않는다는 태도였지요. 기후협약과 관련한 교토의정서 일방탈퇴, 국제형사재판소 반대, 생물무기협정거부 등이 그겁니다. 또 미사일방어(MD)체제 개발과 탄도탄 요격미사일(ABM)협정 탈퇴선언 등은 미국의 단독주의 외교의 정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민위원- 미국이 다자주의로 전환했다는 것은 사실과 다르다고 봅니다. 이번 아프간 전에서 연합전선을 구축하는 척 했지만 이는 포장이고 실제로 전쟁을 한 것은 미국과 그 지상군 대용품 구실을 한 북부동맹 뿐입니다. ‘알 카에다 멸종전쟁’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온갖 신무기를 동원, 회교도를 때려부수는데도 아랍권은 조용하기만 합니다. 부시가 일방적으로 ABM 협정을 탈퇴했는데도 당사국 러시아조차 별 말이 없습니다. 현재로서는 미국을 견제할 세력이 없습니다.
▲권위원- 3개월만에 아프간에서 탈레반을 몰아내고 전쟁을 끝낸 지금 이라크며 소말리아를 계속 거론하며 확전 분위기를 잡는 것은 영락없는 일방주의입니다. 세계무역센터가 화염에 휩싸이며 무너져 내리는 장면이 국민들의 뇌리에 화인처럼 박혀있는 한 그것이 일방주의든 신 제국주의든 상관하지 않는 분위기입니다.
▲민위원- 아프간 전쟁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자 확전론이 고개를 들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이미 소말리아와 이라크 등 테러 배후 세력에 대한 공격은 기정 사실이며 시가와 방법만 남았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번 기회에 테러의 뿌리를 뽑지 않으면 두고두고 후환을 남겨 둔다는 것이죠. 강경파들은 걸프전 때 사담을 끝장내지 못한 것에 유감이 많습니다.
▲권위원- 전쟁을 여기서 끝낸다 해도 미국은 얻은 게 상당합니다. 우방국가들의 지지가 강화된 것은 물론 러시아와의 협력관계가 강화되었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중앙아시아에 발판을 마련했다는 것입니다. 중앙아시아는 이제까지 러시아와 중국의 세력권 안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전쟁 터지면서 우즈베키스탄이 군사기지를 미국에 제공했고, 아프간은 미군이 언제라도 주둔할 수 있는 지역이 되었습니다. 미국으로서는 러시아와 중국을 압박할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를 얻은 셈입니다. 중앙아시아가 21세기 미국과 중국, 러시아의 헤게모니 각축장이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벌써부터 나오고 있습니다.
▲옥실장- 사우디는 엄청난 돈을 들여 수니파 회교 원리주의 포교에 힘을 쏟아왔습니다. 따지고 보면 탈레반도 사우디 돈으로 육성된 셈입니다. 그런데 회교 원리주의 과격세력은 사우디 왕가를 타도 대상으로 보고 그 연장으로 사우디를 돕고 있는 미국을 적으로 삼고 있는 겁니다. 이는 다시 말하면 무능과 압제뿐인 사우디 왕가에 대한 불만이지요. 어찌됐든 중동지역에서도 새로운 라인업이 형성되고 있습니다. 이란이 친미노선으로 돌아설 가능성이 커지면서 전통적으로 미국의 맹방이었던 사우디와 워싱턴의 관계가 소원해지고 있습니다.
▲박위원- 중동은 역시 화약고입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간 유혈분쟁은 끝을 모릅니다. 이로 인한 아랍권의 반이스라엘, 반미 감정도 씻어낼 수 없을 것입니다. 미국이 평화협상을 유도하고 논의과정에서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중재자 역할을 맡아야만 결실을 맺을 수 있을 것입니다. 미국은 ‘영원한 이스라엘 편’이란 인식을 희석시키는 일이 관건입니다.
▲권위원- 러시아와의 협력관계가 최근 좀 냉랭해지기는 했습니다. 부시행정부가 탄도요격미사일(ABM) 제한협정에서 일방적으로 탈퇴선언을 했기 때문이지요. 닉슨과 브레즈네프가 1972년 체결한 이 협정은 미·소가 핵전력상의 균형을 유지함으로써 핵전쟁을 막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라크나 북한, 이란 같은 ‘깡패 국가’들이 탄도미사일 능력을 보유하게 되었으니 그 협정으로는 안된다는 것이 미국의 주장입니다. 대신 미국을 향해 날아오는 모든 탄도미사일을 요격해 파괴하겠다는 목표아래 미사일 방어(MD) 체제를 구축하는 것이 부시행정부의 계획입니다.
▲옥실장- 미국과 러시아관계가 급속도로 가까워지면서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 관계가 급랭 상태에 빠져들고 있는데 주목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미국과 서방의 대 사우디 석유 의존도는 줄고 있는 게 주 요인일 겁니다. 그보다도 가치관의 차이가 문제인 것 같습니다. 수니파 원리주의를 신봉하는 사우디왕가가 테러전쟁수행에 잘 협조를 하지 않는 게 미국으로서는 불만입니다. 또 오사마 빈 라덴은 물론이고 9월11일 참사에 가담한 테러리스트 중 절반이상이 사우디 국적임도 주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박위원- 테러정국이다 보니 치안요원들이 대거 테러방지 업무에 투입됐습니다. 자연히 민생치안에 허점이 생기고 각종 범죄가 증가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불경기, 연말연시와 맞물려 범죄 피해자가 늘 것으로 보여 평소보다도 한층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권위원- 맹목적 애국심의 불똥이 엉뚱하게 이민자들에게 떨어지지 않을까 하는 것이 우리로서는 제일 불안한 일이지요. 아랍계 커뮤니티가 겪는 어려움은 말할 것도 없고, 이민국 업무가 까다로워져서 곤란한 상황에 빠진 사람들이 한인사회에도 많이 있습니다.
▲박위원- 그렇습니다.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진다고 소수계 이민자들의 권익이 테러와의 전쟁 와중에 침해당하고 있습니다. 새해에도 이런 분위기는 일정기간 지속되지 않을까 전망됩니다만. 미국사회 전반적인 흐름에 역행하지 않는 범위에서 우리의 정당한 권리를 유지하고 증진시키는 일을 조직적으로 해나가야 할 것입니다.
▲민위원- 테러가 미친 큰 변화의 하나로 이민자에 대한 미국민의 태도를 들 수 있습니다. 올 초만 해도 불법체류자를 사면하고 이민 문호를 늘리는 등 우호적이던 태도가 테러 이후 급변했습니다. 이것이 테러로 인한 일시적 현상인지 오래갈 것인지가 한인사회로서는 걱정거리입니다.
▲박위원- 연방이민국은 앞으로 추방명령을 받고 잠적한 외국인 30여만 명의 명단을 연방수사국에 제공하고 전국 8만개 경찰기관이 사용하는 범죄자료센터 데이터 베이스에도 이를 입력시킬 것이라고 했습니다. 테러사건 여파로 나온 조치이지만 불법신분으로 살고 있는 상당수 한인들에겐 위협적인 시책이 아닐 수 없습니다.
▲권위원- 얼마 전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은 노벨상 100주년 기념식에서 21세기 유엔의 3대 과제로 빈곤퇴치와 분쟁방지, 민주주의의 발전을 들었습니다. 세기가 바뀌어도 인류의 문제는 그대로 대물림한 느낌입니다. 가난과 분쟁으로 황폐한 삶을 2대, 3대째 계속 살고 있는 사람들이 지구상에 얼마나 많습니까. 종교가 이데올로기의 자리를 차지했을 뿐 21세기가 되어도 분쟁은 여전하고, 부의 편재도 여전합니다. 클린턴 전대통령이 말대로 테러를 근절하는 길은 선진국들이 후진국을 적극 지원하는 것입니다. 연간 120억 달러면 빈곤과 질병이 퇴치되고 테러 위협도 제거된다고 합니다. 물론 작은 비용이 아니지만 전쟁보다는 싸게 먹힌다는 계산입니다. 그가 내세우는 ‘부국(富國) 책임론’ 혹은 ‘서양 선진국 원죄론’은 균형 있는 주장이지만 지금 미국의 분위기에서는 잘 먹혀 들어가지 않는 것 같습니다.
▲민위원- 자유와 민주주의의 확산은 시대의 대세입니다. 미국에 대한 가장 날카로운 관찰자의 한 사람으로 손꼽히고 있는 토크빌은 인류사의 대세로 평등주의의 확산을 들었습니다. 평등에 대한 염원이야말로 인류가 지닌 가장 강렬한 소망의 하나라는 것이죠. 지난 100년 간 인류의 역사는 그의 통찰이 정확했음을 보여줍니다. 동유럽은 물론 한국과 대만, 브라질과 칠레, 남아프리카 공화국 등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멀 것 같던 나라까지 그 세례를 받았습니다.
부도 마찬가지입니다. 온갖 우여곡절에도 불구하고 21세기의 인류는 과거 어느 때보다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삶을 누리고 있습니다. 부의 창출과 경제적 자유가 직결돼 있다는 것은 이제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잘 살고 싶으면 경제적 자유를 보장하면 됩니다. 자유와 평등과 부에 대한 열망이 있는 한 사회는 발전합니다. 엄청난 전화에도 불구, 20세기가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전진의 시기였듯이 21세기 인류의 앞날을 낙관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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