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잉 747 KAL기 박종천 기장
▶ [이기영의 인물산책]
뉴욕과 한국을 왕복하는 대한항공 보잉 747 점보여객기의 박종천 기장(44)은 한국 공군과 민항에서 조종경력 24년인 베테랑 조종사.
조종사로서 또 기장으로서 비행기의 안전문제에 항상 신경을 써 왔지만 9.11 테러사건 이후 그야말로 안전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한다. 승객과 승무원이 탄 비행기가 납치되어 테러의 수단으로 사용된 끔찍한 사건을 보았기 때문이다.
보잉 747 KAL기에는 기장 2명, 부기장 2명 등 조종사 4명과 남자 1~2명을 포함하여 대부분 여자들인 승무원 18명이 탑승한다. 그 중 기장은 항공기 내의 최고책임자로 운항계획을 세워 계획대로 수행하고 모든 승무원을 지휘 감독하며 여객을 안전하게 수송해야 하는 책임이 있으며 비행중 모든 책임을 지는 자리이다.
그 뿐 아니라 기장은 비행기가 이륙하기 전에 모든 계기, 조종장치, 장비계통을 점검해야 하며 비행중 긴박한 위험과 재난에 직면할 경우 위난방지를 위한 수단을 강구하고 여객을 구조해야 하는 책임이 있다. 그리고 배의 선장과 마찬가지로 모든 인원이 대피할 때까지 비행기를 지키는 사람도 바로 기장이다.
그런 기장으로서 박기장이 9.11 테러이후 안전에 신경을 곤두세우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일 것이다. 공항에서 승객들이 검색대를 거쳐 일단 비행기에 탑승하고 난 후에는 안전문제가 기장의 몫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비행기의 특성상 보안이 대단히 힘든 일이 아닐 수 없다. 만약 납치범이 있을 경우 공간이 좁은데다 더구나 운항중일 때는 격투로 진압하는데 제약이 많다고 한다. 그래서 승무원들이 사전 감지를 위해 승객들의 동향을 쉴새없이 살피고 인터폰을 통해 정보를 교환한다고 한다.
그러나 아무리 검색을 강화하고 감시를 한다고 해도 납치범을 완벽하게 막을 수 있을까. 그럴 수 있다고 장담할 수는 없을 것이다. 독실한 기독교인인 박기장은 그래서 비행기를 탈 때마다 기도를 한다.
그는 주로 자동차를 타고 공항으로 나가는 시간에 기도를 하고 또 승무원들에게도 기도를 하라고 권한다. 서울의 집에서도 부인과 노모가 박기장의 안전비행을 위해 기도를 한다.
박기장은 비행기가 좋아서 조종사가 되었다고 한다. 충남 대전 출신인 그는 대전고를 거쳐 공군2사를 졸업, 지난 77년 전투기 조종사가 됐다.
조종사는 시력, 지구력, 체력 등 신체조건이 거의 완벽한 사람들을 선발하여 강한 체력훈련과 정신훈련, 조종 및 비상탈출 훈련을 거쳐 배출된다. 이런 과정을 거쳐 공군에서 F5 전투기를 조종한 그는 전투기 사격대회에서 공군 최우수 사격수로 선발되기도 한 유능한 전투기 조종사였다.
그리고 지난 90년 8월 소령으로 전역하면서 바로 KAL에 입사, 부기장을 거쳐 기장이 되었는데 지난 6년간 기장으로서 주로 뉴욕과 LA 노선을 뛰었다.
근무 일정을 보면 한국에서 뉴욕에 온 후 24시간이 지나 다시 한국행 비행기를 타며, 도착하면 2일간 쉰 다음 다시 비행기에 오른다. 한달에 조종하는 시간은 75시간으로 미국항공사와 같은 수준이란다.
과거에는 조종사의 근무시간이 이보다 두배인 월 150시간까지 조종한 적이 있어 조종사 과로의 원인이 되기도 했는데 이제는 근무조건이 훨씬 개선되었다는 것이다.
9.11 테러가 발생했을 당시 박기장은 집에서 쉬던 중이었다. 텔레비전으로 테러 장면을 보면서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자신이 다니는 미국, 그 중에서도 뉴욕이 이런 테러를 당했다면 이제 비행기를 어떻게 타야 하나 하는 걱정이 앞섰다.
테러사건 직후 몇일간 비행기 운항이 중단되었다가 박기장은 9월 28일 첫 비행기를 탔다. 뉴욕행 비행기였다. 가족들은 왜 하필이면 사건이 터진 뉴욕행이냐고 안절부절했다. 박기장은 안전문제에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뉴욕 도착후 그는 부기장과 함께 월드트레이드센터 참사현장을 돌아보고 승객의 생명을 보호하고 테러를 막기 위한 기장 이하 승무원들의 책임이 막중함을 다시 한번 느꼈다고 한다.
9.11 테러사건 이후 미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은 비행기 안전조치를 강화하기 시작했다. 한국에서도 항공사마다 안전대책을 강화했고 인천공항에서 사람과 짐에 대한 검사가 무척 엄격해졌다. 특히 오래동안 북한과 긴장관계를 유지해온 한국은 다른 나라에 비해 강력한 비행기 보안대책을 실시해 왔다.
KAL기는 과거에 조종실 문이 납으로 만든 방탄문이었는데 남북관계가 개선되면서 일반 문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또 한국항공사의 비행기는 운항 중 조종실과 객실 사이의 문을 항상 닫아놓고 있다.
외국인 조종사들은 왜 한국 비행기는 문을 닫고 있느냐고 핀잔을 주기도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9.11 테러 이후 사정은 180도로 달라졌다. 외국 항공사들이 조종실 문에 잠금 바를 설치하기 시작했다. KAL도 테러 직후 잠금 바를 설치했다.
비행기 보안 시스템을 아무리 강화한다고 하더라도 납치나 폭파공격을 완전히 피할 수 없다는 것이 박기장의 생각이다. 그래서 그는 비행기를 탈 때마다 승무원들에게 보안대책을 숙지시키고 주의를 환기시킨다. 이런 절차는 KAL기 승무원들에게 생활화 되다시피 되어 있다.
비행장으로 비행기를 타기 위해 자동차에 오르기 직전 모든 승무원은 한 자리에 모여 기장으로부터 매일 듣는 똑같은 주의사항을 듣는다. 이런 절차를 통해 주의사항을 듣는 승무원이나 주의사항을 강조하는 기장도 안전문제에 대한 경각심을 새삼스럽게 느끼게 된다. 이렇게 최선을 다한 후 박기장이 하는 일이 바로 기도라고 했다.
테러사건 이후 비행기를 타는 박기장 보다도 주위사람들의 걱정이 더 크다고 한다. 가족들은 위험하지 않은 다른 직업으로 바꾸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말까지 했지만 박기장은 조종사 이외에 다른 직업은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는 비행기를 타는 것이 좋아서 조종사가 되었지만 직업으로서도 자신에게 조종사 이상 좋은 직업은 없다고 말한다.
직업을 통해 가는 곳마다 새로운 환경을 접할 수 있어서 좋고 보수도 다른 직종에 비해 월등히 많기 때문에 좋다고 한다. 그리고 요즘에는 비행시간이 많이 줄어 다른 어떤 직업 보다도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다는 것이 그의 직업에 대한 자랑이다.
“조종사 나이로 지금 이 나이는 이미 퇴물에 들어가고 있지만 60세까지는 조종사를 할 수 있기 때문에 끝까지 계속할 생각입니다” 그래서 건강관리에 특별히 신경 쓰고 있다는 그는 일반사람들이 여행마저 꺼리는 테러 걱정과는 너무도 달리 활짝 웃었다.
<이기영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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