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호·진승현·김은성·신광옥. 또 누가 있더라. 그렇지 최택권, 윤태식… 매일같이 신문지면을 장식하는 이름들이다. 그런데 그 관계가 보통 복잡한 게 아니다. 거기다가 ‘돈 냄새에 잠을 못 잤다’는 폭로가 터졌다. 그리고는 대통령 아들의 이름들도 거론된다.
상당히 헷갈린다. 마치 회귀성 열병 같아서 끝났는가 하면 일정 잠복기간을 거쳐 다시 전 신문 지면을 도배하듯 떠들썩 한 게 진승현 게이트니, 이용호 게이트다.
"부패란 위임된 권력을 사적인 이익을 위해 오용하는 행위다." 국제투명성기구(TI)가 내린 정의다. 주로 정치적 측면에서 내린 정의로 공권력과 관련된 부정부패를 설명하는 데 클라식이 되다시피한 정의다. 한국형 부정부패는 그러나 이런 고전적 정의로는 제대로 파악이 안된다. 한국형 알파라고 할까, 그런 부패를 가져올 수밖에 없는 쓴 뿌리 같은 게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무(武)를 숭상하면 강해지고 문(文)을 숭상하면 풍성해진다. 그러나 벌(閥)을 숭상하면 망한다." 이조 선조시대 실학자 이수광이 남긴 말이다. 요즘 한국사회를 소용돌이 속에 몰아넣고 있는 부패는 아무래도 이 ‘벌(’閥)에서 그 뿌리를 찾아야 할 것 같다. 말이 좀 괴이하지만 ‘미필적 고의(未畢的 故意)에 의한 부정부패’라고 할까. 무슨 게이트니 어쩌니 하는 난리법석이 바로 그런 현상으로 보인다.
문(文)을 숭상한다는 건 요즘 말로 하면 문민우위 전통에 충실하다는 의미다. 통치자의 사욕을 극도로 억제시키고 권력구조나 인사제도, 경제구조 등을 공공화 시키고 공론을 받들어 정치를 운영한다는 게 문을 숭상하는 문치(文治)다. 이에 수반되는 게 공개성이고, 투명성이고 실명성이다.
이조시대 정치의 이상은 바로 이 문치주의다. 그 이상은 그러나 정변이 난 후면 항용 흔들린다. 공신(功臣) 때문이다. 정권을 창출하는(새왕을 옹립하는) 공을 세운 게 공신이다. 논공행상이 뒤따를 수밖에 없고 그러다 보니 형성되는 게 정권은 ‘전리품’이라는 멘탈리티다. 이런 분위기에서 공권(公權)은 사유화되기 십상이다. 국가의 공공성이니, 공론 같은 건 아예 무시된다. 전리품을 나누는 공신들의 자만심과 독선이 빚은 결과다.
공신은 요즘말로 하면 ‘가신’(家臣)그룹이다. 공신들, 가신들이 설쳐 될 때 문치는 사라지고 오직 벌(閥)만을 숭상하는 분위기가 지배한다. 끼리끼리 나눠먹기, 연고주의 정치가 판을 치게 되는 것이다. 그 결과는 부의 독식이고, 부패의 만연이다. 그러므로 끼리끼리의 구조는 필연적으로 부패구조로 이어지는 것이다.
이용호 게이트니, 진승현 게이트니 그 외양은 상당히 복잡하다. 그러나 이 ‘공신과 가신’의 논리로 바라볼 때 사건의 본질은 비교적 간단하다. 이런 식으로 정리되지 않을까 십다.
"반(反)재벌을 모토로 들고 나선 정권이 현 정권이다. 그러므로 재벌은 척결대상 1호다. 개혁이 따른다. 그런데 정치권은 변한 게 없다. 고비용의 정치도 그대로다. 정치자금의 수요는 여전히 높다. 돈 줄이 필요하다. 재벌에게 손을 내밀수는 없는 노릇.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벤처시대다. 벤처산업 육성이 그 아이디어다. 코스닥 열풍이 분다. 벤처 기업은 황금 알을 낳는다. 새로운 정경유착관계가 형성된다. 소문이 번져나간다.
노다지 잔치에 권력이 끼어든다. 그들을 떠받들고 있는 조폭이라고 예외 일 수 없다. 사실 눈치볼 것도 없다. 어떻게 얻은 정권인가. 어차피 전리품 나누기 아닌가. 코스닥 광풍이 멎는다. 거품이 빠진 결과다. 선발주자는 한 몫 챙겼지만 후발주자는 그렇지 못하다. 그로 인해 내분이 생긴다. 결국 갈등으로 번져 외부로 불거진다. 여기 저기서 비리가 폭로된다. 정권 재창출 문제와 관련해 상황은 더 복잡해진다."
부패는 어떤 결과를 가져 오는가. 국제투명성기구가 내린 진단은 이렇다. "부패가 통제되지 않을 때 민주주의제도와 시장경제는 그 특유의 생명력을 상실하게 된다… 부패는 정권의 정통성은 물론이고 국가의 정통성도 무너뜨린다." "…벌(閥)을 숭상하면 망한다." 근 400여년전 이수광 선생이 한 예언이나 국제투명성기구의 결론은 결국 한가지다.
그나저나 대망의 2002년은 또 한차례 돈 냄새가 온 천하를 진동하는 한해가 될 것 같다. 어차피 죽기 아니면 살기 식의 대권 싸움은 벌써 시작돼 미주 한인 사회도 들썩이는 분위기여서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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