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삶과 생각
▶ 김현덕<샌프란시스코 주립대 교수>
또래의 아이들은 샤핑센터나 노래방으로 몰려 달리면서 철없는 짓을 하는 동안 그 아이는 코란을 읽으며 구도의 길을 걷고 있었다. 학구적인 아들의 뜻을 받아들여 이슬람 본토에 가서 공부하라고 격려하였던 부모가 지금 당하고 있는 고통을 생각하여 본다. 존 워커에게 일어난 일은 우리들의 상상을 초월하는 사건이기도 하지만, 미국에서 자녀를 키우는 우리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하니 놀라움을 금할 수가 없다.
’아메리칸 텔레반’ 이야기의 주인공은 우리 동네 사람이다. 샌프란시스코 북쪽에 위치한 우리 동네는 좋게 말하면 진취적이고 마음이 열린 사람들이 사는 동네이고 나쁘게 말하면 제멋대로 사는 사람들이 모여서 사는 동네라는 명성이 있다. 60년대 샌프란시스코에 살던 히피들이 자녀를 키우기 위해 조용한 이곳으로 이사 와서 살면서 변호사로 주식 브로커로 변모한 과거가 있는 부유층들이라고 다른 동네사람들은 말한다.
수퍼마켓에 가서 저명한 시인이나 화가를 만나는 것은 예사이다. 주민의 과반수가 글 쓰는 사람들이라 하니 테러리스로 변한 20세 청년 존 워커가 시인이라는 사실은 별로 특이한 것이 아니다. 예술가와 작가들이 많이 살고 있는 동네, 절이나 뉴에지 신도들이 밀집해서 사는 동네, 그게 우리동네이다.
자녀들에게 스스로 생각하여 결정하도록 가르치는 것이 미국부모들이다. 더군다나 젊은 시절에 자유를 종교처럼 추구하였던 히피족이었다는 과거를 가진 우리 동네 부모들은 자녀들이 스스로 결정하는 기회를 마련하여 주는데 남다른 정성을 들인다. 자녀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들어가기 전에 한두해 정도는 세계여행을 권장하는 부모들이 많다. 구도여행은 성인이 되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면서 낯선 곳으로 자녀들을 보낸다.
그래서 고등학교를 마친 후 동네 아이들은 유럽으로 남아메리카로 아프리카로 줄을 이어 떠난다. 종교에 심취하여 있던 열 여섯의 존 워커도 예멘으로 이슬람 교리를 정식으로 배우기 위해 집을 떠난 것은 별로 놀라운 일이 아니다.
나의 아들과 그의 친구들도 존 워커처럼 자신을 찾는 여행을 떠났다. 아들 친구인 제이크는 샌타쿠르즈 산으로 들어가서 나무 위에 집을 지어놓고 문명세계와 차단하고 원시인처럼 살았다. 라비는 남아메리카 인디언 마을로 들어가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인디언처럼 살았다. 나의 아들 제커리는 유럽 각 곳에 있는 수도원을 순례하며 구도의 길을 나섰다.
이들이 낯선 땅을 밟으면서 많은 사람을 만났을 것이고 다른 아이디어를 접하였을 것이다. 많은 것을 생각하면서 깨닫고 타문화를 배우고 이해하는 여정 중에 자신을 발견하였을 것이다. 부모들은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자녀를 떠나 보냈을 것이다.
아들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사망의 늪 속으로 발을 딛게 될 수도 있었을 것을 생각하니 존 워커의 일이 남의 일 같지가 않다. 불온한 사상이나 광적인 종교라는 덫에 걸려 자신을 찾기 위한 여행이 자신을 잃는 결과를 가져와 버린 존 워커 이야기가 어떻게 끝날지 아무도 모른다. 나의 아들 앞에도 여행 중에 이러한 덫이 놓여 있었을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섬뜩하여진다.
부모와 주위사람들로부터 친절하고 감수성이 예민한 똑똑한 학생이라는 말을 들었던 존 워커는 집을 떠난 지 반년만에 미국의 넘버원 적군의 테러리스트가 되어 ‘아메리칸 텔레반’이라는 이름으로 텔리비전 화면을 통하여 부모 앞에 나타났다.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이야기가 현실로 전개되어지고 있다. 어떻게 그가 탈레반 테러리스트가 되었는지 아직은 아무도 모르지만 조간 미디어를 통하여 세세히 알려질 것이다.
아메리칸 텔레반 이야기는 모든 사람들의 관심거리가 되어 한마디씩 한다. 반역죄로 사형 선고를 받아야 마땅하다는 사람도 있는가 하면 어린아이의 무모한 짓이니까 따끔하게 혼내주고 용서하여야 한다는 동정파도 있다. 워커가 부유층 백인이라서 주류층으로부터 동정심을 일으킨다며 만약에 시카고 슬럼에서 자란 흑인 젊은이가 탈레반 테러리스트로 생포되었다면 사정이 다를 것이라며 인종차별을 언급하기도 한다. 부모를 탓하는 이도 있다. 부모가 자식을 잘 가르치지 못하여 이 판국에까지 이르렀다고. 깨어진 가정에서 생기는 자녀 문제라고 말하기도 한다.
무슨 연유로 테러리스 그룹에 가담하여 조국에 총구를 향하게 되었는지 아직은 아무도 모른다. 불행한 청년에 대한 모든 사실이 밝혀질 때까지 아무 말도 할 수 없다는 태도를 취하는 대통령의 말속에서 자식을 가진 부모의 마음을 읽을 수가 있다.
자녀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도록 가르치는 교육이 얼마나 어렵고 힘든 일인가를 다시 한번 생각하며 존의 부모가 겪고 있는 고통의 화살이 나를 비켜간 것은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인 것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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