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증유의 9·11테러 참사는 한인사회에도 엄청난 충격과 피해를 안겨줬다. 세계무역센터로 출근했던 자녀, 출장차 항공기에 올랐던 가장 등 한인 21명이 목숨을 잃어 미 이민사상 단일사건으로는 가장 많은 한인이 희생됐다. 시신조차 찾지못한 유가족의 대부분은 지금도 휴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고통의 세월을 살고 있다. 이 사건은 그러나 성금모금 등을 통해 한인사회의 응집력을 주류사회에 과시하고 명실공히 한인사회도 주류사회의 일원임을 알리는 계기가 됐다.
▲아물지 않는 상처
테러발생 3개월이 지났지만 월드트레이드센터(WTC)에서 근무하다 실종된 14명의 한인 유가족중 정식으로 장례식을 치른 가정은 한 곳도 없다. 금방이라도 돌아올 것 같은 희망을 버린다는 자체가 오히려 죄스럽기 때문이다. 때문에 일부 유가족은 아직도 깊은 실의와 슬픔에 잠겨 정상적인 생활에 복귀하지 못해 주위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그나마 12가정이 자연스럽게 모여 ‘9·11 한인유가족 모임’(회장 김평겸)을 조직, 서로를 위로하며 고인들을 추모하기 위한 방안들을 강구중이다.
WTC 95층에 위치한 프레드알저 매니지먼트사에서 근무하다 실종된 앤디 김씨(26)의 부친이기도 한 김평겸 회장은 "사건당일 아침 출근준비를 하던 둘째의 샤워하는 소리가 결국 마지막 인사가 됐다"며 "시신이라도 찾아 장례라도 치렀으면 좋으련만..."하면서 말문을 잇지 못했다. 김 회장은 "지금에 와서 아들이 아직도 살아 있을 것이라는 생각 자체가 무의미한 것 아니겠냐"며 "하지만 녀석이 쓰던 방안은 지금도 손하나 대지 않고 그대로 남겨 뒀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또 아들을 추모하기 위해 그동안 들어온 조의금 등 10만달러를 모아 장학회를 조직, 아들이 다녔던 학교 등에 전달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86층 메트라이프에서 근무중 역시 실종된 박계형씨(29)의 모친 신정혜씨는 12일 휠체어에 몸을 의지한 채 현장을 다시 찾았다. 웅장했던 건물은 온데간데 없고 폐허만이 남은 현장을 바라보던 신씨는 "어떻게 키운 딸인데 어미를 두고 이렇게 허무하게 가야만 했니..."라며 쏟아져 내리는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외아들 스튜어트 이(31)씨를 잃은 이성재 목사는 "희생자 유가족들은 말론 형언할 수 없는 슬픔속에 지난 3개월을 보내야 했다"면서 "사랑하는 가족들이 우리 곁을 떠났지만 우리에겐 새로운 삶이 있기에 살아있는 동안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주류사회를 감동시킨 테러성금
이민 100주년을 맞는 한인사회는 분명 미국의 일원이었다. 9.11테러 희생자들을 돕기 위한 모금활동이 본보를 중심으로 미전국 한인사회에서 펼쳐져 두달여만에 405만여달러를 모으는 응집력을 과시했다.
엄마와 함께 나온 고사리 손의 어린이들이 내놓은 1달러에서 교계, 단체, 기업, 기관의 대표에 이르기까지 남녀노소 구분없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며 미국의 고통이 곧 우리의 아픔임을 몸으로 보여줬고 위기를 극복하려는 코리안 아메리칸의 굳은 의지를 대외에 알렸다.
특히 LA에서는 본보 미주본사가 55만여달러를 모금한 것을 비롯해 한인사회의 모금액만 147만달러가 넘어 미적십자사 LA지부가 모금한 성금의 10%나 차지, 주류사회를 감동시켰다. 이밖에 뉴욕 한인사회가 49만8,000여달러, 워싱턴DC 21만8,045달러, 시카고 21만달러, 샌프란시스코 16만3,732달러 등을 기록했다.
▲한인사회에 미친 테러여파
9·11테러는 모든 것을 얼어붙게 만들었다. 비록 큰 동요는 없었지만 여기에 추가테러 우려가 확산되면서 한인들은 심리적으로 부담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고 특히 탄저균 공포가 현실화 되자 백색가루만 보면 위험물질로 오인할 만큼 신경이 더욱 예민해졌다. 이로 인해 한인들은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일과후 곧바로 집으로 발길을 향했고 한인타운내 식당과 술집들은 손님의 발길이 눈에 띄게 줄어 들었다.
테러사건 직후 연방정부가 모든 공항을 일시적으로 폐쇄하면서 한국 국적기들의 미주노선 운항이 줄줄이 취소되는 사태가 발생, 양쪽을 오가려는 승객들의 발길이 묶이면서 큰 혼잡이 발생하기도 했다. 얼마 뒤 항공기 운항이 재개됐지만 보안조치가 강화되면서 공항밖 주차장을 이용해야 바람에 도착승객과 마중나간 사람들이 서로 길이 엇갈려 헤매는 모습들이 곳곳에서 목격됐다. 또 검문검색 강화로 테러사건 이전보다 훨씬 일찍 나가야 하는 불편도 감수해야 했다. 그나마 미프로야구 월드시리즈에 진출한 다이아몬드 백스의 김병현 선수가 전해주는 희비는 한인사회의 테러충격을 잠시나마 잊게 만들었다.
▲반이민무드 고조
테러참사는 한인사회를 비롯한 소수민족 사회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특히 외국인 방문자와 이민자들의 비자심사 및 입국 심사를 강화하고 이민문호를 규제하는 방향으로 미국의 정책이 바뀌고 있어 반이민무드가 다시 고조되는 우려마져 낳고있다. 미국 입국과 비자 심사에서 연방이민국과 세관의 검사가 대폭 강화되고 있으며 앞으로는 관광과 유학, 취업비자를 받고 입국한후 불법체류하는 외국인에 대한 소재지 파악과 추방도 가능해지게 됐다.
반테러법 제정을 통해 유학생 추적시스템, 이민자에 대한 수사권 강화, 이민국과 치안당국의 범죄기록 및 정보 공유로 인해 이민자들의 권리가 한층 제한되게 됐다. 이민법 245(i)조항의 2차 연장이 결국 무산된 것도 이민사회의 직접적인 피해가 됐다.
srhwang@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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