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은 수백마리씩 떼지어 다니지만 그 중에는 반드시 리더가 있다. 리더가 왼쪽으로 가면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가면 오른쪽으로 몰리는 것이 양떼의 특징이다. 양은 무조건 리더를 따른다. 어떻게 보면 전혀 양답지 않은 충성이요 맹목적인 복종이다.
프랑스의 작가 라블레가 쓴 소설 중에 ‘가르강튀아와 팡타그리엘’이라는 것이 있다. 여기에 양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양을 팔러가던 상인이 배속에서 어떤 청년에게 모욕을 주자 그 청년은 우두머리 양을 바다에 던져 버린다. 두목이 바다에 뛰어들자 나머지 양들도 줄줄이 그 뒤를 따라 결국 청년과 싸운 상인이 큰 피해를 보게 된다는 스토리다.
부하가 리더에게 맹목적인 충성을 바칠 때 그것은 공동 운명체의 형성을 의미한다.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살자는 삶의 자세다. 보스로 볼 때는 이처럼 마음 든든한 일이 없다. 그러나 여기에는 위험천만한 함정이 있다. 리더가 현명하지 못한 결정을 내리면 모두가 불행해지는 것이다. 국가는 물론이지만 회사나 영세업소도 마찬가지다. 역사에서 히틀러와 독일국민의 맹목적인 단결이 어떤 비극을 불러왔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사티야그라하로 불리는 간디의 비폭력 저항운동이 평가받는 이유는 이 운동이 남을 미워하고 해치며 자신의 이익을 찾는 것이 아니라 누구도 미워하지 않고 자기 권리를 주장하는 시민불복종 운동이었기 때문이다. 마틴 루터 킹 목사도 마찬가지다. 그가 무력으로 백인과 충돌했다면 민권운동이 과연 성공했을까.
리더의 판단에는 ‘사실판단’과 ‘가치판단’이 있다. 가치를 제대로 판단하려면 사실을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그러나 가치판단 과정에서 그 가치를 구현하는 방법이 잘못되어 비극의 나락으로 떨어진 리더들도 많다. 예를 들어 "박정희는 독재자다" 이것은 사실판단이다. 그러나 "박정희를 죽여야 한다" 이것은 사실판단이 아니고 가치판단이다.
존재를 비존재로 바꾸는 엄청난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이와 같은 결정을 리더가 잘못 내릴 때 추종자들에게까지 비극이 닥친다. 김재규 사건에서 그를 충실히 따르던 육사출신 보좌관들이 아깝게도 사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것은 리더의 오판과 맹목적인 복종의 합작이다.
9.11 사태와 아프카니스탄 전쟁도 리더와 오판의 함수 관계가 어떤 것인지를 설명해 주고 있다. 아프카니스탄의 알 카에다도 마침내 손을 드는 모양이다. 빈 라덴과 오마르도 쫓기고 있고 목숨이 경각이다. 그렇다면 뉴욕 월드 트레이드센터에서 목숨을 잃은 3,000명의 희생자는 무엇이며 아프카니스탄의 전쟁터에서 비참하게 죽은 탈레반 병사들은 무엇이란 말인가. 개죽음이다. 월드 트레이드센터가 주저앉는 충격으로 팔레스타인 사태가 해결 기미를 보이는 것도 아니고 탈레반의 항전을 이웃 아랍 국가들이 지하드(성전)로 보고 있는 것도 아니다. 또 ‘알 카에다’와 ‘탈레반’이라는 이름이 유명해졌지만 그것은 악명일 뿐이다.
빈 라덴이 월드 트레이드센터 공격을 직접 지휘했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으나 알 카에다 조직이 관여된 것은 거의 확실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빈 라덴이 9.11 사태에 대해 책임을 피할 길이 없다. 결국 뉴욕사태와 아프카니스탄 전쟁은 알 카에다 지도자들과 탈레반 리더인 오마르의 잘못된 판단으로 빚어진 비극이다. 특히 미국 내에 살고 있는 아랍계와 이슬람교도들이 당하고 있는 차별대우를 생각하면 알 카에다는 이슬람 형제들에게도 몹쓸 짓을 한 셈이다.
이제 아프칸 전쟁이 서서히 막을 내리고 있다. 이 전쟁은 리더의 오판이 얼마나 큰 비극을 초래하는지의 한계를 보여준 전쟁이다. 그리고 인간이 인간을 미워할 때 폭발되는 파괴력이 어떤 것인지를 증명한 인간갈등 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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