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11일 테러참사 이후 두달 남짓 동안 미국민들이 희생자 유가족돕기 및 피해복구를 위해서 모은 성금이 12억 달러에 달했다고 한다. 이는 한화로 1조5천억원이 넘는 큰 액수이다. 이번 대참사로 많은 사람이 죽었고 미국의 안보와 미국이 내세우는 이념과 가치도 크게 위협받았기 때문에 미국인들은 그들 자신이 직접 피해를 당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터라 단시간에 이런 큰 성금을 모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아닌게 아니라 테러이후 지금까지 미국 전역에서는 각종 사회활동, 구호활동, 인도적인 활동에 봉사를 자원하는 사람들이 평소에 비해 30% 이상 늘었다고 하니 이번 사건이 미국민들의 마음을 어지간히 흔들어 놓은 모양이다. 하지만 한국에서도 국가적인 위기나 재난이 닥쳤을 때 온 국민이 어려움을 극복하는데 동참하는 것을 보아 온 우리들로서는 미국민들의 이런 행동이 특히 유별나거나 새삼스럽게 보이지 않는다. 사실 우리는 미국인들이 우리보다 더 인정이 많고 인심이 좋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데 잘 살펴보면 미국인들도 인심좋은 일을 많이 하고 있는 것 같다. 테러성금 같은 것만 보고 하는 말이 아니라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많은 미국인들의 생활속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폭넓은 기부행위와 자원활동을 두고 하는 말이다. 평상시 미국인들의 기부나 자선활동은 자기와 별로 상관없는 그리고 눈에 잘 띄지 않는 불특정 다수인들에게까지 널리 뻗치고 있다. 얼핏 보기에 자기밖에 모르는 미국인들 같지만 그들은 주어야 할 때 그리고 주어야 할 곳에 줄 줄 아는 사람들이다.
가족이나 친척, 이웃사람이나 마을사람, 친구나 동창 등 주위에서 자신과 특정한 관계를 맺는 사람들에게 아주 끈끈한 정을 보이는 것이 한국인의 인심이라면, 미국인들의 인정은 보다 멀리 그리고 넓게 미치고 있다. 그들은 이른바 박애주의 또는 애타주의를 실행하고 있다. 이는 이웃은 물론 낯선 사람들에게 선을 베푸는 선한 사마리아인의 정신, 나아가 적까지도 사랑해야 한다는 그들의 기독교정신에서 비롯한다고도 할 수 있다.
미국에는 수많은 종교단체, 후원회, 구호기금, 자선기관, 원호단체, 장학기금, 교육재단, 기타 비영리 봉사단체들이 있는데, 이들의 대부분이 오로지 일반의 기부금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점에서 미국인들의 폭넓은 인심을 읽을 수 있다. 교육기재를 구입하려고 집집마다 캔디를 팔러 다니는 고사리손들의 모금운동에서부터 장애자들의 복지를 위해서 벌이는 전국적인 TV모금공연에 이르기까지 미국에서는 사회의 많은 기능들이 ‘주는 마음(giving spirit)’에 의해서 달성되고 있다.
카네기, 록펠러 같은 전설적인 기부자의 이름을 달고 있는 재단들은 물론이고 스미소니언박물관, 스탠포드대학처럼 미국의 많은 기관이나 단체의 명칭이 어떤 사람의 이름을 달고 있는 이유도 대부분의 경우 그 사람의 헌금으로 그 기관이 설립되었기 때문이다.
미국 최대의 모금기구 유나이티드웨이,쿠키를 팔아 모금하는 걸스카웃, 미국폐협회의 크리스마스실 등이 우리에게도 잘 알려져 있고 이 밖에도 4-H 클럽, 평화봉사단, 공영TV방송, 국제로터리클럽, 라이언즈클럽, 키와니스, 월드비젼 등 수많은 민간단체들이 성금과 자원봉사를 바탕으로 미국의 구석구석에서 활동하고 있다.
모금활동에 자원해서 나서는 사람들은 차량이 정차하는 건널목 같은 곳에 모금통을 들고 나와 푼돈을 걷기도 하고, 또 어떤 때는 기부자들로부터 헌금약정을 얻어 내기 위해서 마라톤을 하듯 오래 동안 전화통을 붙들고 앉아 있기도 한다. 가장 놀라운 것은 미국에서 걷히는 각종 기부금의 80% 이상이 개인들의 헌금이라는 점이다.
어쨌든 미국인들이 일반적으로 기부를 잘 하고 자원봉사에 더 적극적이고 입양 등에도 더 개방적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 근거는 앞서 말한 기독교정신과 아울러 역시 개인을 중심으로 하는 만인평등주의 가치관에서 찾을 수 있을 것같다. 자신의 능력을 펼쳐 보기도 전에 남보다 못한 형편에서 출발해야 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는 미국이 지향하는 만인평등과 기회균등의 원칙에서 이미 어긋난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그런 사람들을 위해서는 무언가를 주어야 한다는 당위성이 따르게 된다.
주는 마음과 주는 행위를 둘러싸고 잡음이 없는 것은 아니다. 단체들이 모금된 돈을 잘못 관리했다 해서 비난을 사기도 하고, 한 쪽에서는 너무 잦은 모금운동에 신물이 난다는 볼멘소리, 또 사람들이 주고 싶어 주는 게 아니라 세금내기 싫어서 줄 뿐이라는 비아냥도 들린다. 하지만 미국사회의 커다란 부분이 국민들의 ‘거저 주는 마음’에 의해서 꾸려져 나가고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우리의 주변을 보아도 그동안 살림은 나아졌지만 인심은 각박해졌다는 것이 통념인데, 미국에서는 지난 10년 동안 개인기부액이 거의 10%나 증가했다고 하니 미국민들의 ‘거저 주는 마음’은 아직도 살아 있다고 하겠다.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이 또 있는 것같다.
http://lilt.ilstu.edu/sjchang/konglitis.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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