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세상이 연말과 크리스마스 준비로 들떠있는 이때 가슴 한구석에 자식을 묻어둔 아픔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 이맘때가 되면 이들에게는 채워질 수 없는 빈자리는 더욱 크고 그리움은 더욱 깊어져 어느때보다 힘든 시간들이다.
"갑자기 막내딸이 그리울 때면 녀석의 환한 모습이 담긴 사진을 가슴에 품고 잠을 청합니다. 꿈에라도 나타나 주었으면 좋으련만..."
작년 12월12일 일을 마치고 귀가하던중 아파트 주차장에서 강도들의 총에 맞아 숨진 남지연양(당시 19세)의 아버지 남충희씨(55)는 귀염둥이 막내의 사진을 보며 하염없이 흘러 내리는 눈물을 훔쳤다. 어느덧 1주기가 다가오고 있지만 가슴 깊이 새겨진 그때의 충격과 상처는 가실줄을 모른다.
매주 딸이 묻혀 있는 위티어 로즈힐스 공원묘지를 찾아가 작은 종이에 하고픈 말을 써놓고는 무언의 대화를 나누는 남씨. 밤일을 마치고 새벽에 귀가할 때면 마음씨 고은 지연이가 웃으며 문을 열어줄 것 같은 기대를 버릴 수 없어 더욱 가슴이 아프다고 말했다.
각종 사건·사고로 애지중지 키우던 자식을 먼저 보내야 했던 부모들은 연말이 다가오면 더욱 가슴이 휑하다. 동병상련이라 했든가. 같은 처지에 놓여 고통속에 살고 있는 부모들이 자연스럽게 모여 서로를 위로하고 격려하는 곳이 ‘반달회’(회장 양승길). 절반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서로의 절반을 채워주자는 뜻에서 만들어진 이 모임의 회원들은 저마다 애틋한 사연들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회장을 맡고 있는 양승길씨(60)는 92년 5월 프롬파티에 참석했다가 돌아오던 큰딸 수정양(당시 19세)과 둘째딸 수미양(당시 18세)을 불의의 교통사고로 한꺼번에 잃었다. 또 95년 11월 자신의 집에서 칼에 찔려 숨진채 발견됐던 린다 박양(당시 18세)의 부모 박선화씨와 봉실씨 부부도 회원으로 참여하고 있고 97년 8월 대한항공 괌 추락사고로 외동딸 티파니 강양(당시 8세)을 잃은 강미경씨도 포함돼 있다.
95년 10월 부에나팍 자신의 아파트 주차장에서 갱단원의 신고식에 희생된 진봉관군의 부모도 한때 참여했지만 지금은 소식이 뜸한 상태로 진군의 아버지 진성철씨는 지금도 실의에서 벗어나지 못한채 힘겨운 삶을 살아가 주위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이밖에 4.29폭동당시 사망한 이재성군(당시 19세)의 어머니 이정숙씨도 회원으로 참여해 새 회원들에게 조언을 아끼지 않고 있다.
3개월마다 정기모임을 갖는 반달회는 지난달 모임을 새로 이사한 괌사고 희생자 티파니양의 어머니 강미경씨 집에서 가졌다. 하지만 연말이 되면 이들에게 몰려 오는 쓸쓸함은 어떻게 피할 수가 없다. 그래서 회원간에 전화를 주고 받는 횟수도 늘어난다. 가슴을 누르는 답답함이 얘기를 나누다 보면 조금이나마 해소되기 때문이다.
박선화씨는 "자식을 잃은 우리같은 사람들은 연말이 더욱 힘이 든다"며 "남들은 모처럼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여 정담을 주고 받는데 우리는 반대로 빈자리를 다시 한번 확인해야 되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박씨는 또 "그나마 서로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반달회가 있어 큰 위로가 된다"며 "지금은 우리의 슬픔에서 벗어나 주변의 어려운 이웃들에게 따스한 정을 전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양 회장도 "현재 반달회에 빠지지 않고 참석하는 가정은 10여가정으로 전에는 모이면 슬픔과 절망스러운 얘기들이 많았지만 지금은 서로의 감정을 추스려주고 미래에 관한 얘기와 다른 어려운 이웃을 돕기 위한 방안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며 "반달회는 고통을 함께 나누고 작은 위안을 줄 수 있도록 소중한 모임"이라고 소개했다. 양 회장은 또 "우리같은 불행한 모임이 없어지는 세상이 하루속히 오기를 항상 기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srhwang@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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