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와의 전쟁’ 1단계인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정권 축출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면서 다음단계인 ‘이라크’ 공격이 부상하고 있다. 대 이라크 군사행동과 관련한 미정부의 입장과 향후 테러정국을 조망해본다.
▲옥세철 논설실장- 탈레반 정권이 붕괴됨으로써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이제 바둑으로 치면 잔 끝내기 단계에 들어간 것 같습니다. 이와 동시에 테러전쟁의 제2단계, 다시 말해 미국의 다음 공격목표는 어디가 되어야 하는가 하는데 대한 논란이 들끓고 있습니다.
▲민경훈 편집위원- 아프간 사태가 마무리 단계에 들어가면서 다음 차례가 어디인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습니다. 부시 대통령은 “아프간은 테러와의 전쟁의 시작에 불과하다”고 밝힌 바 있고 아프간내 탈레반과 알 카에다 조직을 분쇄한다 해도 테러가 사라지지 않는다는 점은 자명하기 때문에 미국이 한 번 뺀 칼을 쉽게 거두지는 않을 것이란 관측입니다.
▲권정희 편집위원- 전쟁이 참 싱겁게 끝났다는 느낌입니다. 산세가 험한 지형 때문에 외국군들이 고전을 했던 적이 여러 번 있어서 모두들 지레 긴 전쟁을 염두에 두었던 때문인 것 같습니다. 미국이 아프간과의 전쟁에 들어가자 러시아에서 경고가 많았지요. 아프간이란 나라는 ‘들어가기는 쉬워도 빠져나오기 어려운 나라’라고 말입니다. 미국이 지상군에 의존했다면 아마도 그런 상황을 면치 못했을 것입니다. 공군력을 주무기로 싸우는 새로운 전쟁방식 덕분에 이번 전쟁을 쉽게 끝낼 수 있었지요.
▲박봉현 편집위원- 누가 뭐라 해도 이번 테러와의 전쟁에서 수훈갑은 단연 미공군이라 해야 겠지요. 미국인들 가운데 소수의견이긴 하지만 미군들이 너무 몸을 사리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있었지만 아무튼 효율적 측면에서는 기억될만한 전쟁이었습니다.
▲옥- 이런 점에서 볼 때 미국과 적대관계에 있는 나라들은 아프간 전쟁의 상황에 아마 전율감을 느끼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막강한 미공군력에 앞에 도대체가 방어수단이 없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고도 정보위성망을 통해 모든 것이 노출된 상황이니까 더욱 공포를 느끼겠지요.
▲민- 다음 번 타겟은 이라크이며 방법과 시기가 문제일 뿐 이미 치는 것은 기정 사실이라는 게 워싱턴 소식통들의 중론입니다. 사담이 대량무기를 생산하고 있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고 과거에도 자국민을 상대로 독개스를 뿌린 전과가 있는 데다 국제 테러 조직과 밀접한 관계를 맺어온 것만으로 공격 이유는 충분하다는 것이죠.
▲옥- 지금의 상황은 테러전쟁을 확산하면 서방의 대테러 연합전선이 무너질 것이라는 등의 논란은 쑥 들어가고 그 다음 타겟이 이라크냐, 소말리아냐, 그렇지 않으면 필리핀이냐 등이 논의되는 단계입니다. 여론도 그렇습니다. 75%의 미국민이 페르샤만에 미군을 다시 보내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을 공격해 전복하는 것을 지지했습니다. 주목할 점은 테러전쟁이 장기전이 되고 또 여러 가지 어려움이 따르더라도 이를 지지한다는 미국민이 압도적 다수라는 사실입니다. 베이비 붐 세대 동안 미국사회를 지배했던 ‘월남 증후군’에서 완전히 탈피한 모습이라고 할까요.
▲민- 지금 미국인들의 80%가 이라크 공격을 찬성하고 있는 것도 부시 행정부가 이라크를 때릴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만약 이라크를 가만 놔뒀다가 다시 끔찍한 테러가 발생하면 오히려 부시 대통령이 ‘그 동안 뭐 했느냐’는 비난에 직면하게 될 것입니다.
▲권- 이라크는 테러 직후부터 거론되었지요. 비행기를 몇대씩 납치해 자폭하는 엄청난 일을 알 카에다 조직 혼자서 하기는 어렵다, 국가 차원의 정보력이 뒷받침되어야 가능한 일인데 그렇다면 누구인가, 이라크 아닌가 라는 주장들이 있었고, 탄저균 사건이 터지자 이라크가 수상하다, 사담 후세인 스타일이라는 주장도 있었습니다. 미국이 이라크를 그대로 둘 것 같지는 않습니다.
▲박- 이라크를 손봐야 한다는 것이 대세론인 모양인데, 그렇다해도 확전이 가져올 예기치 못한 부작용이 우려됩니다. 그러다 또 많은 양민이 다치거나 목숨을 잃을까 걱정입니다. 불가피한 ‘테러와의 전쟁’이라지만 죄없는 사람들을 죽게 하는 것은 어떤 명분으로도 정당화하기 어려운 것 아닙니까.
▲권- 부시가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했을 때 가장 우려했던 것이 이슬람권으로의 확산이었지요. 그런데 분위기가 슬슬 확전으로 가는 것 같습니다. 혼내줘야 할 대상국가로 여러 나라들이 거론되고 있지 않습니까. 알 카에다 조직에 대한 징계라고는 하지만 그 과정에서 또 얼마나 많은 무고한 사람들이 죽게 될지 걱정입니다.
▲옥- 전쟁의 추이에 따라 자칫하다가는 아랍권 전체, 더 나아가서는 이슬람권 전체에서 반미 데모의 봇물이 터져 미국은 고립상황을 맞고 일부 친미 산유국 체제는 무너질 수도 있다는 전망이 지배적이었지요. 막상 미국의 공격에 수주만에 탈레반 정권이 무너지면서 아랍권에서 반미데모는 오히려 찾아 볼 수 없게 됐습니다. 파키스탄 군사정권의 입지도 더 강화된 것 같습니다. 아랍권에서는 온정보다는 냉혹한 ‘파워’만이 통한다는 강경론자들의 주장이 맞은 셈이지요.
▲민- 무력사용에 반대하던 파월 국무장관도 태도를 바꾸고 있습니다. 단지 국무부에서는 대량살상 무기를 파괴하는 선에서 그치고 사담 축출까지는 가지 말자는 의견인데 이는 국방부 매파의 강력한 반발을 사고 있습니다. 지난 번 걸프전 때 사담을 살려둔 게 화근이라며 이번 기회에 뿌리를 뽑지 않으면 두고두고 후환거리라는 것이죠. 아프간 전 이후 럼스펠드 국방장관의 발언권이 세져 이제는 강경론 쪽에 힘이 실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박- 곤돌리자 라이스 안보담당보좌관의 강경입장이 부시행정부의 정책 골간을 이루고 있는 형국입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을 종식시키려는 온건파들의 외교노력이 다시금 물거품으로 돌아갈 공산이 큽니다. 테러조직을 뿌리뽑는 일과 이-팔 평화를 도출하는 일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것입니다. 어느 하나를 포기하고 다른 하나를 완전히 이룰 수 있다는 생각은 그 결과에 실망하게 될 것입니다.
▲옥- 이번 전쟁의 특기할 점은 미군 사상자 발생률이 ‘제로 퍼센트’선을 현재 보이고 있다는 점입니다. 걸프전 때 50만 이상의 대병력을 투입했는데 미군측 사상자는 수백여명에 불과 했었지요. 안전사고 사상자율에도 못미치는 수준입니다. 미군측이 ‘제로 퍼센트’선의 사상률을 보인다는 것은 해외에서의 미군개입이 그만큼 용이해졌다는 의미도 됩니다.
▲민- 이번 아프간 전쟁으로 미국이 자신을 얻은 것도 이라크 공격이 유력시되고 있는 큰 이유입니다. 지금까지 미국은 공군력과 북부동맹의 힘만으로 거의 피를 흘리지 않고 탈레반을 궤멸시켰습니다. 이라크 내 쿠르드족과 시아파의 힘을 빌어 이라크에서도 아프간전의 재탕을 할 수 있다는 계산입니다. 당초 예상과는 달리 아랍권에서 탈레반의 전복에도 불구, 별 반응이 없는 것도 이라크 공격론에 무게를 실어주고 있습니다.
▲권- 미국이 막강한 힘만 믿고 어디든 가서 경찰노릇을 해도 되는 건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도 많습니다. 하지만 탈레반 정권이 무너지면서 여성들이 부르카를 벗고, 남성들이 수염을 깎고, 극장에 영화가 상영되고, 음악소리가 들리는 변화들을 보니 미국의 경찰노릇도 의미가 있다는 느낌이 들더군요. 탈레반이 카불을 내놓은 다음 날, 한 여성이 5년만에 부르카를 벗고 해맑은 맨 얼굴을 내놓은 모습으로 찍힌 외신 사진은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박- 억눌려오던 아프간 여성들이 새 삶을 찾게 된 것은 참 반가운 일입니다. 여성들이 교육을 받고 재능을 살려 사회 각 분야에 진출하면 지금보다 한결 다양화하고 생동감 넘치는 아프가니스탄이 될 것입니다. 당장 열악한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유엔 등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것입니다.
▲권- 미국의 개입은 결과적으로 아프간 여성들에게 ‘여성해방’의 선물을 안겨주었습니다. 아프간 여성문제에 대해서는 토크쇼 호스트인 제이 레노의 부인 메이비스가 적극적으로 개입했었는데, 이제는 로라 부시 대통령 부인이 앞장을 서고 있습니다. 21세기에는 상상도 하기 힘든 참혹한 학대를 받던 아프간 여성들이 막강한 후원자를 만났습니다.
▲옥- 지난 얘기지만 걸프전 결과에 가장 추위를 탄 사람은 북한의 김일성이었다고 합니다. 북한군의 무기체계가 당시 이라크무기 체계와 흡사한데 미국 무기와 견주어 도무지 상대가 안됐기 때문이죠. 또 지하벙커를 깨는 폭탄이 선보여 북한이 몹씨 당황했었다는 얘기가 있었습니다. 또 코소보전쟁이 끝난후 가장 먼저 현장 답사를 한 국가가 북한이라는 예기도 나왔습니다. 어떻게 공군력으로만 천연요새에 둘러싸인 세르비아군을 격파할 수 있는지 놀라서 달려간 겁니다.
▲박- 북한이 미국의 공세에 움찔한 것은 사실입니다. 반테러 선언에 서명한 것이 뒤늦게 밝혀진 것도 이를 뒷받침하고 있는 것이지요. 테러지원국으로 낙인 찍혀 있는 상황이니 몸조심하지 않으면 안되겠지요.
▲옥- 이번 아프간 전쟁의 추이를 북한은 상당히 불안한 눈초리로 바라보고 있을 것입니다. 가공할 미군의 공군력 때문이겠죠. 지난 94년인가요, 당시 미국은 북한의 핵무기개발시설을 파괴하기 위해 북한에 대한 전략폭격 반보직전 상황에 까지 돌입한 적이 있지 않습니까. 탈레반 정권이 무너지기가 무섭게 부시 행정부는 이라크와 함께 북한을 구체적으로 지목, 생화학무기 등 대량살상무기개발 중지를 촉구하고 또 유엔 사찰단의 입국을 허용하라고 요구했습니다. 겁나는 요구지요.
▲박- 북한이 미국으로부터 이러쿵저러쿵 말을 듣는 것은 어느정도 자업자득입니다. 문제는 테러와의 전쟁 불똥이 북한에도 떨어지고 이것이 한반도 전역에 번져 요즘 가뜩이나 시들해져 가는 평화노력을 더 약화시킬까 염려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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