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지중해 세계에서 로마군은 무적의 군단이었다. 중보병부대가 로마군단의 주력으로 ‘팍스 로마나’는 ‘무적의 로마군단’이라는 버팀목이 있기에 가능했다.
이 로마군단의 명성은 어느 날 무너진다. 아시아에서 전래된 ‘등자’( 子) 때문이다. 등자에 두발을 디뎌 균형을 유지할 수 있음으로 달리는 말 위에서 창, 칼을 휘두르는데 불편이 없고 활을 쏠 수도 있는 게르만 기병의 파상적 공세에 로마의 보병은 결국 궤멸된다.
1941년 12월7일 일본제국의 진주만 침공으로 미 태평양함대 전력이 상당한 손실을 입었다. 알렉산더 드 세버스키라는 군전략가는 사기 진작을 위해 글을 썼다. 그는 이렇게 주장했다. "승리는 공군력을 통해 얻어진다." 그의 예언은 부분적으로 맞았다. B-29기의 원폭투하로 일본과의 전쟁은 끝났다. 그러나 엄밀한 의미에서 공군력을 통한 승리라고 볼 수는 없다. 화력의 승리다.
2차대전은 공군력이 전쟁의 승패를 가를 수도 있다는 예상 하에서 치러진 전쟁이다. 그러나 공군력이 전쟁의 결정적 요소는 아니라는 평가가 내려졌다. 폭격 적중률이 극히 낮았기 때문이다. 한국전에서, 월남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와 함께 이런 결론이 도출됐다. "전쟁은 궁극적으로 보병에 의해 결정 난다."
’20세기는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로 마감됐다’-. 학계의 정설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냉전 후 첫 전쟁인 걸프전은 ‘21세기 전쟁’이다. 또 앞으로의 전쟁에 대한 많은 것을 시사한 전쟁이다.
걸프전의 미군 사상자 수는 수백명에 불과하다. 반면 이라크군은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공군의 전략폭격이 주효한 결과다. 그러므로 지상전은 사실상 ‘청소’에 불과했다. 이 때 선보인 게 ‘스마트 밤’(smart bomb)이다. 그렇지만 전체 폭격의 적중률은 10% 정도였다. 그런데도 엄청난 파괴력을 보인 것이다.
코소보는 나치 독일군도 넘보지 못한 곳이다. 밀로셰비치는 코소보 전투에서 미 지상군이 진입하기도 전에 백기를 들었다. 미공군의 파괴력 때문이다. 공군력만으로 전쟁을 끝낸 셈이다.
그 다음이 아프가니스탄 전쟁이다. 전황이 지지부진한 느낌을 주자 여론이 들끓었다. 융단폭격을 하라, 지상군을 투입시켜라, 성화가 빗발쳤다. 그러나 장군들은 알고 있었다. 전략폭격이 끝나면 탈레반군이 곧 궤멸상황을 맞는다는 것을.
아프간 전쟁의 폭격 적중률은 50%선에 이른다. 걸프전 때 10%의 적중률에도 불구, 수십만 이라크군이 지상전에 돌입하기도 전에 궤멸상황을 맞은 것에 비교하면 그야말로 가공할 적중률이다. ‘스마터 밤’(smarter bomb), 더욱 고도로 발달된 정보통신 테크닉 덕분에 더 정교해진 폭탄이 개발돼서다.
"아프간 전쟁은 테러전쟁의 서전에 불과할 수도 있다." 부시 대통령의 말이다. 부시는 또한 생화학무기 개발과 확산을 좌시하지 않겠다고 경고했다. 테러전쟁 확전의 시그널로 들린다.
테러전쟁은 사실이지 세계전쟁의 성격을 보이고 있다. 토머스 프리드먼의 지적대로 지난 20세기의 세계대전이 ‘세속적 전체주의’(파시즘과 공산주의)와의 전쟁이었다면 21세기의 세계대전은 ‘종교적 전체주의’(회교 광신주의)와의 싸움이 될지도 모른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부시의 확전 경고는 서방 세계를 수호하겠다는 결의의 천명일 수도 있다.
다른 측면도 있다. ‘오만한 힘의 과시’라는 측면에서 그 발언을 음미할 필요도 있지 않을까 본다.
’등자’라는 극히 간단한 장비가 유럽의 역사를 바꾸었다. 등자의 등장은 기병의 우수성 확립과 함께 유럽을 기사(騎士)를 중심으로 한 중세 귀족사회로 변모시킨 것이다.
부시 행정부도 이 점을 잘 알고 있다. 사상 처음 ‘지상군의 투입 없이’, 다른 말로 하면 ‘막대한 미군 사상자 발생 없이’ 대전쟁을 치르고, 또 이길 수 있는 능력을 ‘잇단 21세기의 전쟁들’을 통해 미국은 보여준 것이다. 이를테면 막강한 공군력만으로도 ‘팍스 아메리카나’는 21세기에도 계속 유지된다는 선포다.
"테러에 이용될 수 있는 대량 살상무기들을 개발하는 국가들은 응분의 책임을 지게 될 것이다." 부시의 제2차 경고다. 미국의 파워에 탈레반 정권이 붕괴된 타이밍에서 나온 경고여서 그런지 그 발언에는 상당히 힘이 실려 있어 보인다. 그 발언은 그렇지만 어딘지 ‘써늘한 느낌’마저 불러일으킨다. 경고 대상국에 북한이 포함돼 있어서다.
부시의 발언은 아직은 외교적 표현으로만 치장돼 있다. 그 외교적 수사는 그러나 언제 ‘스마트, 아니 스마터 밤’으로 대치될지도 모른다.
’너무나도 강한 미국’-. 외경을 넘어서 어쩐지 위태로워 보인다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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