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해가 저물어야 난다’는 말이 있다. 미네르바는 지혜의 여신 아테네의 로마 이름이며 부엉이는 아테네가 아끼는 새다. 동물학자 조사에 따르면 부엉이가 다른 새보다 지능이 높다는 것은 속설일 뿐 아무런 과학적 근거가 없다고 하지만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모습이 현자와 닮았다고 해 최근까지 지혜를 상징하는 새로 불려왔다.
어쨌든 이 말은 ‘세상일은 지나고 봐야 진상을 알 수 있지 진행 중에는 잘 모른다’는 뜻으로 자주 인용된다. 이 말이 가장 잘 들어맞는 분야의 하나가 경기 예측이다. 제2차 대전 후 미국에는 10번의 불황이 있었다. 이 가운데 대다수 전문가들이 사전에 예측한 불황은 단 한번도 없었다. 그 만큼 경기 진단이 어렵다는 이야기다.
국립 경제연구소(NBER)는 26일 미국이 불황 국면에 접어들었으며 이번 불경기가 올 3월부터 시작됐다고 공식 발표했다.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과 함께 시작된 90년 불황이 끝나고 91년 3월부터 시작된 호경기는 딱 10년간 계속된 셈이다. 하버드, 스탠포드 등 미 명문대 교수를 포함 한 전문가 6명으로 구성된 NBER은 정부 기관은 아니지만 가장 공신력 있는 경제 연구소의 하나로 여기서 내린 결정은 정부의 공식 입장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주가 폭락과 대량 감원, 테러 여파로 인한 판매 부진, 소비자 신뢰지수의 급강하 등 최근 헤드라인을 장식한 뉴스를 떠올리면 이번 발표는 조금도 놀랍지 않다. 오히려 ‘모두가 아는 일을 이제 발표하다니…’ 하는 사람이 많다.
미국이 불황 진입이 공식 확인된 지금 사람들의 최대 관심사는 이것이 언제쯤 풀릴까 하는 점이다. 제2차 대전 이후 지금까지 10차례의 불경기는 짧게는 6개월에서 길게는 16개월까지 지속됐다. 평균을 잡으면 11개월 정도였다. 이번 불황이 지난 3월부터 시작됐고 평균 정도 간다면 내년 2월이면 끝난다고 보는 시각이 가능하다. 일부 전문가들이 내년 봄이면 경제가 회복세를 보일 것으로 낙관하고 있는 것도 이런 전망에 근거한 것이다.
미국 경기가 바닥을 쳤다는 징후는 곳곳에서 보이고 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주가다. 9·11 테러 이후 뉴욕 증시 사상 유례 없이 1주일씩 폐장 당하는 수모를 겪은 후 개장하자마자 폭락을 거듭하던 미 주가는 10월 들어 완연한 회복세를 보여 이제는 테러 이전 수준을 완전 회복했다. 8,200대로 떨어졌던 다우존스 산업지수는 이제 10,000선을 두드리고 있으며 1,600대로 내려갔던 나스닥도 2,000대에 근접하고 있다. 향후 6개월에서 1년 후 경기를 진단하는 지표로 가장 유력시되고 있는 주가가 온갖 악재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버티고 있다는 것은 미래에 대한 투자가들의 낙관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얘기다.
또 하나는 금리다. 지난 10월31일 30년 만기 장기 공채 발행을 중단한다는 연방 재무부의 ‘핼로윈 깜짝쇼’ 덕에 4.8%선까지 떨어졌던 장기금리는 이번 주 5.3%선으로 치솟았다. 연방준비제도 이사회(FRB)가 단기금리를 연초 6.5%에서 2%로 대폭 내렸음에도 장기금리는 연초 수준에서 거의 변화가 없다. 장기금리가 이처럼 떨어지지 않는 것은 이미 시장이 경기 회복에 따른 자금 수요를 계산에 넣고 있다는 분석이다.
미 경제 활동의 3분의2를 차지하고 있는 소비자들의 심리상태를 보여주는 소비자 신뢰지수도 비슷한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현재 경제상황에 대한 신뢰도를 묻는 현행 신뢰도는 폭락을 하고 있지만 6개월 후 미래에 대한 느낌을 재는 미래 신뢰도는 지난 3월 최저점을 기록한 후 그 이하로 내려가지 않고 있다.
그밖에 경기가 회복되고 있다는 징표로 통화량의 급증을 들 수 있다. 향후 18개월 후 경기를 좌우하는 가장 유력한 자료의 하나인 통화량이 17년 내 가장 빠른 속도로 늘고 있다. 모두 FRB가 미국이 장기 침체에 빠지는 것을 막기 위해 모든 수단을 총동원하고 있다는 증거다. 현재 나이 90의 고령에도 정정한 활동을 하고 있는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밀튼 프리드먼은 지난 달 월스트릿 저널 기고를 통해 FRB가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고 있으며 미 경제가 내년 놀랄 정도의 회복세를 보일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이런 낙관적 전망이 다는 아니다. 소수이기는 하나 90년대 말 하이텍을 중심으로 한 나스닥의 호황은 20년대 뉴욕과 80년대 도쿄를 능가하는 거품이었다며 과거 예를 볼 때 이처럼 큰 거품이 꺼진 후 경기가 순조롭게 회복된 적이 없었다는 의견도 있다. ‘최선을 희망하되 최악에 대비하라’(Hope for the best, prepare for the worst)는 금언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지혜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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