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수감사절 연휴가 끝나면서 본격적으로 ‘연말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다. 송년모임과 샤핑으로 모두가 들뜬 기분으로 자칫 마음이 해이해질 때다. 그러나 올해는 테러참사와 전쟁등으로 뜻 있고 알찬 모임을 통해 건전한 연말을 보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에 송년 기획시리즈 ‘건전한 연말을 보내자’를 4회에 걸쳐 연재한다.
<차례>
1. 음주문화-이대론 안된다
2. 청소년 비행-우리가 지키자
3. 건전한 상거래-믿고 찾는 한인업소
4. 불우이웃과 함께-사랑을 나누자
<1>음주문화-이대론 안된다
맥주 두 잔만 마시면 얼굴이 빨개져서 고개를 들고있기도 민망해 하는 최 모(38·사업)씨는 송년모임이 연달아 있는 12월이 무섭다. 몇 년째 동창회와 직장회식 등 서너 차례의 송년파티에 빠지지 않고 참석해 왔는데 모임 때마다 밀려드는 폭탄주세례에 ‘필름이 끊겨’ 집에 실려간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지난해부터 술 세례를 피하기 위해 아이들을 처갓집에 맡겨놓고 꼬박꼬박 아내를 데려나가는 요령도 피워봤지만 대리운전자가 생긴 것 빼놓고는 별반 효과가 없었다. 거절하다니 섭섭하다는 얘기를 듣기가 싫고 받아 마시자니 뒷일이 무서워 모임에 갈 때마다 고민이다.
최씨처럼 LA한인타운을 중심으로 생활하는 한인들이 연말마다 참석하게 되는 송년모임은 동창회, 직장·단체회식, 친구들과의 모임 등 평균 3∼4차례. 모임의 성격과 장소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 자리에서 술이 빠지지 않는다. 모임이 끝나면 골수 주당들이 나서 ‘2차는 기본, 3차는 선택’을 외치면서 분위기를 돋구고 기분에 끌려간 사람들은 뒷일은 생각도 않고 술독에 푹 빠져버린다.
그래도 집에 갈 때 동시픽업을 찾는 사람은 그래도 상태가 나은 편. ‘택시를 부르자’ ‘태워주겠다’는 주변의 권유를 마치 자존심 깎아 내리는 말인 양 기분 나쁘게 받아들이면서 객기를 부리는 ‘문제아’가 어떤 자리이건 꼭 한 두 명씩 있다. 맥주와 양주를 섞은 희한한 이름의 폭탄주를 왼쪽, 오른쪽으로 돌리고. 양주를 그냥 마시는 게 심심해 불까지 붙여 마시고는 이승의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운전대에 무모하게 몸을 싣는 것이다. 이 지경에 다른 운전자의 안전이 생각날 리 만무하다.
한인들의 음주문화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지적된 것은 한 두 해의 일이 아니다. 경찰과 사회단체들이 연말이나 연휴 때가 되면 ▲술을 강제로 권하지 말 것 ▲대리운전자를 선정할 것 ▲대체 교통수단을 마련할 것 등 경고성 메시지를 귀가 따갑도록 발표했지만 사고는 늘 뒤따랐다. 특히 최근에는 여성들도 남자에 뒤질세라 음주운전 대열에 가세해 무고한 인명피해를 내는 대형사고까지 일으켰다.
평범한 가정주부였던 곽나현(27)씨는 지난해 연말 한인타운에서 친구들과 술을 마신 뒤 집으로 가던 길에 2번 프리웨이에서 3중 충돌사고를 일으켜 6명의 사상자를 냈고 지난달에는 여행사 직원 김미선(33)씨가 음주운전을 하던 중 한인 보행자를 치어 숨지게 만들었다. 곽씨는 13년형이 구형된 상태이고 김씨는 살인혐의로 기소돼 재판에 계류돼 있다. 또 지난 99년 12월에는 은행직원 김모(30)씨가 술에 취한 채 60번 프리웨이를 타고 귀가하다 픽업트럭을 들이받고 이어 유조차가 뒤집히는 대형사고를 일으켰다. 모두가 ‘나는 괜찮겠지’하며 방심한 사이에 일어난 음주운전 사고들로 본인의 인생은 물론 피해자와 피해자 가족들에게까지 평생 보상받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 극단적인 예다.
최근 호텔예약을 취소하고 간소하게 송년모임을 치르기로 한 가주한의사협회 관계자는 "테러참사가 일어난 지 두 달 밖에 안됐고 지구 저편에서는 전쟁이 진행중인데 먹고 마시는 일로 연말을 보낼 수는 없지 않느냐"며 "올해만큼은 행사를 검소하게 치르기 위해 공공단체 강당을 빌려 행사를 열기로 했다"고 말했다. 8년 전부터 연말에 술 취한 한인들에게 무료픽업서비스를 해주고 있는 키 한씨는 "감당하지도 못할 술을 2차, 3차까지 억지로 마시고 음주운전을 일삼는 악습은 사라져야 한다"며 "어쩔 수 없이 술자리에 끼어야 한다면 대리운전 등 대책부터 세울 것"을 조언했다.
cshah@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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