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11 테러 여파로 자동차 여행 인기 회복세
지난 몇 년간 도외시되었던 도로여행의 즐거움을 되찾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지난 몇 년간 장거리 운전은 시간만 소비하는 부담이며 고속도로에서 공연히 싸움이나 하고 맛도 영양가도 없는 음식이나 먹게 된다는 생각 때문에 기피되어 왔었으나 하루아침에 항공 여행이 공포의 대상이 되어버린 후 이제까지 일편단심 대도시 생활과 야망을 추구했지만 뉴욕 같은 대도시에서 사는 불안감에서 탈출하고 싶어진 사람들에게 앞으로 앞으로 펼쳐진 도로는 갑자기 무한한 매력으로 대두하고 있다.
한달 동안 일상생활을 접고, 새로 산 위네바고 RV에 랩탑 컴퓨터와 페리에 한 상자만 싣고 길을 떠난 필립 그린스펀과 카일 니콜스도 그런 사람들. "16세부터 한번도 쉬지 않고 일했어요. 잠시라도 쉬면 썩어버릴 것 같이 일했죠"라고 말하는 니콜스는 9월 중순에 MIT 웹사이트 관리직에서 해고되자 쉬고 싶어졌다. 게다가 작년 여름, 자기의 소프트웨어 회사를 팔고 받은 돈으로 위네바고를 산 그린스펀(38)이 방금 노바 스코티아에서 돌아와 니콜스에게 동행을 권유했던 것. 케임브리지에서 출발한 이들은 우선 맨해턴의 테러 현장을 둘러보고 워싱턴을 들렀다가 지금은 테네시의 샤일로 남북전쟁 기념관부터 멤피스의 엘비스 저택 등 발길 닿는 대로 이곳 저곳을 찾아 돌아다니고 있다.
제트기 타기가 꺼려져 올 추수감사절에는 자동차로 고향집을 찾는 사람들이 늘 것이라는 예상이지만 이들처럼 길을 떠난 사람들은 하나의 목적지를 향해 가는 것이 아니다. 이리 저리 다니면서 그 사이에 자신에게 쌓여있던 긴장을 풀고 자신을 재발견하는 것이다. 일자리를 잃어서 갑자기 시간이 생긴 사람도 있고, 새 삶을 찾기 위해 일부러 시간을 낸 사람도 있다. 따라서 훌쩍 차를 타고 떠날 수 있는 사람들은 책임질 가족이나 아이가 없는 젊은 독신자들이 대부분이다.
문명이 압박하는 세상을 더 이상 견딜 수 없을 때 미시시피 강을 뗏목을 타고 내려가던 허클베리핀과 짐이나, ‘분노의 포도’ ‘이지 라이더’ ‘보니 & 클라이드’에서 보는 것처럼 미국 문학과 영화, 대중음악에는 모든 것에서 충동적으로 떠나가는 전통이 자리잡고 있다. "계속 수평선을 향해 운전하고 가다가 혹시 내가 처음으로 무엇인가를 발견한다면 멋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재탐구되고 있는 시기"라고 영화 평론가인 데이빗 탐슨은 말한다.
내년 4월호에 대륙횡단 운전에 관한 기사 등 도로여행 특집을 꾸밀 예정이라는 ‘트래블 & 레저’ 잡지 편집장 낸시 노보그로드도 "삶의 속도가 느리고 편안했던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욕망이 되살아나고 있습니다. 미국 땅을 운전하고 다니며 변하지 않는 곳, 옛날을 확인할 수 있는 곳을 찾아보며 마음을 놓는 것이지요"라고 말한다.
1960년대와 70년대에 도로여행은 반문화적 정서가 지배적이었다. 젊은이들이 대학, 직장을 때려치우고 폭스바겐 밴이나 오토바이를 타고 록밴드를 뒤따라 다녔지만 요즘 길 떠나는 사람들에게 자기 나라에 대한 불만 같은 것은 전혀 없다. 일시 해고되어서 그렇지 물질적 안락함 같은 것은 전혀 포기할 생각이 없는 도심의 전문직 근로자들이 많다.
로버트 울프(37)도 자신의 빨간 머세데스-벤츠 컨버터블을 타고 뉴욕을 떠나 5주간 남부지방을 돌 예정이다. 지난 13년 동안 한번도 장기휴가를 가지 못한 그는 3주전 해고되자 즉각 구직하러 나서지 않기로 했다. "몇 가지 어려운 질문을 몸과 마음으로 탐구해서 해답을 얻어야 하거든요" 우선 고향인 앨라배마로 가 헌츠빌의 가족과 친지를 만나고 헬렌 켈러의 집도 가보고 모교의 운동시합도 관전할 생각이다. "옛 친구들에게도 셀폰으로 전화할 생각은 없어요. 그냥 수백마일을 운전해 그들의 집으로 찾아가서 주말을 함께 지내고 오려고 합니다"
롱아일랜드시티에 사는 다이애나 스톤(33)도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다시 살펴보고 있다"고 말한다. 1982년형 스즈키 모터사이클을 타고 북동부 해안을 거쳐 플로리다의 에버글레이즈까지 갈 예정인 스톤은 사진이 전공으로 텔리비전 그래픽 회사에서 일했지만 지난달 일자리가 없어지면서 여행길에 자신의 오랜 꿈인 다큐멘터리 영화 제작 일을 되씹어 보기로 했다. "테러 덕분에 자기 삶의 우선순위를 다시 생각하게 된 사람이 많은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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