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닉스는 이민자들에게 결코 녹록치 않은 땅이다. 한 여름에는 때로 120도 이상까지도 치솟는 수은주 때문에 숨이 헉 하고 막힌다. "20여년 전 처음 왔을 때 너무 더워 눈이 빠지는 줄 알았다"고 표현하거나 "가마솥 더위 때문에 사소한 일로 부부싸움을 하다 갈라서는 사람도 봤다"고 전하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다. 아직 커뮤니티 규모가 작아 한인들이 즐길 만한 엔터테인먼트도 별로 없고 입맛대로 찾아 먹을 수 있는 한식당도 아직은 적다.
이런 악조건에도 굴하지 않고 한인들이 이곳에 둥지를 틀고 이민의 꿈을 일구고 있다. 마치 불사조 피닉스처럼.
이 지역 한인사회의 특징은 양끝간의 거리가 1시간30분 정도인 메트로폴리탄 피닉스의 광활한 땅에 흩어져 살고 있다는 것. LA나 오렌지카운티 같이 밀집도가 높지 않다. 피닉스를 비롯, 길벗, 챈들러, 메사, 글렌데일, 스카츠데일 등지에서 사는 한인들의 숫자는 대략 1만여명. 물론 추산치이며 그 중에는 국제결혼을 해 글렌데일 소재 룩공군기지등 군부대 주변에서 사는 한인여성 3,000여명도 포함돼 있다.
한인들이 많이 하는 비즈니스는 인도어 스왑밋인 마트와 세탁소, 그로서리, 리커, 마켓 등이다. 대부분 백인, 히스패닉 등 타인종들을 상대로 장사를 하고 있다. 이중 히스패닉이 주고객인 마트업계는 숫자가 늘어 경쟁이 심화되었고 전국적인 불경기의 영향으로 재미가 예전만 못한 편이다.
애리조나에는 모토롤라, 인텔 등 하이텍 기업들이 많아 이들 회사에서 근무하는 한인들도 상당수에 달하는데 자영업자와 직장인의 비율은 대략 7대3 정도로 파악되고 있다.
피닉스에서는 한인회를 비롯, 체육회, 인권문제연구소, 문화원, 교회협의회, 호돌이축구회 등 다양한 단체들이 한인들의 권익옹호와 친목도모를 위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 한인들의 관심과 동참이 적어 고민이다. 문성신 한인회장은 "물론 먹고살기에 바빠서겠지만 너무 무관심한 것 같다"며 "무료 검진등 커뮤니티 행사에 참여만 해주어도 좋겠다"고 말했다.
기독교의 복음전파 노력도 활발하다. 템피 사도교회 담임 윤원환 목사에 따르면 72년 6명의 교인들이 첫 한인교회인 피닉스 유니온교회를 창립한 이래 발전을 거듭, 현재 30여개 교회가 있다.
뿌리 교육은 템피와 피닉스에 있는 2개 커뮤니티 한국학교와 교회들이 설립한 한국학교를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 또 한인사회가 모아준 종자돈으로 ASU 대학교가 3년전 개설한 한국어 클래스는 미국에서 손꼽히는 프로그램중 하나로 발전했다.
이밖에 한미부인회가 있어 여성보호소 설립을 추진하고 있으며 500여명으로 추산되는 입양아 출신들도 정기적으로 친목모임을 갖고 있다.
피닉스의 한인 이민역사는 50년대 초반 한국전 당시와 직후에 미군들과 결혼한 한인 여성들이 글렌데일 소재 룩공군기지 등 군부대 안팎에 거주하면서 시작됐다. 그 후 이들을 연줄로 삼아 50년대 말과 60년대 초 이들의 가족들이 이민 왔으며 일반이민은 68년 대여섯 가정이 이곳에 뿌리를 내린 것이 출발점. 그 후 ‘3명의 천사’란 제목으로 지역신문에도 크게 보도된 3명의 간호사 정인자, 김해옥, 이혜숙씨가 71년 정착, 한국의 가족들을 줄줄이 불러들이면서 한인 커뮤니티 형성의 기틀이 마련됐다. 물론 본격 이민의 물꼬가 터진 것은 80년대 초반이며, 그 후 인구가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최근에는 비즈니스 기회를 찾아 시카고, 시애틀, 휴스턴 등지에서 이주하는 이들이 많다.
피닉스 한인들의 ‘제2의 고향’ 예찬은 끝이 없다. 싼 물가, 자녀 키우기에 좋은 환경, 차고 문을 열어놓고 자도 괜찮을 정도의 안전함, 수상 레포츠를 즐길 수 있는 수많은 호수, 인구대비로 가장 많다는 싼 그린피의 골프장, 김병현 선수가 활약중인 월드시리즈 우승팀 다이아몬드백스…. 한 한인은 "한 달에 한 번 정도 LA에 가는데 늘 긴장이 된다"며 "주경계선을 넘어 애리조나에 들어오면 비로소 고향에 돌아온 듯 마음이 놓인다"고 말했다.
피닉스에는 변호사, 공인회계사, 병원, 부동산 관련업, 은행업, 보험업, 안경점 등 아직 한인들의 진출이 적은 분야가 너무도 많다. 한인 관계자들은 이구동성으로 "복잡하고 공기 나쁜 지역을 떠나 이곳에 와서 사업을 하면 전망이 훨씬 밝다"고 말한다. 양복점을 운영하는 최완식씨는 "기술만 확실하면 고객은 널려 있다"며 복장인들의 진출을 기다린다고 말했다.
노래방 등 한인들을 위한 휴식공간이 적어 5~6시간(약 380마일 거리)을 달려가 LA 다운타운에서 물건을 뗀 뒤 한인타운을 찾아 사우나를 하고 맛있는 음식도 사먹는 게 낙이라는 피닉스 한인들. 그들이 지고 가는 삶의 무게가 만만치 않게 느껴졌지만 그들의 얼굴에는 어려운 싸움 끝에 승리한 자에게서만 볼 수 있는 미소가 어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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