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윈도스 온 더 월드’ 식당은 사라졌지만 부설 ‘와인학교’는 계속 개강, 수강생 몰려
케빈 즈랄리(50)의 ‘윈도스 온 더 월드 와인 학교’는 1976년에 시작됐다. 그가 스물다섯이란 젊은 나이에 ‘윈도스 온 더 월드’ 레스토랑에 포도주 담당 지배인으로 취직한 해였다. 그는 레스토랑의 연회실에서 와인강좌를 열었다.
1993년에도 테러로 월드 트레이드센터가 폭파당했을 때 레스토랑은 3년간 문을 닫았다. 그래서 인근 건물들로 옮겨다녔지만 이젠 모두 사라지고 없는 장소가 됐다. 올 가을엔 9월 하순에 개강할 예정으로 매리어트 마키스 호텔에 장소를 준비했었지만 현재 브로드웨이에 있다.
즈랄리는 10월15일에야 개강을 했다. 그 역시 테러로 상당한 마음의 타격을 받았기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들과 마음껏 먹고 자기가 갖고 있는 가장 좋은 와인들을 꺼내 마시면서 마음을 달랠 시간이 필요했다. "내게 있어서 뉴욕이란 곧 월드 트레이드센터였습니다. 내 경력의 전부는 바로 ‘윈도스’ 레스토랑이었구요"
이 와인학교의 졸업생은 1만4,000명이나 된다. 8번의 수업으로 구성된 강좌가 매년 네차례 열린다. 학생들의 평균연령은 32세, 평균 연수입은 15만 달러다. 학생들은 와인에 대해서 배울 뿐 아니라 로맨스도 심심지 않게 만들어내서, 즈랄리가 와인학교 커플들의 결혼식에 초대받은 것이 열두번도 넘는다. 그 자신 이 학교에서 만난 수강생과 결혼했다. "개인교습이 필요했던" 제자에서 아내로 바뀐 애나 파비아노는 이제 스페인 와인 전문가이자 네 아이의 어머니가 되었다.
와인학교의 강의실에는 테이블이 줄지어 놓여 있는데, 150명의 학생들은 매주 다른 사람 옆에 앉게 되는 수도 있다. 테이블마다 10~12개의 와인잔이 준비돼 있다. 와인을 맛만 보고 뱉을 때 쓰도록 플래스틱 컵도 마련돼 있고, 입안을 헹궈 미각의 감별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얼음물과 비스킷도 갖춰져 있다.
와인을 따라주는 것은 뉴욕의 일류 레스토랑에서 일하는 웨이터며 캡틴, 매니저들이다. 이들은 자원봉사로 참여하고 있는데, 한 학기 수강료가 795달러나 되는 이 강좌에서 일하면서 배우는 것이 많기 때문이다. 즈랄리는 학생들에게 "795달러를 갖고 있다는 것은 멋진 일"이라고 농담을 던진다.
그의 와인 강좌에선 옆 사람과 즐겁게 담소를 나누며 와인 맛을 품평하도록 권장되지만, 시음후 일분간은 예외다. 이 일분간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도록 되어 있다. "와인으로 하여금 말하게 하라"는 것이다.
첫 번째 포도주를 음미하기 전에 즈랄리는 학생들에게 고교와 대학시절 어떤 와인을 마셨는지 물었다. 학생들은 ‘마테우스’와 ‘분스 팜’ ‘블루 넌’이라는데 의견이 일치했다. 첫번째 와인을 맛보고, 냄새를 맡고, 음미하고, 손을 들어 선호를 표시한 학생들은 즈랄리가 술의 정체가 ‘갈로 샤블리 블랑’이라고 밝히자 탄성을 터뜨렸다. 수업용 와인 구입비로 연간 10만달러를 쓰는 즈랄리가 이런 대중품을 내놓은 것이 의외였기 때문이다.
"신맛과 과일향의 조화 등에 대해서 자유롭게 얘기하십시오. 하지만, 와인에는 맞는 답 틀린 답이 있지 않다는 것을 명심하십시오. ‘난 이게 좋아’ ‘난 이게 싫어’가 중요할 뿐입니다"고 즈랄리는 학생들에게 강조했다.
"즈랄리는 절대로 와인에 대한 지식을 과시하지 않습니다. 그는 그냥 술을 즐기고 인생을 즐기는 사람일 뿐이지요. 그런데도 사람들은 이 강의에서 엄청난 양의 정보를 얻게 됩니다"고 말하는 윈도스 레스토랑 소유주 중 한명인 데이빗 에밀은 언젠가 식당을 다시 열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의 상징으로 즈랄리에게 식당 이름이 붙은 와인 학교만은 계속할 것을 권했다고 했다.
이날도 자신의 컬렉션 중 한 병에 100달러는 나가는 키슬러 샤도네이를 가지고 와 학생들에게 나눠준 즈랄리도 이렇게 말했다. "나는 계속 공부하고 살아갈 기운과 끈기, 흥미를 가진 사람들을 위해 이 일을 합니다. 이것이야말로 뉴욕 스토리죠"
학교뿐 아니라 즈랄리가 지은 책 ‘윈도스 온 더 월드 와인 완벽 가이드’는 1985년 출간된 이래 매년 신판을 발행해 오고 있는데, 총 150만부가 팔렸다. 즈랄리는 이 책의 성공을 ‘리더스 다이제스트’ 본사가 자리잡은 고향에서 자라나 간결한 문체를 구사하게 된 덕으로 돌린다.
뉴욕주 플레즌트빌 출신인 그는 와인을 마시지도 않고 좋아하지도 않는 부모 밑에서 자라났다. 아버지는 난방과 냉방 기술자로, 호사스런 생활과는 거리가 멀었다. 즈랄리는 뉴욕 주립대를 다니면서 웨이터로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바텐더가 되었다.
금방 와인에 관심이 생긴 그는 허드슨 밸리 등의 포도밭을 여행하며 포도주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했다. 일년간 휴학을 하고 캘리포니아 와인산지에서 공부하고, 졸업 후엔 다시 일년간 프랑스며 이탈리아, 스페인과 독일을 돌며 배웠다. 귀국 후 와인도매상에서 세일즈맨으로 일하던 그는 막 문을 열려던 윈도스 레스토랑에 세일즈하러 갔다가 마침 포도주 담당 지배인으로 젊은 미국인을 찾던 주인과 의기투합했다. "적시에 적소에 있었던 것이죠. 그렇지만 노력도 많이 했습니다"
첫해에 매장에서 일하며 점심시간에 고객들에게 와인에 대해 가르치니 친구들까지 데려오는 바람에 즈랄리는 와인학교를 열게 됐다. 학교가 번창하면서 레스토랑의 와인 매상도 증가했고, 1980년 그는 와인 디렉터가 되었다. 올해엔 포도주 매출만 600만달러가 넘을 것으로 예상되던 참이었다.
▲’윈도스 온 더 월드’ 식당은 세계무역센터와 함께 사라져버렸지만 그 와인 학교만은 새로운 장소에서 계속되고 있다. <사진 파일:WTC-WINE-CLASS>
▲"와인에는 맞는 답, 틀린 답이 없다"고 강조하는 강사 케빈 즈랄리. <사진 파일:WTC-WINE-CLASS-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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