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전 유희완(당시 36세)씨 일가족의 행복과 꿈을 무참히 짓밟아 버린 살인마는 도대체 누구인가. 유씨 부부가 무슨 큰 죄를 지었고 원한 살만한 일을 했다고 어린아이들까지 그렇게 무자비하게 살해했나. 1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남아있는 단서라고는 범인의 것으로 보이는 혈흔과 지문, 그리고 유전자(DNA) 감식결과뿐, 그 날 밤 유씨집에서 일어난 광란의 살인극은 가설과 추측만 무성한 채 아직도 진실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을씨년스런 바람이 유난히 많이 불던 1991년 11월20일 아침 9시께. 유씨가 운영하던 한인타운의 치과기공소 직원에게서 ‘사장님이 아직 출근하지 않았다’는 연락을 받은 손위동서 조원술씨는 불길한 예감이 들어 그라나다힐스 위시 애비뉴(Wish Ave.)에 있는 유씨 집으로 달려갔다. 앞문이 잠겨져 있지 않은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며 집안에 들어서는 순간 싸늘한 공기와 함께 거실 전기장판 위에 깔려있는 담요 사이로 나와있는 누군가의 발이 한 눈에 들어왔다.
경찰에 따르면 유씨 가족의 사체가 발견된 곳은 부부 중 1명이 거실, 다른 1명이 침실로 통하는 복도, 아이들 2명은 놀이 방으로 사용되던 방이었다. 발견 당시 거실에 있던 라디오가 켜져 있었다. 살해된 순서는 유씨와 아내 경진(당시 34세)씨, 그리고 아이들 순인 것으로 추정됐다. 집 안에 잠겨지지 않은 창문이 있었지만 외부에서 강제로 침입한 흔적은 전혀 없었다. 현찰 등 ‘강도라면 가져갔을 만한’ 금품들도 대부분 그대로 남아 있었다. 또 전날 밤 배달해서 먹은 것으로 보이는 피자박스가 발견됐고 부엌싱크대에서는 경진씨가 설거지를 하던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아이들이 잠옷 차림이었고 유씨도 잠옷바지를 입은 상태에서 겉에 보통 바지를 하나 걸친 상태였다는 설도 있으나 확인되지 않고 있다.
당시 수사에 관여했던 경찰 관계자들이 당시 상황을 보는 시각은 다소 엇갈리고 있다. 일부는 거실에서 유씨가 먼저 피살된 다음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던 경진씨가 당했고 침실에서 잘 준비를 하던 아이들이 공포에 질려 침대 밑에 숨어있다 마지막으로 살해됐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다른 일부는 범인 또는 범인들이 일가족 4명을 거실 전기장판 위에 모아놓고 위협을 하다가 유씨부부를 차례로 살해한뒤 침실로 도망간 아이들을 쫓아 들어갔을 것으로 추측했다.
경찰은 초동수사 때 해결사의 소행일 가능성도 생각했으나 외부서 침입한 흔적이나 없어진 물건이 없고 피해자들이 심하게 반항하지 못했으며 범행 수법이 지나치게 잔인했던 점을 감안, 주변인물들에게 먼저 눈을 돌렸다.
또 경찰은 일가족 4명을 매우 짧은 시간동안 예리한 흉기로 수십 차례 난자할 수 있었고 가족 가운데 1명이 총을 맞았다는 사실 때문에 범인이 2명일 가능성을 늘 생각해 왔다. 즉, 범인이 1명이었다면 그냥 총으로 쉽게 범행을 하지 굳이 흉기를 들고 피해자 4명을 수십차례 찌르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유씨는 목과 등 부위를 약 여덟군데 찔렸고 경진씨는 목덜미와 등, 가슴, 배에 10여군데, 딸 폴린(당시 7세)양과 아들 케니(당시 5세)군은 등과 가슴, 목 부위에 각각 자상이 있었다.
경찰이 정밀조사를 벌인 150여명 중에는 유씨부부의 형제·자매와 친지, 친구, 교회 관계자, 치과기공소 직원, 사업상 거래가 있는 베트남인과 아메니안인들이 포함돼 있었지만 소득이 없었다. 한때 ‘유씨가 당시 토헝가에 살다 도박빚에 쫓겨 뉴저지로 이주한 유모씨로 오인 받아 살해됐다’는 정보가 입수돼 수사관이 뉴저지로 가서 유모씨를 직접 조사를 벌이기도 했다.
유씨 가족이 살아있는 모습으로 마지막 목격된 시각은 전날 밤인 19일 저녁 7시30분께. 이 시간은 유씨 가족이 피자를 배달 받은 시간으로 알려져 있으나 당시 집안에 가족 외에 다른 사람이 있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이날은 화요일이었고 딸 폴린양이 다음날 학교를 갔어야했기 때문에 늦어도 밤 10시에는 잠자리에 들었어야 했는데 사체 발견당시 아이들의 침대는 잘 정돈된 상태였던 것은 사건 발생시각이 자정이전일 가능성이 높음을 시사한다. 우연의 일치였겠지만 거실에 걸려있던 시계는 8시20분을 가리킨 채 멈춰있었다.
범인이 한인이라는 증거는 없지만 유씨부부가 1980년대 초반 이민온 1세이고 한인교회에 출석하면서 LA한인타운을 생활권으로 살아온 사람들이라는 사실, 그리고 사건당일 밤 누군가를 집안으로 들여놓았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은 그같은 가설을 뒷받침하기에 충분하다. 특히 경진씨가 무릎을 꿇은 상태에서 치명상을 입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기도 중 변을 당한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돼 친지들은 물론 교인들까지 줄줄이 경찰에 불려가 조사를 받기도 했다.
유씨의 가족들은 아직도 범인체포에 실낱같은 희망을 걸고는 있지만 거의 체념상태에 있다.
헌팅턴팍에서 장난감가게를 하는 유희석씨는 "엄마 손을 잡고 장난감을 사러오는 애들을 보면 아직도 죽은 두조카가 생각난다"며 "아직도 영면하지 못하고 있는 동생가족의 원혼을 위로하고 유사한 사건의 재발을 막기 위해서라도 언젠가 범인은 잡혀야 한다"고 말했다. 유씨의 노모 황숙경(86)씨는 사건이후 10년동안 식욕 감퇴증에 시달려 왔으며 아직도 손에 잡힐 듯한 손자, 손녀 생각에 숟가락을 제대로 뜨지 못하고 있다.
<하천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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