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막을 내린 메이저리그 월드시리즈는 한 편의 영화보다 더 드러매틱한 명승부를 연출했다. 이번 월드시리즈에서는 최강의 원투 펀치를 앞세운 신생팀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가 4연패를 노리는 관록의 팀, 뉴욕 양키스를 꺾고 우승하는 기염을 토했다.
다이아몬드백스를 우승으로 이끈 일등공신은 동료투수 랜디 존슨과 함께 월드시리즈 MVP에 공동 선정된 커트 실링이다. 그는 플레이오프 내내, 난공불락의 무쇠팔을 과시하며 상대팀 강타선을 철저히 농락했다.
커트 실링의 오늘이 있기까지는 이미 고인이 된 그의 아버지 클리프 실링의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클리프는 살아생전 아들 야구인생의 최대 후원자였다. 클리프는 아들이 1988년 메이저리그 선발투수로 데뷔했을 때, 아들이 선발 등판할 300게임의 티켓을 선주문했을 만큼 열성적이었다. 이번 피닉스 뱅크원 볼팍에서 열린 월드시리즈 경기에서도 실링은 아버지의 좌석을 공석으로 비워두었다.
커트 실링은 아버지가 자신과는 달리 매우 조용한 성격의 소유자였다고 회상한다.
반면, 커트 실링은 클럽하우스에서 항상 시끄럽게 분위기를 잡는 선수다. 오죽하면, 커트 실링이 필라델피아 필리스에 있을 때, 테리 프랭코나 감독이 "실링이 피칭을 하는 날이 가장 편하다. 경기 때만큼은 말 대신 행동으로 하기 때문이다"고 농담까지 했을까.
말이 많다고 실링이 실없는 사람이라는 뜻은 결코 아니다. 그가 말을 많이 하는 것은 평소, 팀 동료들의 사기진작이나 후배선수들을 이끄는데 남달리 앞장서기 때문이다. 이런 정신은 바로 그의 아버지 클리프에게서 물려받은 것이다.
실링의 아버지는 미군 공수부대에서 22년간 복무한 직업군인이었다.
실링은 알래스카 앵커리지에서 출생한 후, 아버지의 근무처를 따라 이리저리 옮겨다녔다. 이 과정에서 실링은 아버지로부터 국가에 대한 자긍심과 역사 의식을 물려받았다. 그는 특히 군대의 역사에 대해 남다른 열정을 갖고 있다. 클럽하우스 라커룸에도 자신이 존경하는 패튼 장군이 병사들에게 남긴 연설문 글귀를 붙여놓았을 정도다.
실링은 9월11일 테러공격 이후, ESPN 웹사이트에 메이저리그 선수들에게 하루치 수입을 구조성금으로 보낼 것을 촉구하는 기사를 게재했다. 그는 또, 뉴욕 소방국이나 ‘신이여, 미국을 축복하소서’라는 글귀가 적힌 옷을 입고 다녔고, 월드시리즈 경기차 뉴욕에 왔을 때는 월드 트레이드센터 테러현장을 방문하기도 했다.
실링은 이번 월드시리즈를 앞두고 사람들이 뉴욕 양키스를 테러사건과 일체화하는 경향에 대해 다소 불편한 심기를 나타냈다. 다이아몬드백스가 양키스를 물리치는 것이 본의 아니게 비애국적 행동으로 비치는 분위기가 조성됐기 때문이다.
"이번 테러는 미국민 모두의 아픔이다. 미묘한 상황에서 일개 야구팀을 놓고 우리편, 상대편하며 편가르기 하는 것은 잘못이다. 야구경기는 적대적인 두 팀이 다투는 전쟁이 아닐뿐더러, 실제 전쟁의 의미를 왜곡시킬 우려마저 있다"
실링은 이렇게 지적했다.
엄격하게 야구적 의미로만 말하자면, 실링은 그 공격적 스타일과 정신력에 있어서 ‘전사’라는 표현이 잘 어울리는 야구선수다. 일찍이 양키스의 조지 스타인브레너 구단주가 자기 팀의 폴 오닐 선수에 대해 평한 말은 실링에게도 해당되는 말이다.
올해 34세인 실링은 1992년 이후 71회의 완투승을 기록했는데, 이는 그렉 매덕스와 더불어 메이저리그 신기록이다. 그는 이번 플레이오프전에서도 여러 차례 완투승을 기록했다. 특히, 1998년 시즌에는 무려 15번의 완투승을 기록했는데, 이는 다른 24개 팀에서 나온 완투승의 합보다 더 많은 수치였다.
이번 월드시리즈에서도 실링은 시리즈 종반, 3일 간격 등판을 두 번이나 강행하면서도 양키스 타선을 틀어막으며 우승의 일등공신이 되었다. 원래, 양키스는 포스트 시즌에서 상대팀 투수에게 완봉을 잘 안 당하는 팀으로 유명하다. 양키스가 이번 월드시리즈 전까지 75번의 포스트 시즌 경기 중 기록한 유일한 완봉패는 1998년, 클리블랜드의 바톨로 콜론에게 당한 것이었다.
이번 월드시리즈의 핵심 관전 포인트 중 하나는 커트 실링과 랜디 존슨의 완투 여부였다. 다이아몬드백스로서는 자기 팀의 취약한 불펜 투수진과 반대로 막강한 양키스의 구원투수진을 감안할 때, 선발투수들의 완투여부가 우승의 결정적 관건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실링은 최상의 컨디션을 과시하며 팀의 기대에 120% 보답했다. 그는 8회가 넘어서도 96마일이 넘는 강속구를 뿌려댔을 뿐 아니라, 위력적인 스플리터와 두 종류의 브레이킹볼을 적절히 배합해 가며 양키스 타선을 초토화시켰다.
다이아몬드백스의 1루수 마크 그레이스는 이렇게 말했다.
"실링과 한솥밥을 먹기 전까지는 그렉 매덕스가 가장 영리한 선수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커트 실링은 그보다 한술 더 뜨는 것 같다"
사실, 투구스타일에서 커트 실링과 그래그 매덕스는 유사한 점이 거의 없다. 그러나, 상대팀 타자들을 능수 능란하게 요리한다는 점에서는 두 선수가 공통적이다.
실링이 처음부터 전도 유망한 투수로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볼티모어 오리올스에서 메이저리그에 입문할 때만해도, 그는 별 볼일 없는 평범한 선수였다. 한동안 중간계투 요원으로 뛰다가 하릴없이 휴스턴으로 방출되었다.
실링은 휴스턴에서도 밥값이나 하고 있었는데, 그때 보스턴 레드삭스의 로저 클레멘스가 해준 충고가 그의 야구인생을 바꾸었다.
당시 클레멘스는 25세의 나이로 벌써 사이영상을 세 번이나 차지한 특급 투수의 반열에 올라 있었다.
클레멘스는 또 구질이나 신체조건이 자신과 매우 흡사한 커크 실링에게 평소 관심을 갖고 있었다. 그는 어느 날 조언을 요청해 온 실링을 향해, 메이저리그에서 대성하려면 오프시즌 동안 철저한 자기 관리가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실링은 이때부터 야구에 대해 눈을 뜨기 시작했노라고 회고한다. 평소 틈만 나면 비디오 앞에서 상대팀 타자들의 타격 습관을 연구하는 버릇도 그 때부터 생기기 시작했다.
그러나 휴스턴은 새로운 실링을 기다려 주지 않고, 이듬해 그를 필라델피아로 트레이드해 버렸다. 이에 필라델피아에 온 실링은 보아란 듯이 팀을 월드시리즈로 이끌며 자신의 전성시대를 개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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