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 카불이 떨어졌다… 탈레반의 최후 거점인 칸다하르도 함락됐다. 아프가니스탄 영토는 반(反) 탈레반 수중에 넘어갔고 향후 아프간 사태는 전혀 새로운 국면을 맞게됐다…" 13일 오후 현재의 아프간 전황 보도다. 탈레반정권은 이미 붕괴되고, 오사마 빈 라덴의 알 카에다 조직도 지리멸렬상태에 있는 것 같다. 전쟁은 그러면 마침내 그 끝이 보이게 된 것인가.
"테러와의 전쟁이지 이슬람과의 전쟁이 아니다." "이슬람과는 관계없는 일이다." 조지 W 부시, 토니 블레어 등이 지난 수주동안 틈만 나면 주문 외우듯 해온 말이다.
말이란 반어적(反語的)으로 사용될 때가 많다. ‘괜찮다’는 말을 자주 할 때는 ‘괜찮지 않다’는 뜻이다. ‘테러전쟁은 이슬람과는 관계없는 일이다’-. 이 경우도 진실은 그 반대편에 있는 것 같다. 왜 그런데 뻔한 말을 되풀이하고 있을까. 극도의 두려움의 발로인지 모른다. 테러전쟁이 자칫 이슬람권 전체로 비화될 수 있다는 현실적 우려다. 그 우려는 그러나 이슬람권이 강해서가 아니다. 그 반대다.
(다분히 서구적 관점이겠지만) 이슬람권 국가들은 대부분 정상이 아니다. 하나같이 심각한 정치, 사회적 불균형 상태에 있다. 그러므로 위험하다는 진단이 나오고 두려움은 더 커지고 있다. "세계의 군사독재체재중 이슬람권 국가가 아닌 나라는 단 하나밖에 없다. 이슬람권에서 진정한 의미의 선거란 건 찾아 볼 수 없다. 30개의 세계분쟁지역 중 28개지역이 이슬람 지역이다. 전 세계 정치범중 3분의 2는 이슬람권 국가에 수감돼 있다." 이슬람권 전체를 조망한 대략의 정치적 통계다.
경제적 데이터도 말이 아니다. 1985년에서 1999년 까지 기간동안 이란, 이라크, 사우디, 예멘 등 아랍국가들은 모두 국민소득이 감소했다. OECD통계로 ‘오일달러’를 빼면 전체 아랍국가의 경제규모는 핀란드 한 나라의 경제 규모밖에 안된다는 것이다.
헤리티지 재단은 더 희한한 진단을 하고 있다. 이슬람권 국가들의 경제자유지표(Index of Economic Freedom)가 바닥선에 있다는 것이다. 경제적 성장은 경제적 자유와 병행한다는 게 헤리티지 재단 보고의 요점으로, 이란·이라크·시리아·리비아 등은 ‘가장 경제적 탄압이 심한 국가’로, 또 사우디·예멘 등은 경제적으로 가장 자유가 없는 국가로 각각 분류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다른 게 아니다. 이슬람권 전체는 심각한 불안정 곡에서도 극도의 폐쇄성을 고집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상황은 결코 나아질 것 같지 않다. 지나친 ‘피해의식’에 사로 잡혀 있는 게 ‘이슬람정서’여서 하는 말이다.
"9월11일은 그들의 기억에서 사라진지 오래다. 그들은 단지 10월7일을 기억할 뿐이다." 한 이슬람 비평가의 지적이다. 9월11일은 테러참사가 발생한 날이다. 10월7일은 미국의 보복공격이 시작된 날. 수천명 미국인들이 숨진 사실은 망각되고 미군의 폭격에 아프간 어린이들이 울부짖는 모습만 클로즈업 되면서 그들은 미국의 공격을 이슬람에 대한 공격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이다.
일부 과격파들만의 얘기가 아니다. 전체 이슬람권의 정서가 그렇다는 것이다. 보다 주목할 사실은 오래전부터 이슬람권 전체에 깔려온 반(反)서방, 반(反)미 정서다. "테러참사 전에도 전세계 이슬람 사원에서 행해지는 설교는 모두가 반서방, 반미를 고창하는 증오의 메시지였다. 언론의 논조도 극도의 반미감정 일색임은 말할 필요조차 없다."
대부분 이슬람 국가들의 교과서는 반미주의를 주입시키며 증오심을 북돋는다. 말하자면 왜곡된 세계관을 어린이들에게 심어 주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뉴욕타임스의 토머스 프리드먼 같은 논객은 ‘빈 라덴은 사이드 쇼우이고 진정한 전쟁은 이슬람 어린이들을 가르치는 학교에서 시작되어야 한다’는 지적을 하고 있다.
요약하면 결론은 이렇다. 일종의 자폐증세를 보이고 있는 사회는 바로 광신주의와 테러리즘의 온상지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자폐증세의 결과가 무기력이고 고립인데 고립은 허무주의를, 허무주의는 분노를 불러오면서 과격주의가 팽배케 된다는 것이다.
"이슬람 세계는 오늘날 편견, 위선, 무지, 이런 것들로 꽉차 있다. 여기서 양산되는 건 광신적 극단주의자들 뿐이다." 한 온건 이슬람 지도자의 자탄이다.
그는 또 이렇게 말한다. "이슬람에는 두 종류의 지하드(성전)가 있다. 하나는 외부의 적에 대한 지하드다. 이건 작은 지하드다. 보다 큰 지하드는 내면의 적에 대한 지하드다." 이슬람권이 내면의 적을 향한 지하드를 펼치지 않는한 전쟁의 끝은 아직도 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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