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에도 잘 되는 비즈니스는 파산 변호사와 장의사 밖에 없다는 말이 있다. 불경기에다 테러까지 겹친 요즘 이 말이 실감난다. 그러나 요새 이보다 더 ‘빤짝’하는 업종이 있다. 모기지 융자회사가 그곳이다. 직원이 10~20명 규모인 군소업체는 전 직원이 주말도 없이 할 12~14시간씩 일한다. 주택 감정사나 에스크로 회사 같은 관련 비즈니스도 마찬가지다. LA 인근에서 일하고 있는 한 감정사는 “지난 두 달간 하루 5시간 밖에 못 자고 일했다”며 “돈도 좋지만 죽을 맛”이라고 말했다.
대량 해고 물결이 미국을 휩쓸고 있지만 융자 회사만은 예외다. 직원 수 1만 6,000명으로 미국에서 가장 큰 주택 융자 회사의 하나인 컨추리와이드사는 지난 두 달 사이 직원 수를 2,000명이나 늘렸다. 그럼에도 일손이 모자라 다시 2,000명을 추가 고용할 계획이다. 이 회사는 지난 달 148억 달러의 주택 융자를 해줬는데 이는 전달에 비해서는 44%, 전년에 비해서는 100%가 늘어난 숫자다.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는 곳은 이 회사뿐만이 아니다. 가주 전체적으로 주택 융자 건수가 작년에 비해 두 배로 뛰었다.
최근 주택 융자의 특색은 새로 집을 사려는 사람보다 기존 주택 소유자의 재융자가 압도적으로 많다는 점이다. 보통은 재융자가 전체의 20% 수준인데 요새는 75%가 넘는다. 재융자가 폭주하는 이유는 물론 사상 최저 수준의 주택 금리 덕이다. 현재 30년 만기 모기지 금리는 6.5%, 15년 만기는 5.85%로 40년 내 최저 수준이다. 이처럼 금리가 폭락한 것은 올 초부터 연방준비제도 이사회(FRB)가 10차례나 금리를 내린 탓도 있지만 보다 직접적인 이유는 연방 재무부의 과감한 결정 때문이다.
재무부는 지난 달 말일 30년 만기 장기 채권의 발행을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이 공채는 지금까지 연방 정부가 예산 적자를 메우는 데 주무기로 사용하던 채권으로 그 수익률(yield)은 모든 장기 금리의 기준으로 쓰여 왔다. 정부의 공식 입장은 연방 예산이 흑자로 돌아섰기 때문에 더 이상 발행할 필요가 없어졌다는 것이지만 전문가들은 장기금리를 떨어뜨리자는 게 더 큰 목적으로 보고 있다.
공급이 줄어들면 수요와 공급의 원리에 의해 물건 가격은 올라간다. 아닌 게 아니라 중단 소식이 나오자마자 이 채권 가격은 폭등했다. 채권 가격이 올라가면 그 채권의 수익률은 내려간다. 얼핏 잘 이해가 안 되는 것 같지만 따지고 보면 원리는 간단하다. 1년에 10%의 이자를 주는 채권이 있다 하자. 그런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금리가 내려가 앞으로는 5%짜리 채권밖에 발행하지 않게 되면 10%의 이자를 주는 채권의 가격은 올라간다. 누구나 5% 이자를 주는 채권보다는 10% 이자를 주는 채권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결국 10% 짜리 채권 가격은 액면가의 2배에 거래돼 그 채권의 실질 수익률은 현행 금리인 5% 선으로 낮아지게 된다.
연방 정부가 공채 발행 중단이라는 극한 처방까지 내린 것은 최근의 부동산 경기 침체를 얼마나 심각히 생각하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반증이다. 온갖 악재에도 불구하고 굳건히 버텨오던 부동산 시장이 최근 들어 힘을 잃어가고 있다. 월 스트릿 저널에 따르면 3/4분기 신규 주택 판매는 전년에 비해 30%나 급감했다. 닷컴 붐에 힘입어 가장 뜨겁게 달아오르던 샌프란시스코 인근은 고급 주택의 경우 가격이 20%나 하락했으며 빌딩 공실률도 급속히 증가하고 있다. 테러의 현장인 뉴욕은 두 개의 초대형 빌딩이 사라졌음에도 상업용 건물 입주율은 오히려 감소하고 있다. 모두가 부동산이 침체 국면으로 돌아섰음을 보여주는 신호다.
10번에 걸친 FRB의 단기 금리 인하 조치에도 불구하고 주택 및 부동산 경기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장기금리는 지난달까지 연초 대비 큰 변동이 없었다. 정부 결정에 의해 정해지는 단기 금리 인하 조치와는 달리 장기 금리는 다른 모든 상품과 마찬가지로 시장에서 수요 공급의 원리에 의해 좌우된다. 수그러들기 시작한 부동산 경기를 살리려면 장기 금리가 내려가야 하는데 시장이 말을 듣지 않자 정부가 개입한 것이다.
윌셔가 빌딩의 70%가 한인 소유라는 보도도 나왔지만 부동산은 한인들이 아직도 선호하는 투자 수단이다. 한인들이 집에 투자한 돈은 주식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정부의 인위적 조작이 금리를 장기적으로 낮출 수 있을지, 부동산 경기 하락을 막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그러나 부동산이 폭락할 경우 미국 경기가 전문가들의 예상보다 훨씬 심각한 국면을 맞게 되는 것은 물론 부동산 의존도가 높은 한인 커뮤니티가 90년대 초의 아픔을 되풀이해 겪지 않을까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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