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로스버디스의 사우스 코스트 보태닉 가든(South Coast Botanic Gardens)에서 지난 주말 있었던 국화 전시회. 하늘이 파란 고향의 가을 날씨, 그 기분 좋은 청명한 날 바람을 타고 불어왔던 은은한 국화 향을 기억하고 있는 전재욱·경옥씨 부부는 남가주에서 국화 전시회가 있다는 소식을 듣자 만사 제쳐놓고 길을 나섰다.
미당 서정주가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라고 노래했던 국화. 확실히 국화는 꽃의 여왕, 장미 같은 화려함도 빈센트 반 고흐를 감동시켰던 해바라기 같은 타오르는 열정도 없다. 튜울립처럼 수줍은 듯 오므린 꽃잎이 귀여운 것도 푸레이지아처럼 달콤한 향기가 취할 듯 달콤한 것도 아니지만 예로부터 ‘매란국죽’이라 하여 선비들의 마음을 휘어잡은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맡을수록 깊은 그 향기, 볼수록 고매한 그 자태는 한 눈에 뜨이지 않지만 알게 되면 더욱 매혹적인 중년의 여인네 모습과 참 닮았다. 가을날 노란 국화꽃밭에 파묻혀 소녀처럼 마냥 기뻐하는 아내를 보니 20대 만개한 장미꽃처럼 아름답던 그녀가 사랑이라는 이름 하나로 시집와 아이 낳고 남편 뒷바라지하며 살아준 30여 년의 세월이 한없이 고맙게 전해져 온다. 소설책 한 권 분량은 족히 나올 만큼 파란만장했던 만남과 삶의 부대낌의 시간들도 오늘 국화꽃 앞에 선 그녀의 저 우아한 자태 하나로 그저 아름답게만 추억될 수 있을 것 같다. 평소 국화의 소담스러운 모습과 은은한 향을 즐기는 전재욱씨는 꽃밭 속 아내의 모습이 하도 고와 넌지시 한 마디 건넨다. "당신이 국화보다 더 고운데 그래." "아유, 그런 말 말아요. 이제 할미꽃이 다 됐는데." 손을 내저으며 낯간지러운 찬사를 애써 부정하는 그녀의 모습이 마치 국화처럼 은은하다.
사우스 코스트 보태닉 가든의 자원봉사자 모임인 ‘백40(Back 40)’ 회원들이 지난 1년간 정성껏 가꾼 국화는 하양, 노랑, 보라, 자색 등 색깔도 가지가지인데다 그 모양새도 탐스러운 꽃, 갈기갈기 흐드러진 꽃, 소담스러운 작은 꽃 등 다양하다. 사임당, 난설헌, 매창 등 글 잘 쓰던 총명한 우리 옛 여인들의 이름이 어울릴법한 꽃에다 누가 갖다 붙였는지 럭소르 (Luxor), 진판델 (Zinfandel), 신부 베일 폭포 (Bridal Vail Fall) 등 이국적인 이름들이 흥미롭다.
국화가 화분에 심겨져 산책로를 따라 쭉 늘어선 모습은 가을 늦도록 홀로 고향 땅을 아름답게 채색하던 노란 들국화를 추억하게 한다. 지난 주말, 가든에서는 국화 전시와 함께 판매 행사가 있어 많은 이들이 화분을 구입해 갔다. 아직 남아 있는 화분은 계속 전시, 판매를 하고 있으니 발걸음을 서둘러 가을의 정취를 한가득 느꼈으면 싶다.
전재욱·경옥씨 부부도 집안 가득 은은한 국화 향기를 들여놓고 싶어 이 화분, 저 화분을 들었다 내렸다 하며 연이 닿는 꽃을 고른다. 날 데려가 달라고 아우성 치지 않는 그 고요함이 화분 고르기를 더 어렵게 만든다. 결국 낙점 한 것은 노란색 작은 꽃송이와 짙은 자주색 꽃 화분. 봄부터 물주고 거름주고 꽃들과 얘기도 나누며 키운 자원봉사자들의 정성이 1-4달러라는 말도 되지 않는 가격으로 어떻게 환산될 수 있을까.
소쩍새의 울음, 먹구름 속의 천둥, 그래 이 꽃이 피려고 간밤엔 무서리가 그리 내리고 시인에게는 잠도 오지 않았던 건데. 물과 거름만 주면 잘 자라는 꽃이라 하지만 누님 모시듯 정성껏 가꿀 계획이다.
"어떻게 시작을 한다지." 화분을 차 뒤에 싣고 운전대를 잡는 전재욱 씨에게 새로운 고민거리가 생겼다. 찬란한 가을 햇살 아래 국화 꽃밭에서 재발견한 아내의 아름다움을 어떤 시어로 함축해야 하는 걸까. 미주 문인 협회 소속 시인이기도 한 그는 시상을 다듬느라 행복한 고민에 빠져든다.
"후후, 그래. 미리 사두길 정말 잘했어." 아내 전경옥씨의 입가에 조용한 미소가 번진다. 지난 주말 사두었던 국화 차를 우려내 햇살 잘 드는 창 앞에서 말없이 함께 음미하려는 멋진 계획을 옆자리의 저이가 헤아리기나 할까. 늦가을 국화가 가져다 준 동상이몽을 안고 집으로 향하는 부부를 주말의 오후 햇살은 시샘이나 하듯 내리쬐고 있었다.
남가주 국화 전시장▲ 팔로스버디스의 사우스 코스트 보태닉 가든(South Coast Botanic Gardens)에서는 지난 주말 축제로 판매되고 남은 국화를 계속 전시한다. 공원은 매일 오전 9시-5시까지 문을 연다. 입장료 5달러. 학생과 62세 이상 연장자는 3달러, 5-12세의 어린이는 1달러, 5세 이하 어린이는 무료이다. 110번 프리웨이를 타고 서쪽으로 가다가 Pacific Coast Highway 출구로 나와 우회전, Crenshaw Bl에서 좌회전하면 된다. 26300 Crenshaw Bl. Palos Verdes Peninsula, CA 90274. 전화 (310) 544-1948
▲사계절 꽃이 아름다운 데스칸소 가든 (descanso Garden) 역시 지난 주말 국화 축제로 판매되고 남은 국화를 계속적으로 전시하고 있다. 매일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문을 연다. 입장료는 어른이 5달러, 연장자와 학생은 3달러이며 5-12세의 어린이는 1달러, 다섯 살 이하 어린이는 무료이다. 2번 글렌데일 프리웨이를 타고 북쪽으로 가다가 Verdugo Bl.에서 내려 우회전, Descanso Dr.를 만나 다시 우회전하면 오른쪽으로 나온다. 주소는 1418 Descanso Dr., La Canada. 전화 (818) 952-4400.
▲샌디에고 와일드 애니멀 파크 (Wild Animal Park)에서는 28종, 9,000여 개의 국화를 전시하고 국화에 관한 동양의 문화와 재배법까지 알려주는 남가주 최대 규모의 국화 축제가 열리고 있다. 국화 축제는 동물원에 온 관광객들에게 무료로 개방된다. 매일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까지 개장한다. 동물원 입장료, 12세 이상은 22달러 45, 3-12세는 18달러 45, 2세 이하는 무료이다. 문의 전화 (760) 747-8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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