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서부터 들려오는 스패니시로 흥정하는 소리, 세계 각국의 음식들이 섞여 만들어내는 정체불명의 냄새. 언뜻 보면 마구 어질러지고 불규칙적인 것 같지만 눈여겨보면 정확하게 정돈된 구역으로 만들어진 좌판들 사이로 바쁘게 움직이는 고객과 종업원들. 바로 재래시장이나 장터에서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장터는 각 지역의 자연환경과 사회, 생활문화, 특산품 등을 옹골차게 담고 있는 삶의 현장이다. "서울은 눈뜨고 코 베어 가는 곳"이라는 이야기도 결국 사람들로 붐볐던 장터에서 나온 말로, 그 만큼 장터는 어수선함과 생생한 활력이 한데 어우러진 삶의 축소판과 같은 곳이다.
LA 다운타운에 있는 그랜드 센트럴 마켓은 한국의 상설시장인 남대문 시장과 동대문 시장처럼 지역 주민들의 삶과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지난 1917년부터 오랫동안 자리를 지켜오고 있는, 먹거리·볼거리·살거리가 넘치는 전통적인 시장이다. LA의 심장부인 다운타운에서도 가장 가운데인 힐 스트릿과 4가가 만나는 곳에 위치한 센트럴 마켓에 가면 LA의 숨소리를 그대로 듣고 느낄 수 있다.
모두 50여개 노점이 들어서 있는 마켓은 싱싱한 야채와 그날 새벽 출고된 펄쩍 뛰는 생선들이 진열장을 메우고 있다. 과테말라산 고추, 엘살바도산 검정콩 등 일반 마켓에서는 구입하기 힘든 물건들도 이곳에서 고객을 기다리고 있다.
센트럴 마켓이 가장 자랑스럽게 내세우는 것은 가격. 일반 마켓에서는 60센트 정도 하는 바나나 한 파운드에 25센트, 토마토 역시 파운드당 25센트, 수박이 큰 것 하나에 2달러이다. 생선도 깨끗하게 손질된 투나가 파운드당 4달러, 통째로 구운 백도미가 5달러에 나오고 있다.
이 안에는 모두 20여개의 레스토랑도 있는데 메뉴는 가히 국제적이라 할만 하다. 전통 멕시코 요리점에서부터 중국식, 태국식, 일식 테리야키 레스토랑등이 있는데 이곳들 역시 장터 먹자골목인 만큼 가격이 저렴하다. 3달러75센트인 캄보 디쉬 한 그릇을 시키면 접시를 들기 힘들 정도로 넘치게 음식을 담아준다. 이 곳을 특징은 오더한 음식에 세금을 받지 않는다는 것. 손님이 음식을 나르기 때문에 팁 걱정도 필요 없다. 정말 적은 돈으로 여러 나라 요리를 즐길 수 있는 곳이다.
마켓 건너편에 있는 유명한 그랜드 스트릿 노인 아파트에서 물건을 사러오는 한국 할머니부터 다운타운의 노숙자들에 이르기까지 이 곳을 찾는 손님들은 인종과 문화가 다양하다. 평일 점심시간이면 인근 오피스 빌딩에서 나온 백인 넥타이족들이 말끔한 정장차림으로 닭다리를 뜯으며, 주말이면 일본 단체 관광객들이 버스에서 내려 주스 바에 줄을 선다.
흑인 할아버지가 히스패닉 점원과 감자 하나를 덤으로 더 가져가려고 실랑이를 벌이고 배가 나온 멕시칸 아저씨가 물건은 사지도 않으면서 점원에게 계속해 스패니시로 "쿠안토, 쿠안토"만 외쳐댄다. "얼마냐"는 말인데 종업원의 진을 빼 가격을 깎으려는 심사인 듯 하다.
이곳의 ‘테리야키 킹스’에서 일하는 홍정희씨(45)는 "하루에도 수십개국 출신의 손님들을 맞고 있다"며 "영어를 못하는 손님들도 손짓 몸짓으로 원하는 음식을 정확하게 오더 한다"고 전한다. 가을철을 맞아 호박 등으로 한껏 치장된 마켓은 흥겨운 마리아치 밴드의 음악이 끊기지 않으며 주말이면 남가주 유명 밴드의 공연도 있다.
한인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이지만 한때 이 곳 상인 중 거의 절반이 한인들이었다. 지금은 멕시코, 태국, 중동인들이 밀려들어오면서 한인상인 수가 크게 줄어들었지만 아직도 약 10개의 상점을 한인이 운영하고 있다.
한때 리커스토어를 운영하다가 이 곳에서 야채 노점을 열고 있는 장상훈씨(45)는 "전에 하던 가게에 비해 규모도 작고 볼품은 없지만 매상은 오히려 높다"며 "겉모습과는 달리 대부분의 가게들이 높은 수익을 올리는 ‘효자 비즈니스’"라고 말한다.
장씨는 "새벽부터 시장에 나가 싱싱하고 깨끗한 물건을 사다가 파는 것이 장사의 비결"이라고 말한다. 수익이 높다보니 렌트비가 상당히 비싼 편인데 이 곳의 홍보 담당 패트리샤 수에즈는 렌트비가 "위치에 따라 스퀘어피트당 3∼5달러 정도"라고 밝힌다.
한때 소매치기가 득실거려 관광객들의 기피 장소이기도 했지만 지금은 10여명의 시큐리티 가드가 상주하고 있어 매우 안전한 환경에서 샤핑을 즐길 수 있다. 센트럴 마켓에서 산토스 리커를 운영하고 있는 송봉환씨(52)는 "다른 지역에서 10여년 동안 리커스토어를 운영하다가 최근 이 곳에 들어왔는데 강도가 없어 안전하고 문을 여는 시간이 짧기 때문에 집에 일찍 들어갈 수 있어 너무 좋다"고 말했다.
그랜드 센트럴 마켓은....
그랜드 센트럴 마켓은 20세기 초 현재 다운타운 법원 등이 있는 벙커 힐 언덕의 부자촌 주민들이 전차를 타고 내려와 식품을 구입하면서 조성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지붕도 없는 ‘오픈 마켓’이었지만 30∼40년대 이 지역에 고층빌딩들이 들어서면서 마켓도 자연스럽게 인도어로 변형됐다.
대공황 당시에는 직장을 잃은 주민들이 농장에서 야채와 과일을 받아와 행인들에게 팔면서 끼니를 이어갔던 삶의 애환이 질퍽한 곳이다. 80년대 그랜드 애비뉴를 중심으로 초대형 빌딩들이 세워지는 대규모 도시계획이 실행되면서 대부분의 옛 빌딩들은 모습을 감췄지만 시정부 중심의 역사보존 운동의 일환으로 이곳만은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마켓은 주 7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개장하고 위치는 317 사우스 브로드웨이 3가와 4가 사이에 있다. 308 사우스 힐 스트릿에 있는 파킹랏에 주차를 하면 되는데 10달러 이상의 상품을 구입하면 주차비는 무료. (213)624-2378, www.grandcentralsquar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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