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스 브렌리감독의 해괴한 용병술, 그 열쇠는…
31일 월드시리즈 4차전. 꼭 이겨야 할 그 순간, 더구나 3대1로 앞서고 있던 그 순간, 다른 투수도 아닌 ‘파워 오브 원’ 커트 쉴링을 왜 뺐는가. 김병현이 8회말에 아무리 삼진아웃을 잡았다 한들, 눈을 씻고 둘러봐도 불펜에 그만한 투수마저 없었다고 한들, 9회말 2사후에 투런 동점홈런을 맞고 눈동자가 풀려버린 그를 왜 10회에 또 내보냈는가.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의 밥 브렌리 감독의 용병술을 둘러싼 논란 밑천은 이것으로도 부족했다. 31일의 해프닝은 1일의 용병 수수께끼에 비하면 새발의 피에 불과하다.
1일 5차전 9회말. 도대체 무슨 배짱으로 무슨 객기로 또 김병현을 투입했는가. 또다시 2점차(2대0)로 앞서고 있었고 마지막 세타자만 잡으면 전날 잃은 원기를 곱절 회복할 수 있는 게 아니었던가. 불과 24시간쯤 전 같은 장소에서 동점홈런에다 끝내기 역전홈런까지 얻어맞아 파김치가 됐고 피칭수마저 사나흘 연속 마무리 등판한 것과 맞먹는 61개나 됐는데도 그 순간 김병현을 고집한 브렌리의 속내는 무엇이었을까.
야구상식은 물론 일반상식 어디에도 해답은 없다. 특히 김병현의 5차전 재투입같은 용병은 있지도 않았고 있어서도 안되고 있을 수도 없는 문제여서 합리적인 해답을 구하려는 노력 자체가 헛수고다.
그렇다면 양키스란 이름의 마법사가 휘하 선수들에게 힘을 실어주다 못해 브렌리의 뇌리까지 스며들어 용병구상을 흐트러놓았단 말인가. 브렌리는 김병현에게 똑같은 상황에서 다시한번 기회를 줘 재기할 수 있도록 하는 배려였다고 말할 수 있다. 7차전까지 가면 쉴링이 선발로 나서고 두차례 연속 사흘밖에 못쉬고 등판하는 그가 휘청할 경우 ‘미우나 고우나 김병현’에게 뒷일을 맡길 수밖에 없으며 따라서 어떻게든 그의 자신감을 회복시켜야 했다는 논리가 이어진다.
말이야 틀린 건 아니다. 성공했다면 브렌리의 대도박에 대한 온갖 찬사가 줄을 이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7차전은 반드시 하는 게임이 아니다. 그전까지 결말이 나지 않을 경우 ‘할수없이 치르는’ 최종전이다. 상식적인 용병으로 4, 5차전을 건졌다면 월드시리즈는 1일밤 막을 내렸고 두말할 나위없이 7차전은 벌일 필요조차 없었다.
불과 지난해만 해도 FOX-TV 야구해설자로 있으면서 눈앞에 펼쳐지는 비상식적 용병이나 플레이에 대해서는 크고작음을 가리지 않고 독설로 질타했던 그가 ‘손 안에 든 새부터 잡아놓고 봐야한다’는 상식과 순리를 팽개치고 무모한 도박을 감행하다 연이틀 실패함으로써 어쩌면 평생 돌이킬 수 없는 값비싼 대가를 치르게 됐다.
4차전 도박이 실패로 끝난 뒤 "7차전 후반에 쉴링을 내년 캑터스리그(D백스의 스프링트레이닝) 피칭을 염두에 두고 뺄 것이냐"는 조롱섞인 비난이 쏟아졌음에도 브렌리는 마치 양키스를 상대로 게임을 하는 것이 아니라 여론과 맞싸우는 듯 배짱을 부리다 살아나는 팀을 제손으로 수렁에 쳐박은 꼴이다.
희생자는 그뿐만이 아니다. 김병현은 D백스의 승리기회를 날려버린 데 그치지 않고 자신의 커리어를 결정적으로 망칠지 모르는 처지에 놓였다. 걸어온 길보다 가야할 길이 훨씬 먼 스물두살 청년에게 2001년 10월의 마지막밤과 11월 첫날밤 양키스테디엄에 당한 일은 자칫 잔인한 실험이 아니라 잔인한 종말이 될 지도 모른다. 김병현이 아무리 낙천적인 성격의 소유자라 해도 정상 컨디션을 되찾는 것은 고사하고 그 악몽을 잊어버리는 데만 무진 오랜 세월이 걸릴 게 뻔하다.
솟아날 구멍은 딱 하나. D백스의 우승뿐이다. 이 경우 브렌리는 무조건 살아난다. 월드시리즈2001을 역대 가장 멋진 승부열전으로 만든 ‘희한한 명장 넘버원’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김병현이 덩달아 살아난다는 보장은 없다. 챔피언 링으로도 보상받을 수 없는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다.
주변의 시선이 너그러워질 여지는 별로 없다. 다만 100%에 가까운 스타탄생 기회를 놓쳐버린 그가 몸과 마음을 추스르는 유일한 길은 7차전에 또 뛰어나와 우승 세이브를 건지는 것이다. 그러나 그가 부름받을 가능성은 0%에 가깝다고 보는 게 타당할 것이다. 한인 등 김병현 응원자들은 이제 브렌리의 이상한 용병을 실컷 욕해놓고 이제 그보다 몇곱절 더 이상한 용병을 기대해야 하는 고약한 처지에 놓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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