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학교에 등록하는 학생의 연령을 보면 피라밋형을 이룬다. 즉 유치부와 초등부 학생수가 압도적이다. 많은 한국학교의 학생들이 어릴 때는 부모가 억지로 다니게 하여 할 수 없이 다닌다. 하지만 중·고등학생이 되면 부모가 더 이상 강제할 수 없게 된다. 가지 않겠다는 아이를 억지로 보내다가 더 이상 힘 겨루기로 밀기 어려운 때가 오면 그만 두게 된다. 즉 학생이 스스로 졸업(?)을 결정하는 셈이다. 이런 경우에 그 학생은 부모를 위해 다니게 된 한국학교와 한글 자체에 대해서도 좋지 못한 감정을 가질 우려가 있다. 그런 학생이 자라서 자신의 2세를 한국학교에 보낼 리가 없다.
"미국에 사는 한인 2세들이 왜 한국어를 배워야 하는가?"라는 가장 근본적인 질문을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 중요한 이유를 몇 가지로 나누어 생각해 보자. 첫째, "부모가 한국사람이니까 너도 한국사람이다. 그러니 당연히 한국어를 배워야 한다"는 삼단논법식 애국형 이유이다. 많은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한국학교를 다녀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지 않는 것은 그것이 너무도 당연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에서 자라는 2세들은 이런 논리를 당연하다고 받아들이기보다는 부모의 억지 논리라고 나이가 들 수록 반발하게 된다. 둘째, 소위 뿌리교육이란 명분론이다. "미국에 살아도 너의 뿌리, 즉 부모의 조국에 대해 알기 위해서는 한국어 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첫째와 두번째 이유들을 엄밀해 따져보면 아이들이 한국학교에 다니는 이유라기보다는 부모가 아이를 한국학교에 보내는 이유들이다. 아이가 어릴 때는 양자간에 차이가 거의 없다.
하지만 아이가 자라면서 "한국학교에 갈 테니 용돈을 올려 달라"는 식으로 양자의 괴리가 벌어진다. 우리 집 막내아이가 어느 날 "토요일은 한국학교, 일요일은 교회학교에 가야 하니 월요일은 하루 쉬게 해 달라"고 떼를 쓰는 것을 보고 실소를 금치 못했다. 우리는 한국학교를 다니는 것이 부모를 위해서가 아니라 아이들 자신을 위한 것임을 설명해야 한다. 그래야 아이들이 나이가 들어서도 자발적으로 한국어 및 한국문화를 배우려 할 것이다.
미국에서도 중·고등학교에서는 스페인어, 프랑스어 등 하나의 외국어를 배우도록 요구한다. 이런 외국어에 비하면 한국어는 한국학교에서 배운 것을 집에 와서 부모와 연습할 수 있어 상대적으로 자연스럽게 배울 수 있는 외국어인 셈이다. 물론 한국어를 배우면 단지 하나의 외국어 차원을 넘어 부모, 친지와의 대화수단, 한국인의 정체성 및 문화적 유산의 이해와 전승 등의 효과가 있다. 나이가 들수록 배우기 싫어하던 한국어를 대학에 들어가서는 외국어 선택과목으로 택하는 한인 2세들을 많이 본다. 그래도 한국어가 다른 외국어에 비해 쉽게 학점을 딸 수 있다는 현실적 계산 때문일 것이다.
한번은 타대학에서 전화가 왔다. 한 한인 2세가 졸업을 하려는데 외국어 학점이 모자라서 졸업을 할 수가 없단다. 외국어 한 과목 때문에 한 학기를 더 다녀야 하므로 자신의 한국어 실력을 테스트하여 외국어 학점으로 대체해 주도록 요청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 대학에서는 그 학생의 한국어 실력을 측정할 교수가 없으니 나에게 그 학생의 한국어 실력을 측정해 달라고 했다.
그 후 그 학생이 사무실로 왔는데 한국에서 방금 온 유학생만큼 유창하게 한국어를 구사하였다. 그래서 물어 보았더니 미국에서 태어났지만 집에서 부모들과 한국어를 사용하고 한국 연속극을 많이 시청한 것이 이유란다. 그 학생은 그 덕분에 외국어 학점을 면제받아 예정대로 졸업하였다.
많은 한인 부모들이 미국에 온 가장 큰 이유가 자녀 교육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아이들의 입장에서 설명되고 이해되지 않을 때는 오히려 부모들 때문에 자신들이 희생되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이제는 부모의 입장에서가 아닌 아이의 입장에서 한국학교를 왜 다녀야 하는지 생각해야 한다.
현행 한국학교의 교재와 교과과정도 이런 측면에서 고려되어야 한다. 다행히도 금년 재미 한인학교협의회에서 새로운 4종의 교과서를 편찬하였다. 한 독지가의 기부금 덕분에 한인 이민 100주년을 맞아 우리의 2세들에게 이민사를 가르칠 교과서 편찬이 진행되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이 있다. 이제 한글교육은 아이들의 입장에서 이루어 져야 하며 이를 위해 부모, 한국학교, 그리고 한인사회가 합심하여 협력해야 하겠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