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가난한 사람과 부자가 있듯이 나라에도 잘 사는 나라와 못 사는 나라가 있다. 지금 어떤 나라가 잘 살고 어떤 나라가 못사는 지 판명하는 것은 간단하지만 그 원인을 밝히는 것은 쉽지 않다.
한 나라가 잘 살고 못사는 원인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환경이다. 잘 사는 나라는 대체로 온난한 기후권에 속해 있고 못사는 나라들은 대체로 열대 지방에 자리잡고 있다. 상식 같은 이야기지만 날씨가 무더우면 땀흘려 일하는 것이 싫어진다. 사람들이 열심히 일하지 않으면 산업이 발달할 수 없고 산업이 융성하지 않으면 부를 축적할 수 없다. 제2차 대전 이후 하버드를 위시한 미 주요 대학들은 모두 지리학과를 없애 버렸다. 지리학이 학문으로서 존재할만한 가치가 있느냐는 반성도 있었지만 지리와 사회 발전을 연계시키는 것은 인종차별적인 발상이라는 비판도 이에 한 몫을 했다. 그러나 이에 진리의 일면이 담겨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또 하나는 인간적 요인이다. 결국 한 나라의 국가의 부를 좌우하는 것은 그 나라 사람들이란 얘기다. 서구가 잘 사는 것은 서양인들이 우수한 기술과 사회 제도를 통해 산업을 발전시켰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물론 이에 대한 반론도 있다. 일부에서는 서구의 번영은 19세기부터 20세기 중반까지 100년이 넘는 장기간 동안 식민 지배를 통해 식민지 주민들을 착취하고 자원을 수탈해 갔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양쪽 다 일리가 있지만 두 가지 중 어느 쪽이 더 중요한 역할을 했느냐고 묻는다면 전자라고 답해야 할 것이다. 지난 100여년 간 서구의 세계 지배를 가능케 한 사건을 하나만 꼽으라면 그것은 18세기 산업혁명이다. 이를 통해 쌓아올린 부와 그를 바탕으로 한 군사력이 있었기에 세계 제패가 가능했다. 노예무역과 식민지 자원을 빼앗아간 일을 잊어서는 안되겠지만 그것은 산업혁명의 원인이라기보다는 결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산업혁명은 서구의 주도적 위치를 확고하게 했을 뿐 아니라 평균 수명이 40에도 못 미치며 대다수가 평생을 아사의 위협 속에서 살아야 했던 인류를 구해냈다. 지금 세계에서 잘 사는 나라는 모두 산업혁명을 성공적으로 완수한 나라고 못사는 나라는 이에 실패한 곳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면 왜 어떤 나라는 잘 살고 어떤 나라는 못사는지에 대한 대답은 왜 서구에서는 산업혁명이 성공했고 나머지는 못했나 하는 문제와 직결된다. 이와 관련해 주목해야 할 나라가 중국이다. 중국 전체 크기는 유럽과 거의 비슷하다. 기후 조건도 온난하고 문명의 발상지일뿐 아니라 유사이래 지금까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인구를 자랑해왔다. 유럽이 산업혁명에 성공하기 이전까지 농사는 말할 것도 없고 군사나 상업적인 기술도 세계 최고였다. 서구의 세계 지배를 가능케 한 나침반, 화약, 제지, 인쇄술을 발명한 것이 중국이다. 그런 중국이 어떻게 유럽인에 의해 반식민지로 전락하는 치욕을 당했을까.
많은 학자들은 그 가장 큰 이유를 중국의 통일과 유럽의 정치적 분열에서 찾고 있다. 1405년 명나라의 제독 정호는 2만8,000명을 실은 317척의 대선단을 이끌고 동남아를 아프리카까지 탐험하고 돌아왔다. 그 후 3년 간 중국이 건조한 대형 선박 수만 1,681척에 달한다. 당시 유럽으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규모였다. 그러나 불과 30년 후 새 황제가 들어서면서 물자의 낭비라는 이유로 외국 항해와 대형 선박 건조를 금지하고 이를 어기는 자는 사형에 처한다는 조칙을 내렸다. 이와 함께 중국의 세계 지배 가능성도 사라져 버렸다. 단 한 사람의 잘못된 결정이 중국을 망친 셈이다.
미국을 발견한 것으로 돼 있는 컬럼버스 스토리는 이와 너무 대조적이다. 이탈리아 제노바 출신인 그는 자기 나라에서 대서양을 건너 인도로 가겠다는 계획을 밀어 주지 않자 포르투갈과 프랑스 스페인 등 유럽 각 국을 전전하며 끝내 스페인 여왕의 허락을 얻어냈다. 유럽이 중국처럼 한 나라로 통일돼 있었다면 불가능한 이야기다.
유럽을 인류 역사상 등장한 숱한 나라와 구별짓는 가장 큰 특징은 정치 권력의 분열이다. 한 대륙이 여러 나라로 갈린 것도 그렇고 세속적 권력과 정신적 권위가 황제와 교황으로 나뉘어진 것도 그렇고 한 나라의 정치 권력이 국왕과 의회로 갈린 것도 그렇다. 권력이 한군데 집중되면 한 사람의 잘못된 결정으로 인해 모두가 피해를 입는다. 반면 권력이 갈라질 때 그 틈새에서 다양한 실험의 가능성과 자유가 숨쉴 틈이 생긴다. 그것이 유럽을 정치적으로도 자유롭고 물질적으로도 풍요롭게 만든 최대 원인이라고 무방할 것 같다.
아프가니스탄 공습 4주째를 맞는 지금 회교권에서는 미국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번 전쟁은 물론이고 회교도들이 시달리고 있는 가난과 독재가 모두 미국 탓이라는 것이다. 지금 회교권은 과거 중국이 그랬던 것 이상으로 권력이 한군데 집중돼 있다. 회교 성직자 아니면 군부 독재가 판을 치고 알라에 비판적인 견해를 가진 사람은 생명을 부지하기 힘들다. 그런 풍토에서 학문과 경제 발전에 필수적인 자유 토론이 꽃 필 수 없음은 자명하다.
자기에게 관대하고 남에 가혹한 것은 아담과 이브이래 인간의 속성이다. 회교권 주민들은 서방에 모든 책임을 넘기기 전 자신들의 잘못은 없는 지 돌이켜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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