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이리도 닮아갈까. 욕하면서 배운다고 했던가. 전임 YS와 현직 DJ는 임기 1년 반을 남겨 놓고 비슷한 길을 걷고 있다. 정치적 곤경과 경제적 난관에서 그렇다. 가족을 둘러싼 곤혹감에서도 유사성은 목격된다.
지금으로부터 4년 반전인 97년 5월 17일, 현직 대통령의 아들인 김현철씨가 구속 수감됐다. 당대 대통령인 아버지의 위력을 빌려 국정에 개입하고 검은 돈을 받아 챙긴 ‘대통령의 아들’은 쇠고랑을 차고 구치소로 끌려갔다. 한국 헌정사 50여년에 대통령의 아들이 쇠고랑을 찬 것은 그가 처음이었다.
반면 18년이라는 장기 절대권력을 누린 박정희, 그러나 그가 남긴 수많은 정치적 과오에도 불구하고 ‘박정희 신드롬’이라는 새로운 역사 평가의 바람이 서서히 불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국가경제를 일으켰다는 공로말고도 권좌에 있는 동안 혈육(아들)과 가솔들을 돈과 권력에 얼씬도 못하게 단속하고 사후에 남긴 재산이라곤 집 한 칸뿐인 처신이 새롭게 평가받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박정희를 "부패한 독재자"로 몬 YS, 하지만 그가 아직도 ‘정치자금’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하고 직계인 아들이 비리문제로 전과자가 됐다는 사실은 큰 오점인 동시에 하나의 아이러니다. 또한 박정희를 향해 정치적 공세를 펴는데 있어 YS보다 한 단계 앞섰던 DJ. 자신은 정권을 잡고 아들은 집권당 내 실세 국회의원으로 활약 중인 부자(父子) 정치인 가족.
그걸 나무랄 일은 아니다. 하지만 그 주변을 둘러싸고 어두운 소문이 꼬리를 물고 나돈다는 것 또한 아이러니가 아닌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정상을 차지한 두 ‘민주 투사’- 이 나라에 정의와 법이 살아 숨쉬고 군사독재의 산물인 권력의 검은 거래를 단호히 끊어내겠노라고 철석같이 약속한 두 사람의 주변들조차 이런 저런 구설수에 올랐고, 또 목하 올라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그들에겐 실로 부끄러운 기록임에 틀림없으니 말이다.
물론 지금 정치권을 떠들썩하게 만든 ‘DJ 가족들에 대한 의혹’은 아직 규명된 내용들은 아니다. 주가조작 등을 통해 불법으로 재산을 모으고 정-관계 인사들에게 로비를 한 혐의로 구속된 이용호 사건과 관련해 대통령 친인척의 이름이 영문 이니셜로 폭로되더니 급기야 실명이 거론돼 있는 상태다.
DJ의 장남 김홍일 의원과 최측근 권노갑씨가 "이용호 사건의 실세 배후"라는 주장이 야당에 의해 국회에서 제기됐고, 이 보다 앞서 이희호 여사의 조카 이형택 이라는 사람도 "이용호를 도와준 인물"로 거명됐다. 김홍일씨는 "국회의원의 면책특권을 이용한 악랄한 정치 공세"라며 야당 의원들을 검찰에 고발했다. 그러나 고소고발로써 세간의 의혹이 말끔히 가신 것은 결코 아니다. 대통령의 아들이며 ‘실세’ 국회의원이라는 공인 중의 공인으로선 자신의 결백함을 증거하기 위해 남다른 노력을 보여야 한다. 만신창이가 된 검찰이 "조사해 본 결과 혐의 없음"이라고 한들 그것을 믿을 국민은 많지 않다. 따라서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려면 스스로 특별검사의 조사를 요청할 길밖에 없다. 곤혹스럽더라도 그 신분상 도리 없는 일이다.
역사는 거울이라고 했다. 김현철 사건을 잠시 되돌아보아도 이는 진실이다. 당시 야당이었던 현 집권 세력들은 한보사건 뒤에 대통령의 아들(김현철)이 개입돼 있다고 폭로하고 철저한 수사를 요구했지만 검찰은 모른 척 팔짱을 끼고 있었고, 당사자는 오히려 국민회의 측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했다.
4년 반이 지난 지금의 시점에서 관망할 때, 대통령의 아들 둘이 한 행동은 유사하다. 강력한 부인과 법적 고발. 그러나 김현철의 경우 길길이 부인한 비리가 사실로 드러났다. 반면 김홍일의 경우는 아직 밝혀진 게 없기 때문에 그 결과가 반드시 김현철과 같다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
과거 김현철을 구속까지 몰아간 주역은 바로 현 집권세력들이었다. 하지만 사건을 그나마 규명할 수 있었던 것은 권력을 쥐고 있던 YS의 결심 때문이었다. 대통령의 아들일지라도 비리에 연루된 이상 "성역 없이 수사하라"는 뼈아픈 읍참마속(泣斬馬謖)의 결의를 실행했기에 가능했다.
그렇다면 이제 DJ가 할 일도 명백하다. 세간의 온갖 의혹들에 대해 한 점 숨김없이 국민들에게 밝히겠다는 결의를 당당히 실천하는 일이다. 만에 하나 자신의 아들과 친인척이 비리에 연루됐다면 읍참마속의 뼈 깎는 아픔도 감내하겠다는 결의를 국민들에게 확신시켜야 한다. 그 길 밖에 다른 출구는 없다. 최근 국회의원 재-보선에서 드러난 민심을 보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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