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이 입고 있는 의상은 그의 명함과 같다. 옷만 보아도 그 사람이 어떤 일을 하는지, 어떤 취향을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에이프런을 입고 있으면 일을 할 자세이고, 운동복을 입고 있으면 체력 단련을 할 준비이고, 개성적인 옷차림을 하였으면 예술 애호가이고, 화사하게 차렸으면 파티 참석을 의미하는 것으로 생각케 한다. 이밖에 종사하는 직종을 알리는 유니폼들이 있다. 육·해·공군의 군복, 경관복, 소방관복, 간호사복 등은 잠자코 있어도 그들이 하는 일을 말해 준다.
이렇게 유니폼을 착용한 직장인들은 소속 직장에서 잘 훈련된 공익 종사자로서의 긍지를 가지고 사회를 활보한다. 이 모습에 접하는 어린이들은 그들을 부러워하면서 장래의 꿈을 키우게 된다. 따라서 한국의 어린이들이 대통령이 되겠다는 데 비해 이곳의 압도적으로 많은 저학년 어린이들은 유니폼을 착용하는 직종을 가지겠다고 말하는 것이다.
며칠 전, 수업 중에 여섯 살 된 어린이가 ‘난 이담에 소방관 될거야’라고 말하자 ‘나도’ ‘나도’ 하고 몇 명이 이에 맞장구를 쳤다. ‘왜?’라는 물음이 따르자 ‘좋은 일 해’라는 대답이 나왔다. 어느 직종이나 사회에 이바지 안하는 것이 드물지만, 이것은 아무래도 WTC 붕괴사건과 관련이 있는 것 같았다. 가정에서 주고 받는 이야기를 통하여 소방관이 영웅으로 느껴졌기 때문에 그런 발상을 하게 된 것으로 보였다.
9.11 사건에서 많은 소방관·경찰관이 희생된 사실은 더없는 충격이었다. 누군가의 탈출기 중에는 좁은 계단을 급히 내려오다가 무거운 장비를 가지고 위로 올라가는 소방관들과 마주치면 그 분들을 먼저 보내드렸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또 다른 분의 글에는 ‘모두 어서 건물 밖으로 나가라’고 소리치던 경찰관은 건물에 매몰되었다고 하였다. 머리 숙여 감사드리며 명복을 빌 뿐이다.
이번에는 탄저 테러 공포가 미국을 습격하였다. 몇몇 우정국 직원이 감염되어 생명을 잃기도 하고, 혹은 입원 중이기도 하다. 우정국 직원들은 정부가 초기에 좀 더 성의를 가지고 적절한 조치를 취하였더라면 희생자를 내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라고 분노하고 있다. 요즈음 손에 장갑을 끼고, 마스크를 한 채 일하는 우정국 직원들을 보면 안스럽기만 하다.
지금 아프간에서는 대테러 전쟁이 한창이다. 대다수 국민이 지지해서 시작한 전쟁이고, 군인이 국가의 안보를 위해 싸우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여기서 그들의 노고를 생각하면 편안한 마음이 아니다.
이러고 보면 어린이들이 좋아하고, 사회의 안전을 보장하던 유니폼 착용 인구들이 모조리 수난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상식을 벗어난 ‘동시다발’ ‘일파만파’라는 말들을 실감하는 사회 변동기를 맞이하면서 각종 전문직 유니폼 착용자들이 일제히 일선에서 이에 대응하고 있는 상태이다.
앞에 예거한 유니폼 착용자들은 특별한 임무를 띤 국가의 기둥들이다. 일반인들은 이들의 보호를 받으면서 안전한 일상 생활을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요즈음처럼 유니폼에 관심을 가지는 일이 드물었던 것 같다. 유니폼 착용자들도 하나의 사회 구성원일 뿐이라고 당연하게 생각하였던 것이다.
직업의 선택은 각 개인의 영역이다. 직업은 각 개인의 생활관.능력에 따라 사회에 공헌하는 방법이고, 자기 개발의 시간과 공간이다. 직업은 이미 세상에 있는 것도 있고, 미래에 창조될 것도 있다. 사회가 발달할수록 직업은 분화되면서 그 수효가 증가하고 있다. 그래서 현재 자라고 있는 어린이들에게는 직업 선택의 폭이 더 넓어질 것이고, 그들은 더 많은 직종을 창출할 것이다.
직업 선택의 기준은 여섯 살 어린이가 말한 것처럼 ‘좋은 일’을 하는 것이면 된다. 각양 각색의 사람들이 찾은 일거리가 서로 돕기 때문에, 어우러져서 사는 세상이고 재미있게 편리한 생활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들은 사·농·공·상(士農工商)의 직업 선택 기준의 전통성에서 벗어나 활짝 열린 직업관을 가져야 하겠다.
부모와 자녀, 기성세대와 성장세대의 의견 대립이 현저한 차이를 보이는 것은 직업 선택과 배우자 선택의 기준인 것 같다. 가장 중요한 일이기 때문에 기어이 간섭해야 하겠다는 생각과 내 자신의 문제는 내가 결정하겠다는 생각의 상충은 자못 심각하게 전개되기 쉽다. 그러나 문제의 해결책은 단순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네가 선택하는 일생은 네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고, 이것은 아주 어렸을 때 장난감, 책, 먹을 것, 옷가지를 고르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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