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소포 하나가 데스크로 배달돼왔다. 발신인 주소가 명확치 않은...
겁나서 어떻게 뜯지? 했더니 동료들이 농담반 진담반, 나가서 열어보란다. 만일의 경우 혼자 당하라는 얘기다. 그럴순 없지. 그 자리에서 뜯었고, 물론(?) 흰색 가루는 나오지 않았다.
마이노리티 신문사까지 노릴 리야 없겠지만, 혹시 누가 알겠는가? 미디어들이 주 공격대상이 되고 있는 마당에. ABC 프로듀서의 아기, NBC 탐 브로코의 비서, CBS 댄 래더의 비서까지 감염됐다고 하자 은근히 긴장들 하는 눈치다.
그러잖아도 요즘 신문사 편집국은 전시체제다. 평소 가장 조용하게 일했던 국제부가 주무부서로 전진배치됐고 사회부는 흰가루 소동만 나면 로컬로, 공항으로 뛰고 있다. 9월11일 호외를 두 번이나 찍으면서 시작된 이 비상체제는 연일 테러와 전쟁과 탄저균 뉴스가 몇페이지씩 도배질하면서 언제 풀릴지 알 수 없어 기자들을 지치게 한다. 우리는 과연 ‘정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이 거대한 미국이 흰가루 앞에서 패닉상태에 빠져 삐걱거리는 모습을 보면 테러리스트들이 목적이상을 달성하고 있다고 느껴진다. 18일 현재 탄저병으로 죽은 사람은 단 1명이다. 치료중인 감염자 6명, 양성반응 보인 사람이 41명이다. 탄저병보다는 매일 각종 사고로 죽는 사람의 숫자가 훨씬 많을 것이다. 그들은 살상효과보다 공포효과를 노리고 있다. 사람을 많이 죽이기로 했다면 경기장이나 공연장에 뿌리지 특정인에게 보내는 우편물을 택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마스크를 쓰고, 장갑을 끼고, 우리는 앞으로 계속 이렇게 살아가야 할지도 모른다. 테러가 근절될 리 없고, 근절된다 해도 9월11일 이전의 삶으로는 아무도 돌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미국의 첫 아프간 공습 직후 빈 라덴은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낭독했다.
"...신이 미국에 보낸 공격으로 최고의 건물들이 공격당했다. 미국은 북에서 남까지, 동에서 서까지 공포로 가득 차있다. 신께 감사하라. 오늘 미국이 맛보고 있는 것은 우리가 수십년동안 당해온 것의 극히 적은 일부분이다...미국과 그 국민들에게 말한다. 위대한 신께 맹세하지만 우리가 우리나라와 팔레스타인에서 안전을 느끼지 않는 한, 미국과 거기에 사는 사람 어느 누구도 결코 안전(security and safety)을 꿈꾸지도, 맛보지도 못할 것이다"
바로 ‘한달 보름전의 평화’가 그리워지면서 은근히 부아가 난다. 따져보면 이게 모두 아브라함 한 사람 실수 때문에 일어난 일 아닌가. 열국의 아비가 될 것이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받고도 그 새를 못 참아 아내의 요청을 못 이기는 척, 여종과 동침해 이스마엘을 낳지 않았는가. 거기까지는 또 그렇다 치고, 후에 사라에게 낳은 이삭을 형이 구박 좀 한다고, 이번에도 아내가 시키는 대로 이스마엘을 사막으로 내쫒은 것이 화근이 된 것이다.
사막에서 방황하던 이스마엘의 후손(아랍인)들과 이삭의 후손(유대인)들이 서로 자기네가 아브라함의 정통후손임을 주장하며 싸워온 중동문제에 미국이 끼여들어 사사건건 이스라엘 편을 들다가 이렇게 당한 것이다. 그러니 이 모든 일의 근원은 아브라함의 인내심 부족 내지는 믿음 부족(그를 믿음의 조상이라 하던가)이었다고 하면 오버센스인가.
하긴 그렇게 따지면 아담과 이브가 지은 죄는 더 클 것이다. 성경대로라면 맨 처음에 두사람이 선악과를 따먹은 잘못으로 우리 모두가 원죄를 뒤집어쓰고 다 죽게 됐으니 말이다.
그런데 두 케이스 모두 남편이 아내의 꾀임을 받아 일어난 일이다. 남자가 주관이 없었던건지, 여자가 생각이 없었던건지... 지금 한순간 나의 바가지가 두고두고 후손들을 괴롭힐수도 있다는 생각에 갑자기 모골이 송연해지면서 식구수대로 방독면 값을 계산해보기도 하고, 시프론지 뭔지 하는 항생제를 어떻게 살 수 있는지 물어보기도 한다.
물도 몇통 사다놓고 라면과 통조림을 몇 개씩 비축도 해보고...그런데 방독면과 시프로를 가졌다 해도 정말 비상사태가 발생했을 때 과연 도움이 될 수 있을지, 전문가들도 잘 모른단다. 모든 것이 불확실하고 아무것도 예측이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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