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애극복 독립체로서 ‘사랑의 한몸’
▶ 박신재-정순영씨 APAC서 결혼식 주관
정신장애 한인 남녀가 주변의 ‘진정한 축복’을 받으며 결혼식을 올렸다.
신랑 박신재, 1959년 1월20일생. 신부 정순영, 1968년 8월28일 생. 이 두 사람은 지난 20일 애나하임 한인장로교회에서 독립체로서 꿈에도 그리던 자신들만의 보금자리를 꾸몄다.
신랑 박신재씨는 "순영이와 1주에 한번씩 데이트하며 정이 들었습니다"며 "너무 사랑스러워 예쁜 귀고리, 신발 등을 선물했죠"라며 신부를 맞는 마음에 기쁨이 가득했다.
라미라다 거주 박씨는 정상으로 태어났으나 13세 때 한국의 한 교회 지붕에 올라가 일을 도와주다가 추락, 뇌를 다쳤다. 8여년 정도 장애인 사회복지 봉사기관인 아시안 퍼시픽 커뮤티니 서비스(APAC, 디렉터 그레이스 조)에서 도움을 받고 독립적인 생활을 꾸려나갈 정도로 증세가 많이 호전됐다. 한국말과 영어를 어느 정도 구사할 수 있지만 때로는 ‘통역’이 필요한 정도로 더듬는다.
신부 정순영씨는 "오빠와 서로 잘 통해 좋고요. 요리 등 신부로서 해야 할 일을 하나하나 배우면서 오빠랑 스파도 가며 재미있게 살고 싶어요"라며 수줍어했다. 헌팅턴비치 거주 정씨는 언어장애가 심해 친한 사람만 알아들을 정도. 어렸을 때 뇌에 이상이 있어 정상인으로 생활하기가 힘들었다. 간단한 더하기 빼기를 할 수 있으나 잔돈 계산은 아직 무리다. 성인 영어학교에 다니며 영어를 익히고 있는 중이다.
두 사람의 인연이 맺어진 동기는 지난해 토랜스 제일장로교회에서 열린 크리스마스 ‘사랑의 축제’. 정씨의 어머니가 박씨를 보고 신랑감으로 찍은 것. 순박해 보이면서 독립적으로 살만한 ‘신체 조건’을 갖춘 것에 후한 점수를 줬다. 실제 박씨는 4년 전부터 하시엔다하이츠 소재 봉제 공장에 나가며 시간당 6달러를 받고 있다.
자녀 계획에 대해 박씨는 "어찌 한 남성으로 자식을 갖고 싶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자식을 제대로 돌볼 수 없는 처지라 단념했습니다"라며 씁쓸해 한다. 신부 정씨도 엄마가 되고 싶으냐는 질문에 고개를 끄덕끄덕했으나 남편이 이미 아이를 가질 수 없는 수술을 받았다는 것을 아는 터라 못내 아쉬워하는 표정.
이 두 ‘학생’의 재활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APAC의 유니스 김과 김인숙씨는 신혼부부만큼 신이 났다. 결혼식 날도 두 사람에 바짝 붙어 하나부터 열까지 부모 이상의 노릇을 해냈다.
두 교사는 "장애인들에게 가장 힘든 것 중의 하나는 산수다. 음료수 한병 제대로 사는데 1년 정도의 교육이 필요하다"며 "교육을 통해 이들이 독립적인 부부가 됐으니 그 보람은 말로 다할 수 없다"고 소감을 표현했다.
박-정 커플 같은 장애인에게 가장 필요한 교육은 사회적응 훈련. 이들은 APAC에서 제공한 교사와 교통편을 이용, 이런 교육을 받는다. 오전 9시10분쯤 두 교사는 장애인 집을 찾아 이들이 사회와 접촉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준다. 정씨의 경우는 어덜트 스쿨에서 ESL을 배우는 것. 점심 식사는 샤핑몰에서 주로 한다. 식사를 즐기며 샤핑 요령을 배우는 것도 중요한 훈련. 피곤하지 않을 정도로 외출이 끝난 후 오후 3시쯤 귀가한다.
이번 결혼식의 350여 하객 중 남달리 장애자 자녀를 둔 한인 부모들이 어디서 소식을 들었는지 자녀를 데리고 많이 참석했다. 장애인 자녀에게 ‘너도 저렇게 결혼할 수 있다’는 격려의 뜻이 담겼을 것이라고 한 참석자는 말했다.
그레이스 조 디렉터는 "8년전 APAC에서 박신재씨를 만나 장애인의 한계를 극복하고 한 독립 인격체로 발전하고 성장해 나가는 과정을 지켜봤다"며 "이번 결혼식은 하나의 인간승리다"라고 말했다. 오렌지카운티 APAC 코디네이터 박남경씨는 "숱하게 많은 결혼식에 참석해 봤지만 이번처럼 마음에 우러나서 가본 적은 별로 없는 것 같다"며 "자식 결혼식 다음으로 큰 기쁨을 느꼈다"고 말했다.
박-정 커플은 많은 사람의 축복을 받으며 그들만의 신혼여행을 떠났다. 신혼여행을 기점으로 항상 주위에서 누군가 돌봐주는데 익숙한 이들은 이제 진정한 자신들만의 긴 여정을 시작한 것이다.
APAC은 한인이 디렉터로 있어 한인이 이용하는데 편리한 점이 많다. 이곳을 이용하는 장애인은 80여명, 이중 한인이 25명이다. APAC은 1982년 설립된 비영리 단체로 장애인에게 자아 결정, 독립된 생활-사회적응 기술, 취업준비 교육 등을 제공한다.
〈문종철기자〉jongcmo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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