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자본주의 경제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경제학자 한 명을 들라면 케인즈가 첫 손가락으로 꼽힌다. 세계 경제에 공산권까지 포함시킨다면 마르크스가 더 절대적인 힘을 가졌다는 논쟁이 가능하겠지만 세계를 서방으로 국한시킨다면 최근까지 학문적 업적으로나 정책 입안에 미친 영향력으로나 그를 능가하는 학자는 찾기 힘들다.
1918년 제1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영국 대표로 베르사이유 조약 체결 협상과정에 참여했던 그는 이 조약이 유럽의 영구 평화보다는 전승국의 이익 보장과 패전국에 대한 보복이 골자임을 꿰뚫어 보고 이로 인해 대재앙이 초래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과연 그의 말대로 대공황과 나치 출현, 제2차 대전 발발 등 재난이 거듭되자 그의 주가는 나날이 상승, 그가 쓴 ‘고용, 이자 및, 화폐에 관한 일반 이론’은 경제학자들 사이 바이블로 숭상됐다.
대공황 직후 정권을 잡은 루즈벨트 대통령의 뉴딜 정책이라는 것도 근본적으로 정부가 시장에 적극 개입해 경기를 부양해야 한다는 케인즈 이론을 실천에 옮긴 것에 불과하다. 70년대 들어서서는 민주당의 진보적 정치인은 말할 것도 없고 골수 보수파인 공화당의 닉슨마저도 “이제 우리는 모두 케인즈 신봉자들”이라고 말했을 정도였다.
케인즈 학파의 위세가 꺾인 것은 닉슨이 케인즈의 완전 승리를 선언한 직후인 70년대 말부터다. 대량 실업과 고 인플레가 동시에 발생할 수 없다는 케인즈의 주장을 비웃듯 두 가지 악재가 결합한 스택플레이션이 전 세계를 휩쓴 것이다.
케인즈 경제학의 가장 치열한 비판자중 수장 격인 인물은 프리드리히 하이에크라는 사람이다. 오스트리아 출신의 하이에크가 전체주의가 세계를 뒤덮고 있던 1944년 펴낸 ‘농노제로 가는 길’(The Road to Serfdom)은 리더스 다이제스트가 축약본으로 내놓으면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그의 주장의 핵심은 어떤 권력 기관이라도 경제활동의 주체인 생산자와 소비자 각자가 갖고 있는 모든 정보를 가질 수 없으므로 이들의 자유로운 거래 장소인 시장에 개입하는 것은 정확한 정보 전달을 방해, 경제활동을 위축시킬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정부가 좋은 의도로 일을 시작했더라도 필연적으로 경제적 재난이 초래될 수밖에 없으며 그 과정에서 개개인의 자유까지 억압돼 국민들은 중세의 농노나 다름없는 처지로 전락한다는 것이 이 책의 요지였다.
공산주의가 진보적 지식인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케인즈의 위세가 드높던 당시 이 책을 쓴 하이에크는 혹독한 비판을 받았지만 공산주의가 몰락한 지금 그의 주장은 나날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시장 경제의 우월성의 이론적 근거를 마련한 공로로 1974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그는 시카고 대학에서 교편을 잡으며 1992년 93세라는 긴 나이로 타계할 때까지 ‘치명적 오만’(The Fatal Conceit)등의 저작을 통해 지혜로운 소수가 무지몽매한 다수를 천국으로 인도할 수 있다는 지식인의 교만 꾸짖기를 그치지 않았다. 노벨 경제학상이 제정된 1969년 이후 그가 후진을 양성한 시카고대학에서 가장 많은 수상자가 배출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지난주 스웨덴 한림원은 버클리의 조지 애컬로프, 스탠포드의 마이클 스펜스, 컬럼비아의 조셉 스티글리츠에게 2001년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했다. 이들은 모두 시장 경제 하에서의 ‘정보의 비대칭성’에 관한 연구 공로를 인정받아 이 상을 받게 됐다. ‘정보의 비대칭성’이란 구매자와 판매자, 고용주와 피고용인 등이 물건이나 상대방에 대해 정확한 정보를 갖고 있지 못해 발생하는 경제적 문제를 말한다. 양질의 중고차가 싼값에 나왔는데도 선뜻 사지 못하는 것, 개인의 능력은 따져 보지 않고 무조건 일류대를 우선 뽑는 것 등이 모두 이에 속한다. 이들은 그 해결책의 하나로 중고차 판매자의 신용도와 신입사원의 자질 평가 방식 개선을 들었다.
온갖 재앙으로 점철된 20세기 역사가 인류에게 준 소중한 교훈의 하나는 자기가 믿는 종교만이 진리라는 독선이 전쟁과 테러를 부르듯 소수의 엘리트가 경제를 통제할 수 있다는 과신은 경제적 재난을 초래한다는 것이다. 이번 노벨상 수상이 시장 경제 비판자들로 하여금 ‘치명적 오만’에 빠져 있지 않은가 돌아보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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