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물론 전 세계를 뒤흔들어 놓은 테러사건이 발생한지 꼭 한 달이 지났다. 내가 살고 있는 워싱턴 DC는 그때보다는 많이 나아졌지만 아직도 침통한 표정이다. 시내 곳곳에 바리케이드가 쳐 있고 경찰의 검문검색이 월등히 심해졌다. 직장 동료들도 말이 없고 이번만은 테러범들을 반드시 응징해야 한다는 분위기다.
사건이 터진 9월11일 아침 10시가 조금 넘었을까. 어머니가 미 국회의사당 도서관 내 사무실로 전화를 거셨다. 나는 "Good morning, Mom." 하고 명랑하게 전화를 받았다. 따뜻한 카모밀 차를 마시며 e메일을 일상적으로 검색하고 있었다. 엄마는 “얘 큰일났다.
너 빨리 피해야겠다. 펜타곤과 월드 트레이드 센터를 비행기가 받았단다. 테러라고 하더라”는 것이었다. “테러? 펜타곤? 뉴욕에 있는 동생은? 나 오늘 아침 펜타곤에 갔었는데…” 너무나도 놀라서 무슨 말을 했는지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 같았다. 머리가 아득해지고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이럴 때일수록 침착해야지…’라고 다짐하면서. 펜타곤과 월드 트레이드 센터 바로 다음의 공격 대상은 백악관과 국회 의사당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엄습했다. 그리고 내가 일하는 건물은 워싱턴의 많은 정부 청사 건물들 중 가장 의사당 가까이 있지 않은가? 내 사무실에서 보이는 의사당이 갑자기 위험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떠날 차비를 했다.
옆 사무실의 직장 동료에게 말했더니 상기된 표정으로 "글쎄 말이야, 나도 지금 막 들었어. 여기를 빨리 떠나야겠어"라고 말했다. 가족들에게 전화했지만 연락이 잘 되질 않았다. 여러 명의 사람들이 우왕좌왕하는 모습이 보였다. 결국 한 10분 안에 사무실을 떠나도 좋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다들 인사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총총걸음으로 건물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나는 버지니아에 있는 집으로 가기 위해 지하철역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길거리에는 벌써 사람들로 가득 메워져 있었다. 모두 심각하고 굳은 표정들이었으나 내가 본 미국 사람들은 역시 의연하고 침착했다. 길거리에는 크게 떠드는 사람도, 흥분하거나 욕하는 사람도 또 뛰는 사람도 없었다. 그곳에는 벌써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메트로 안은 점점 더 만원이 되었다
그 날 아침에는 나의 이웃인 변호사 데보라와 같이 미국 육군대령 스티브를 펜타곤에 아침 8시 반쯤 데려다 주고 왔다. 성격이 사교적인 스티브는 그 날 자신의 걸프전 경험을 우리에게 얘기해 주었고 또 미국의 중동 정책이 사실 많이 잘못 되었다는 견해를 밝혔다. 자신이 직접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겪은 바로는 미국이 너무 이스라엘 편에 치우쳐서 아랍 국가들의 원성을 사고 있고 또 이스라엘은 최근 팔레스타인과의 평화협정을 어기고 있다고 했다.
지하철을 타고나서도 역시 모두 조용했다. 사건에 대해 떠들고 토론하는 사람이 없었다.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나는 아침 전화 외에는 아무 것도 더 아는 것이 없어서 뉴스가 무척 궁금했다. 사실 누군가 열심히 뉴스에 대해 떠들어 주었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이었다.
테러… 과연 펜타곤과 월드 트레이드 센터는 얼마만큼 타격을 받았고 사람들은 얼마나 다쳤을까? 테러라면 얼마동안 미국이 잡지 못하던 거물급 국제 테러리스트 빈 라덴이 떠올랐다. 수년 전에도 월드 트레이드 센터를 파괴하려고 했었고 또 케냐, 탄자니아 등지에서 미국 대사관 폭파사건을 일으킨 장본인이 아닌가. 또 얼마 전 미국의 배 한 척을 공격하지 않았던가.
왜 미국은 그를 지금껏 잡지 못하고 어떻게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가. 도대체 CIA와 FBI는 요즘 무얼 하는가. 그렇게도 미국이 허술해졌단 말인가. 그 배후에는 물론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이 있으리라. 후세인에게는 아마도 걸프전의 원한이 남아 있으리라.
수년 전 뉴욕 유엔 본부에서 일할 때, 크리스마스 무렵 친구들과 같이 월드 트레이드 센터 꼭대기에 있는 "Top of the World"라는 온 도시 풍경이 보이는 멋진 식당에 갔던 행복한 기억이 떠올랐다. 프랭크 시나트라의 "New York, New York" 노래가 그때 아마도 흘러나왔던 것 같다. 그것은 이제 추억으로만 남고 말았다.
저녁때쯤 뉴욕에 있는 동생과는 겨우 연락이 되었고 저녁에는 데보라가 스티브도 무사하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하지만 그의 사무실이 공격받아 망가져서 얼마 동안은 직장에 못 나갈 것이라고 했다.
아프간 사태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테러 소탕작전이 성공을 거둘지 알 수 없지만 이번 싸움은 미국으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전쟁이었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미국이 취한 행동을 보면 과거보다는 대처 방법이 많이 나아졌다는 느낌이다. 국내 치안 강화에서 국제적 연대 모색, 폭격과 동시에 아프가니스탄 난민을 위한 식량 투하로 아랍 주민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한 선무 공작을 병행하는 등 나름대로 치밀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부시 대통령을 보좌하는 체니 부통령이나 파월 국무장관이 걸프전 경험이 있는 인물들이라는 것도 안심이 된다.
나는 그 동안 스스로 리버럴, 혹은 진보주의자를 자처하며 미국이 저지른 잘못에 대해 비판적이었다. 그러나 이번 테러만큼은 어떤 이유로도 변명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전쟁을 치르더라도 무고한 시민을 수천 명씩 죽인 오사마 빈 라덴은 반드시 정의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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