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영국 연합군은 7일 세차례에 걸쳐 아프가니스탄을 공습, 카불, 칸다하르, 잘랄라바드 등 6개 거점을 맹폭했다. 첫 번 공격에는 B-1, B-2, B-52 등 전폭기가 동원됐고 미전함과 잠수함등에서 50기의 토마호크 미사일이 발사됐다…"
이렇게 21세기의 첫 번째 전쟁은 시작됐다. 정확히 말해 전쟁은 이미 27일전에 시작됐다. 뉴욕과 워싱턴을 타겟으로 대대적인 무차별 테러공격이 이루어진 게 2001년 9월11일. 말하자면 이날이 21세기 최초의 전쟁 발발의 날로 기록될지도 모른다.
21세기의 전쟁은 그러나 전례가 없는 전쟁으로 보인다. 테러 참사가 벌어진지 한달. 그렇지만 공식적으로 책임을 선언하고 나선 테러단체가 없다. 오사마 빈 라덴도 테러행위를 부인하고 있다. 텔레반정권이 미국에 선전포고를 한 것도 아니다. 그러니 공식적으로는 명확한 적의 개념이 없는 전쟁인 셈이다.
미국을 타겟으로 맹렬한 증오심을 폭발시킨 숨어 있는 적의 의도는 무엇인지 추측만 난무할 뿐이다. 그렇다고 이데올로기 전쟁인가 하면 그도 아니다. 종교전쟁도 아니다. 민족간의 갈등도 아니다. 그러므로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전쟁이라는 표현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21세기의 첫 번째 전쟁과 관련해 ‘싱크 탱크’(think tank)들이 바쁘다. 전쟁의 근본 성격에서 앞으로 전개될 전쟁의 양상, 또 처방전이랄 수 있는 대응전략, 거기다가 전쟁이 가져올 대변화 등에 대한 ‘전망의 수요’가 폭발해서다.
진보냐 보수냐에 따라 싱크 탱크마다 진단과 처방은 다르다. 그러나 한가지 점에서는 컨센서스를 이루고 있다. 이제 막 시작된 21세기의 전쟁은 ‘제2의 냉전 양상을 보이면서 장기전이 될 수도 있다’는 전망이다.
이런 시각에서 볼 때 9월11일 테러참사는 ‘제2의 진주만 기습’보다는 ‘제2의 한국전쟁’에 비유되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군사 역사가 프리드릭 케이건의 지론으로, 한국전쟁은 동서냉전의 서곡이었고 미국이 냉전체제에 본격 돌입하게 된 계기를 제공했다는 것. 마찬가지로 9월11일 테러참사와 함께 부시 행정부도 해외정책의 전면적 궤도수정을 겪게 됐다는 지적이다.
이 21세기 첫 번째 전쟁의 근본 성격에 대해서는 그러나 아직도 그 정의가 불분명하다. "아랍 세계와의 전쟁도 아니고, 이슬람권과의 전쟁도 아니다. 문명을 파괴하려는 테러리즘과의 전쟁이다." 부시 행정부의 공식 입장이다.
부시 행정부의 이 같은 입장 천명은 아랍권, 더 나아가 12억 이슬람권을 자극하지 않겠다는 고심으로 보인다. 아랍권 전체와의 충돌이라는 최악의 시나리오는 어떻게든 피해야 한다는 입장을 완곡히 표현한 것이다.
그러나 역으로 말하면 이는 테러전쟁이 미국 등 서방 기독교권과 이슬람권 전체와의 전쟁으로 비화될 가능성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가능성은 오사마 빈 라덴과 동맹세력인 탈레반 등 회교원리주의자들이 보이고 있는 세계관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들은 영성(靈性)과 이성(理性)이 공존하는 세계를 인정할 수 없다. 그들은 근본에 있어 ‘뮈토스’(mythos)의 세계에 갇혀 있는 존재들이다. 역사 의식도 없고 모든 사물을 오직 종교와 신앙의 관점에서만 바라본다. 그들의 의식은 말 그대로 석기시대에 머물고 있다. 육신만 현대에 머물고 있는 것이다." 사회학자 닐 게이블러의 지적이다.
이런 그들의 세계관에 따르면 미국은 단지 박멸해야 할 적일 뿐이다. 미국은 ‘뮈토스’의 반대, 즉 ‘로고스’(logos)의 세계를 대표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테러리즘은 그러므로 자신들의 주장을 알리기 위한 방편이 아니다. 적을 박멸하는 수단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그리고 공존의 개념이 없으므로 타협의 소지도 전혀 없다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이들은 현대문명을 거부하는 부족주의(tribalsm) 광신자들이라는 이야기다. "우리는 정의로운 약자(弱子)로 신(神)의 소명을 받았기 때문에 무슨 짓을 하든 신의 뜻이다’라는 잘못된 선민의식에 사로 잡혀 있는 맹신적 집단이라는 것이다.
이런 부족주의적 의식은 맹목적 증오심을 부채질해 타협없는 살육전을 부추긴다. 무지와 편견과 독단의 세뇌교육을 지나서 일종의 ‘영혼 훔치기’의 방법을 통해 ‘증오의 전사(戰士)’를 양산 시키는 게 부족주의다. 그리고 이 부족주의 의식은 ‘증오의 문화’를 그 바탕에 깔고 있다. 히틀러의 나치즘, 컬트에 가까운 이데올로기 집단 등이 그 예다.
문제는 오랜세월 서방식민주의의 지배를 받아온 아랍권의 저변에 이 같은 ‘증오의 문화’가 짙게 깔려 있다는 사실이다. 회교 원리주의는 이런 상황에서 증오심을 먹으며 계속 자라고 있다. 그리고 보면 테러전쟁은 수주, 수개월이 아니고 수년, 수십년, 혹은 세기를 걸쳐도 끝나지 않을 수도 있지 않을까. 어쩐지 암울한 생각만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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