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테러사건 직후 동남아를 여행하고 돌아왔다. 이번 여행은 여행자체가 하나의 충격이었다. 각국의 공항이 모두 전시체제를 방불케 했고 가는 곳마다 짐검사가 까다로워 비행장 나가는 일이 지겹게 느껴졌다. 여행과정에서 겪은 그 불편함을 다른 사람들도 알아두는 것이 도움이 될 것 같아 여기에 소개해본다.
우선 여행개념이 달라졌다. 여행을 하면 가슴 설레고 즐거운 법인데 지금은 으시시하고 약간 우울해지기까지 하다. 또 전에는 핸드캐리(손가방)만 갖고 타는 사람이 세련되어 보였다. 도착해 빨리 빠져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그렇지가 않다. 핸드캐리 수난시대다. 화물칸으로 부치는 트렁크는 별로 조사가 없는데 손에 들고 들어가는 백이나 작은 트렁크에 대해서는 샅샅이 뒤진다. 무엇보다 백에 있는 것을 다 꺼내 놓다보니 여성들의 경우는 속옷까지 남에게 보여줘 뒷사람이 민망할 정도다. 게다가 손톱깍이 등이 달린 호주머니 칼을 가진 남자들은 옆으로 따로 불러들여 다시 정밀 신체검사를 받는다. 호주머니 칼 하나 때문에 말이다.
여기까지는 그래도 참을 수 있다. 호주머니 칼을 압수당하고 비행기만 탈 수 있다면 그만이다. 문제는 호주머니 칼 가진 사람의 여권이 수상하거나 다른 이상한 물건을 지니고 있으면 비행기를 못 타게 한다는 사실이다.
사람이 못 타면 그 사람의 짐도 화물칸에서 찾아 끌어 내려야 한다. 그러다보면 비행기가 한 시간 정도 연발하는 것은 보통이다. 심한 경우 호주머니 칼 하나 때문에 부인은 타고 남편은 못 타는 경우도 생긴다. 말씀이 아니다. 좀 편하려면 짐을 모두 부친 다음 빈손으로 비행기에 오르는 것이다. 예전과는 정 반대다.
‘미국’자가 붙은 비행기는 모두 까다롭다. ‘미국행 여객기’, ‘미국소속 항공기’, ‘미국에 입국하는 외국인’ 등등 ‘미국’과 관련된 여행객은 남보다 불편을 더 겪어야 한다. 북경행이나 동경행 여객기 탈 때는 짐검사가 그렇게 까다롭지 않다.
가장 코미디는 미국에 도착했을 때 손에 여권을 들고 내려야 하는 점이다. “내리실 때 여권을 손에 들고 보여주시기 바랍니다”라는 여승무원의 기내 안내방송이 처음에는 무슨 뜻인지 몰라 어리둥절 했다. “이민국 심사대에 가서 여권을 꺼내보이면 될 일이지 비행기에서 내릴 때 여권을 손에 들고 있으란 말은 무슨 뚱단지 소리인가”
의문은 곧 풀렸다. 여객기의 문이 열리자마자 그 앞에 권총을 찬 이민국직원이 서 있었다. 그는 승객들의 손에 들려진 여권의 색깔을 보고 고개를 끄덕이면서 오케이의 신호를 보냈다. 특정 국가의 여권을 가진 사람은 따로 조사하는 모양이다. 깨놓고 말하면 중동지역 국가 여권을 찾는 것 같았다.
공항 밖을 나오니 마중 나와야 할 가족이 보이지 않는다. LA의 경우 공항에 일반차량을 못 들어오게 하기 때문에 승객이나 마중 나오는 사람 모두 공항주변의 장기 주차장의 셔틀버스를 타야한다. 그러나 옐로우캡은 공항에 들어올 수 있다. 가장 현명한 방법은 옐로우캡을 타고 근처 호텔에 가서 거기서 마중 나온 가족차로 갈아타는 것이다.
이런 여행과정을 겪고 나면 결국 내려지는 결론이란 “비행기 타는 여행은 당분간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항공기 여객이 대폭 줄어들면 관광산업 전체가 얼어붙고 이렇게 되면 사회분위기가 경색된다. 결국 이 분위기는 소비억제와 경제불황을 불러들이게 된다.
테러방지만이 안보가 아니다. 경제도 중요한 국가안보다. 부시 대통령은 자신의 부친이 걸프전쟁을 승리로 이끌고도 왜 재선에 낙선했는지 다시 한번 고려해야 할 것이다. 경제불황 때문이었다.
현재와 같은 삼엄한 공항경비가 몇달 계속되면 비즈니스 쓰러지는 소리가 뉴욕 무역센터 무너지는 소리에 못지 않을 것이다. 쥐 잡으려다 독 깨는 일이 일어날까 걱정된다. 경제도 안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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